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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기자, 그리고 무게중심

손정호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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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손정호][기사 내 모든 사진의 출처는 ‘NAVER 영화’입니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2015, 토마스 맥카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수의 범죄 스릴러물의 뼈대는 비슷하다. 막강한 권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비리와 범죄를 일삼는 세력이 등장한다. 앞에선 선을 표방하고, 뒤에선 악을 일삼는다. 영웅적 인물은 이에 맞서 싸워 정의를 실현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이와 같은 추악한 세력은 존재할지 몰라도 영화 속 영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힘이 그에 의해 무너질 리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영웅’이 ‘언론’이라면 어떨까? 허무맹랑해 보이는 스토리도, 신기루 같은 영웅도 현실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피(잔인성), 총(폭력성), 살(선정성)이 없는 범죄 스릴러물이라 말하고 싶다.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취재하는 과정을 그렸다. 성추행 증언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타 영화는 회상 신(Scene)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반면 <스포트라이트>는 인터뷰를 통해 과거 한 시점의 상처가 아닌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도 진행 중인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처를 꺼내야 하는 인터뷰이의 고통―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이 고스란히 담겼다. 만약 회상 신이 대신했다면 필 사비아노의 우려처럼 성추행은 영적 학대가 아닌 육체적 학대로만 전달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추어 마주해야 하는 기자의 고난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철저하게 기자의 시선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언론인에게 <스포트라이트>는 교과서적인 영화일 수밖에 없다.

   
▲ 보도 시점 때문에 격분한 마이크

  성추행 사건의 보도 시점을 두고 마이크 레젠데스(마크 러팔로)와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튼)은 충돌한다. 진실이 왜곡되기 전에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우선 보도하자는 마이크. 사제나 추기경이 아닌 체계를 잡기 위해선 아직 이르다는 월터. 마이크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격분한다. 2014년에 방영한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신입 기자 최인하(박신혜)는 빙판길에서 넘어지는 시민의 모습을 담아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현장에 도착하니 눈앞에 위험을 방치할 수가 없다. 결국 빙판에 연탄을 부수고 영상은 촬영하지 못한 채 복귀한다. 선임기자의 꾸중에 기자도 사람을 구하고 공익을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선임기자는 ‘넘어지는 걸 지켜보고 뉴스로 만드는 것’, ‘그 뉴스를 구청 직원, 대통령 등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것’이 기자의 공익이라 답한다. 눈앞에 몇 명을 구하려고 수 백, 수 천 명을 구할 길을 버렸다며 더 크게 혼낸다. 월터나 선임기자 모두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과거의 피해자가 미래엔 없어야 한다는 편이 더 맞겠다.

  이처럼 기자라는 이름 때문에 감수해야 할 어려움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이유 또한 기자라는 이름이다. 기자도 사람이기에 상황에 몰입되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는 항상 기자여야 한다. 월터도 성추행 사제들에 대한 분노가 왜 없겠는가. 다만 기자의 공익을 지키고, 언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참은 것이다. 눈앞에 꼬리만 쫓는다면 마티 배런 편집장(리브 슈라이버)의 말처럼 ‘소문만 무성하고, 현실은 그대로’가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인간적인 감정들은 억눌러야 했다. 실제 스포트라이트 팀은 본 스캔들을 보도하여 2003년 기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월터의 실제인물인 ‘로비’는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축하와 격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어요. 성추행 피해자들의 생생한 고통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거든요. 그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수상의 기쁨도 수그러져요.” 기자는 때로 휴머니즘(Humanism)보다 저널리즘(Journalism)이 우선시된다. 이로 인한 인간적 고뇌나 죄의식은 온전히 기자의 몫이며 이를 감내한다. 어찌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드러나지 않은 빙산의 밑부분을 발견하는 순간

  한국 사회에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다. <내부자들>에서 언론은 정치적·경제적 세력의 하수인 역할을 한다. 실제 언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본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언론사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특종:량첸살인기>에서처럼 언론은 저널리즘의 명분을 잃고 그저 수익성과 화제성만 쫓는다. 어뷰징 기사와 옐로 저널리즘, 사실관계는 따지지 않고 다른 기사 베끼기, 기업이나 단체의 마케팅 부서 같은 홍보성 기사. 언론에 대한 불신과 ‘기레기’라는 오명의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일부 잘못된 언론)이 오히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기경은 대답 대신 배런 편집장에게 선물 하나를 건넨다. 선물은 다름 아닌 교리 선언서. 표지를 넘기면 첫 장에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라’라고 적혀있을 것만 같다. 가톨릭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언론에 대한 경고이자 무언의 협박이다. 언론사의 주 수입은 독자의 구독료가 아닌 기업의 광고료다. 현실에선 광고료가 곧 교리 선언서인 셈이다. 자본에 의해 언론이 움직일 것이란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해도(또는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무언의 협박과 불신 속에서 진실을 꽃피웠다. 결국 이마저도 변명거리가 될 순 없다.

   
▲ 샤샤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와 실제 샤샤 파이퍼

  그렇다면 우린 현실의 스포트라이트 팀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마이크는 미첼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언론사에 미첼의 글을 싣고자 설득한다. 이미 다른 언론사에 실었다는 말에 마이크는 ‘아무도 안 읽는 언론사’라 답한다. 어쩌면 ‘아무도 안 읽는 언론사’는 스포트라이트 팀보다 앞선 스포트라이트 팀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도 목이 찢어져라 진실을 외치는 기자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이 스포트라이트 팀일지언정 독자(사회 구성원)가 외면하면 아무 소용없다. 감독은 당시 상황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담고자 했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스포트라이트 팀은 ‘만든’ 게 아니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참된 언론은 스크린 밖에도 분명 존재한다. 애타게 찾는 스포트라이트 팀이 실은 우리 눈앞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부 독자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다른 기자에게도 ‘기레기’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단다. ‘기레기’를 볼 때면 ‘빨갱이’가 떠오른다. 빨갱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낙인이다. 이 단어 하나면 국가적 차원의 적으로 매도된다. 마찬가지로 기레기는 언론에 대한 불신을 확고히 하는 주홍글씨와 같다. 부정한 목적을 가진 자가 이를 충분히 악용할 수도 있다. 그릇된 기자에게 기레기라는 이름은 인과응보지만, 우리는 이를 오남용하고 있다. 진실을 덮는 것은 자본이나 권력만이 아니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컴퓨터 전체를 마비시키는 법이다. 기레기에서 시작된 불신 하나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사고를 어지럽힐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이러한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이 되길 바란다.

   
▲ 스포트라이트 팀

  마이크는 봉인문서 공개 요청을 위해 판사를 찾아간다. 판사가 문서를 확인하고 민감한 사안이라며 “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입니까?”라고 묻자 “이런 걸 보도 안 하면 그게 언론입니까?”라고 답한다. 언론은 옳고 그름을 결정짓지 않는다. 잘못된 것―기자로서 판단했을 때―의 진실을 보여주되 독자에게 판단의 기회를 넘긴다. 힘의 논리나 이해관계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진실을 좇아야 할 이유이다. 개개인의 힘은 별 볼일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은 언론을 통해 다수가 되고, 다수는 곧 거대한 하나가 된다. 언론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과거엔 필의 자료나 에릭 맥클레쉬 변호사의 리스트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스포트라이트 팀에 의해 ‘진실’이란 강력한 힘이 됐다.

  만약 참된 기자인지 기레기인지 판별하는 저울이 있다면, 독자는 그 저울의 무게중심이다. 양편의 무게를 떠나 무게중심의 위치에 따라 저울질이 달라질 수 있다. 언론과 독자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느 하나가 아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은 언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기자든 독자든―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주할 용기를 갖는다면, 우리는 스포트라이트 ‘팀’을 넘어 스포트라이트 ‘체계’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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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호 기자
sonddaeng@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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