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주관적인,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그 공허. 일민미술관 <멀리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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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민미술관 | ||
[디아티스트 매거진=유승희] 소위 힙하거나, 혹은 핫하고 쿨한 이미지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라는 가벼운 파도를 타고 정보의 바다 위를 이리저리 오간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 이미지의 생존모습이다. 이제 SNS 마케팅은 얼리어답터의 이른 촉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카드뉴스 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미술관들은 관람객의 인증샷 요구에 못 이겨 사진촬영 허가의 포문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수많은 영상과 이미지들이 한 차례의 밀물과 썰물에 모두 쓸려가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에 꿋꿋하게 자신의 무게를 지켜온 포르투갈의 두 거장, 실험영화의 대가 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와 물성의 마술사 후이 샤페즈(Rui Chafes) 조각가가 일민미술관의 <멀리 있는 방 Distant Rooms>이라는 전시(06.25~08.14)로 한국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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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민미술관 3층 전시장 전경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불의 딸들>이 공중에 설치되어 있다. ⓒTHE ARTIST 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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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는 인간의 삶과 절망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업방식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는 포르투갈 변방의 마을 폰타이냐스(Fontainhas)에서 주로 작업하는데, 2명 정도의 스태프와 함께 35mm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한다. 게다가 배우는 연기를 한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않은 주민들이다. 배우들은 기분이 좋을 때 슬픈 연기를 하지 않고, 슬플 때는 신나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마약에 중독된 청년이 어린아이를 맡는 역을 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의 촬영을 두려워할 법도 하지만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를 신뢰하며, 그들의 작품 해석을 존중한다. 또한 촬영 후작업도 거의 하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만 하여 작품을 완성시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인물의 삶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같다가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픽션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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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민미술관의 천장에 설치된 후이 샤페즈의 <보이지 않는 살>. ⓒTHE ARTIST MAGAZINE | ||
후이 샤페즈(Rui Chafes)는 철을 재료로 대형 추상조각을 선보이는 조각가이다. 최근 포르투갈의 가장 권위 있는 예술상인 페소아 상을 받기도 한 그는 재료가 점점 가벼워지고, 혹은 없어지는 최근 미술계의 추세과는 달리 무거운 재료인 철을 다룬다. 작품의 무게는 100kg 정도로 굉장한데, 그는 작품을 미려한 형태로 마감한 뒤 공중에 띄워 관객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서사성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막연한 형체를 하고 있다. 동그란 구체 밑에 리본처럼 탄력있게 휘어지는 얇은 다리가 붙어있기도 하고,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삼각형들이 공중을 부유하기도 한다. 비록 그는 구체적인 경험들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영감은 마치 조각의 과정처럼 깎이고 다듬어져 결국 결정화된 도형모음이 된다.
두 작가는 2005년 포르투갈 세할베스 미술관(Serralves Museum of Art)에서의 2인전 <FORA! OUT!>을 통해 처음 만났다. 후이 샤페즈는 페드로 코스타를 만나기 전부터 그가 제작한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고, 페드로 코스타는 그의 작품을 보고 협업제의를 곧장 받아들였다. 이렇게 만난 인연은 이어 2012년도에는 일본의 하라미술관<Hara Museum>에서, 작년 10월에는 포르투갈의 카타콤베 화랑에서 듀오로 전시하며 꾸준히 이어져왔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는 게 정말로 있는건지, 우연한 기회에 만난 두 사람의 작업은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수도하고 발전시켜 많은 사람들의 감정선에 도달하는 작품을 만드는 두 사람의 작업은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특이한 작업기법은 그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졌다. 수많은 스태프들의 식사와 숙소, 셀 수 없이 많은 장비들을 관리하면서 정작 집중해야 할 내용과 촬영에 몰두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마을의 주민들과 가볍게 촬영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의 고민의 해답이 되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재가공이나 디지털보정을 거의 하지 않는 그의 편집 신념과 맞물려 마치 사람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미없는, 다시 말해 빈 장면들이 그의 필름에 남아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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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민미술관 2층 전시장 앞에 설치된 후이 샤페즈의 <블랙아웃>. ⓒTHE ARTIST MAGAZ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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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 샤페즈의 조각은 항상 검고 광이 적은 철로 제작된다. 그러한 질감과 색깔로 인해 그의 작품은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하며, 흡사 그림자가 생명을 얻어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조각이 하나의 입체가 아니라, 마치 시공간에 구멍이 뚫려 그 틈새로 다른 세상의 어둠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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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민미술관 2층 전시장 전경이다.후이 샤페즈의 <너의 손들>이 은은한 빛을 받아 서서히 드러난다. ⓒTHE ARTIST MAGAZINE | ||
흥미로운 점은 페드로 코스타와 후이 샤페즈의 이 ‘빈 장면’들과 ‘구멍’, 즉 이 공허들이 전시 속에서 돌연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얼굴을 비추며, 객체로서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아 들이던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게 만든다. 관객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빈 공간에 투사하기도 하고, 혹은 작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어느 전시보다도 공허한 두 사람의 전시는 관람객들이 메워 넣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고, 수많은 공상과 독백들이 떠돌며 풍부한 의미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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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민미술관 1층 전시장의 전경이다.페드로 코스타의 <불의 섬>과 후이 샤페즈의 <내 영혼의 이야기>가 보인다. ⓒTHE ARTIST MAGAZINE | ||
또한 두 작가는 전시를 통해 어둠을 바라보는 법을 제안한다. 쏟아지는 빛에 몸을 환히 비추며 제 모습을 뽐내는 무언가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자신이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희망하는 무언가를 조심스레 찾아보는 것이다.
페드로 코스타 감독은 ‘현대에 이르러 영화에는 기술적으로 진정한 어둠이 없다.’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필름 방식의 영화에서의 어둠은,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투과되지 않아 생기는 어둠이었으나, 디지털 영화에서의 어둠은 검은색 빛을 쏘아 만드는 어둠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예전 아날로그 방식에서의 어둠을 다시 소환한다. 영상을 전시장의 스크린 비율에 맞추기 위해서는 원본 영상의 끝자락을 조금 잘라내야 하는데, 그는 영상을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터의 앞에 검은 단을 만들어 영상을 가림으로써 빛으로 만드는 어둠이 아니라, 빛이 가려짐으로써 생기는 어둠을 전시장 안에 가져왔다.
후이 샤페즈는 어두운 방 안에 자신의 조각을 들여왔다. 그의 조각은 오로지 전시장 곳곳에 위치한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 푸티지에서 나오는 옅은 빛과 약간의 조명에 의지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조각들은 전시장의 널찍한 공간에 당당하게 나와있지만 의도치 않게 관객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형세가 되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주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데, 한참 동안 어둠을 더듬다보면 어느새 눈 앞에 후이 샤페즈의 조각이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그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마치 조각하는 과정과도 같다. 맨 처음에는 커다란 형체일 뿐이었다가 차츰 뾰족한 깃이 보이고, 그 사이로 작은 틈새와 같은 디테일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그의 조각은 생겨났다 사라짐을 반복한다.
이 전시가 시작되기 전, 페드로 코스타와 후이 샤페즈는 온통 하얀 일민미술관의 벽을 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게 까맣게 칠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로,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 <멀리 있는 방 Distant Rooms>의 전시장 안은 바로 눈앞에 있는 후이 샤페즈의 작품에 부딪힐 정도로 어둡다. 전시장에서 힙하게 찍은 셀피를 인스타에 올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번 전시는 실망거리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떠오르며,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이미지들은 그만큼 빠르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찬찬히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 거장의 작품은 그만큼이나 오래, 서서히 당신의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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