DC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호두’로, 나를 ‘인형’으로 만들었다.
손정호 기자 조회수
Google 검색에서 디아티스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
||
| ▲ <수어사이드 스쿼드>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손정호][기사 내 모든 사진의 출처는 ‘NAVER 영화’, ‘DAUM 영화’입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2016, 데이비드 에이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 “최고급 한우를 부위별로 샀어. 내가 맛있는 요리 해줄 테니 이따 저녁에 와” 부위별 최고급 한우라니! 그저 굽기만 해도 맛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친구는 중간 중간 사진을 찍어 보내며 내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부푼 마음을 안고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춰 간다. 이내 친구는 당당한 표정으로 최고급 한우를 넣은 라면을 내놓는다. 이때 드는 오만 생각과 감정. 아마 그것은 내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느꼈던 것과 같으리라.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DC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호두’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호두까기인형’이 되려 한다.
![]() |
||
| ▲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 | ||
DC와 마블은 종이 위에 영웅물이라는 큰 산맥 두 개를 쌓았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DC는 스크린이 슈퍼맨의 힘을 빼앗는 크립토나이트인 양 맥을 못 춘다. 급기야 마블의 아류(亞流)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2016년 DC의 최고 기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개봉과 동시에 혹평이 이어졌다. <어벤져스>(2012)와 비교하면 영화 제작 순서에서 차이를 보인다. 마블은 팀 영화인 <어벤져스>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 영화를 먼저 제작한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인크레더블 헐크>(2008), <아이언맨2>(2010), <토르:천둥의 신>(2011), <퍼스트 어벤져>(2011)가 뒤이었다. 위 영화들은 캐릭터에 충실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캐릭터들이 이미 검증됐기에 <어벤져스>는 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제작 순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블의 전략은 ‘양보다 질’이다. 한 번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앞선 행보만 봐도 마블의 성공은 예견된 일이다.
DC도 영웅 팀인 <저스티스 리그>(2017)는 개봉 전에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2016)과 <원더우먼>(2017)을 통해 세 개의 캐릭터를 먼저 선보인다. 하지만 악당 팀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캐릭터 영화보다 먼저 제작됐고, 스핀오프(spin-off) 형식으로 할리퀸(마고 로비)의 영화화가 거론 중이다. 그러다 보니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선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과 이들 팀에 관한 이야기도 해야 했다. 영화계에서 최적의 러닝타임이 최대 130분인 점을 감안하면, 주요 악당 10명과 팀을 모두 다루기엔 물리적 한계가 분명하다. <어벤져스>가 관객 입장에서 시간이 짧게 느껴진 영화라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감독 입장에서 시간이 짧게 느껴진 영화다. 결국 캐릭터, 완성도, 기대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 |
||
| ▲ 슈퍼 악당으로 팀을 구성하는 아만다 월러 | ||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짜임새가 허술하다. <캡틴 아메리카:시빌워>(2016)는 영화의 개연성(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영웅 간 대립)을 설명하기 위해 장장 40분을 할애했다. 반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캐릭터 소개에만 급급했지 팀에 대한 이야기에 소홀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은 영웅이 할 수 없는 특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 속 사건을 맡은 이유는 영웅이 할 수 없는 임무라서가 아니다. 단지 팀원으로 인한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해당 팀이 나선 것뿐이다. 팀의 정체성과 스토리 사이에 개연성이 없다. 속편을 염두에 뒀더라도 처음엔 팀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만약 <어벤져스>가 로키를 데리러 온 토르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의 대결이 주 스토리였다면 영화 제목은 ‘어벤져스’일 필요가 없다. 팀 영화에서 팀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개연성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비슷한 설정의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은 개연성을 비교하기 좋다. <나쁜 녀석들>은 강력계 형사 오구탁이 범죄자로 팀을 구성하여 더 나쁜 범죄자를 잡는 내용이다. ‘살해당한 딸’, ‘범죄자 선발에 숨겨진 이유’, ‘복수심에서 비롯된 독기’ 등 치밀한 개연성은 오구탁의 모든 것을 납득하게 만든다. 범죄자들은 각자의 목적의식이 뚜렷하며, 나쁜 놈답게(?) 비협조적이고 제멋대로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이해관계는 극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이에 비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밋밋하다. 총 책임자 아만다 월러의 독한 모습은 정의 실현과 국가 수호가 명분이라 해도 부족한 구석이 있다. 캐릭터들은 영화를 이끌어 가기보단 휩쓸려 다닌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으니 악당임에도 불구하고 고분고분하다. 순종적인 악당을 설명하기에 목에 있는 소형폭탄은 억지스럽다. 게다가 그들이 보여준 끈끈한 동료애도 너무 뜬금없다.
![]() |
||
| ▲ 슬로건이 들어간 공식 포스터 | ||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주제의식과 스토리에 간극이 존재한다. 영화는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었다. 후면엔 ‘알고 보면 착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를 숨겼다. 초반을 제외하곤 영화 전반에 걸쳐 인간적인 면을 보여 준다. 딸을 향한 부정(父情), 사랑꾼, 죄책감, 반려자에 대한 그리움 등등. 영화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캐릭터별 신파극―심지어 전투가 절정으로 치닫는 와중에도―은 고조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최소한 데드샷(윌 스미스)이 경찰―감옥에서 나가면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말한―을 죽일 줄 알았다.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미필적 고의 혹은 실수로 죽이고 유머러스하게 넘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감옥에서의 대사는 복선이 아니라 그저 홧김에 말한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 앞에 나서서 적을 제거하는 데드샷은 오히려 영웅처럼 보인다. 슬로건의 ‘나쁜 놈들’은 어디에도 없다. 영화는 그저 ‘세상을 구한다’만 보여준다.
감독은 인간적인 면을 통해 악당에 대한 반감을 없애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관객은 착하고 여린 캐릭터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데드풀>(2016)을 보라. 데드풀은 영웅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가 거의 없다. 거리낌 없이 욕하며, 폭력적이고 저속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고 반듯한 슈퍼맨을 생각하면 그는 영웅보단 악당에 더 가깝다. 마블의 영웅보다 DC의 악당에게 더 연민을 느끼고 동정심을 갖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내가 기대한 것은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법적, 도의적인 틀에 갇히지 않는 악당이 주는 묘한 쾌감!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기대했지만 남은 건 고구마 같은 답답함뿐이다. 정녕 ‘이 구역에 미X년은 나야’와 같은 발칙함을 기대한 것은 잘못인가. 그렇다 해도 ‘사실 내가 미X년이 된 건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로 시작하는 지루함은 가혹하기만 하다.
![]() |
||
| ▲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 | ||
어벤져스 급 캐릭터들 중에서 할리퀸 하나 살아남았다. 사실 할리퀸이란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으로 그려졌는지도 의문이다. 캐릭터보단 마고 로비에게 매료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마치 2시간 동안 하이퀄리티 코스프레 쇼를 본 것 같다. 캐릭터의 비극은 설정이 부실하고, 캐릭터 간 밸런스를 맞추지 않은 탓이다. 릭 플래그보단 데드샷이 리더 같고, 카타나는 할리퀸 앞에 소울테이커(검)를 갖다 놓는 배달부처럼 보인다. 캡틴 부메랑과 킬러 크록은 통편집을 해도 무방하다. 엘 디아블로(제이 헤르난데즈)도 엉성하긴 마찬가지다. 감정 조절을 못해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그가 단 두 번 능력을 발휘하는데, 첫 번째는 데드샷 때문에 욱해서다. 아무리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지만 또 감정 조절을 못해서 능력을 사용하다니! 정작 내면의 불은 못 다스리는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두 번째는 뜬금없는 정의감과 동료애로 극적인 포장을 한다. 죄책감에서 욱하는 성질, 정의감까지 이어지는 감정선은 당혹스럽다. 이렇게 막 쓸 거라면 차라리 슬립낫처럼 아무 것도 안 하고 빠지는 게 낫다.
![]() |
||
| ▲ 조커 역의 자레드 레토 | ||
캐릭터 이야기에 조커(자리드 레토)가 빠질 순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맛만 버렸다. 개인적으로 할리퀸보다 자레드 레토가 연기하는 조커에 기대가 컸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가라앉는 음침함이라면, 자레드 레토의 조커는 둥둥 떠다니는 광기를 예상했다. 히스 레저의 조커 못지않은 조커가 탄생하리란 기대가 깨지는 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는 영락없는 사랑꾼이다. 최고의 악당임에도 절절한 사랑만을 보여준다. 다들 액션물을 찍는데 혼자 로맨스물을 찍으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촬영기간 동안 조커에 푹 빠져 있던 자레드 레토가 동료 배우들에게 엽기적인 물건을 보낸 일화가 유명하다. 오죽하면 영화 속 자레드 레토보다 현실의 자레드 레토가 더 ‘조커’스럽게 느껴진다.
사랑꾼 조커마저도 얼마 등장하지 않는다. 할리퀸의 플래시백(flashback)에 많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편집됐다. 앞서 설명했듯 부족한 시간을 조커에게까지 할애할 여유는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배트맨보다 얼굴 몇 번 더 비추는 수준이다. 조연이 아닌 주연에 링크되어 있는 게 민망하다. 자레드 레토도 ‘속아서 출연한 것 같다’, ‘편집된 부분만 영화 한 편 분량’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지금도 조커 개별 포스터나 얼굴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공식 포스터를 볼 때면 여러 감정이 든다. ‘나를 우롱하다니!’라는 분노와 ‘나도 이런데 자레드 레토는 얼마나 분할까’라는 측은(惻隱), ‘이럴 거면 배트맨도 포스터에 넣어 주지’라는 동정심까지. ‘차라리 슬립낫처럼…’에서 조커도 예외는 아니다. 감독은 과감하게 조커와 자레드 레토를 버렸고, 슬립낫에게 의문의 1승을 안겼다.
결과적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수익성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지만, 작품성에서는 실패했다. DC의 영화 수익은 실상 들여다보면 영화가 아닌 코믹북에서 나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처럼 DC는 코믹북 속 캐릭터들의 배를 스크린이란 칼로 가르는 꼴이다. 계속 코믹북의 명성에만 의지한다면 DC의 영화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속편과 <할리퀸>(가제)의 제작이 확실해 보인다. 이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세상을 구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이 이번엔 위기의 DC를 구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두 번의 기회는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저 탈덕(매니아의 이탈)이 DC를 위한 말이 아니길 바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