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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그림과 함께하는 인생

이민아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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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민아] 예술가들은 자신의 인생을 작품으로 남긴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간접적으로는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배울 수도, 교훈을 얻을 수도,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여기에 젊지 않은 나이에 정식적인 미술교육 없이, 미술에 대한 열망과 흥미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다. 그의 전반적인 삶과 작품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 지금에 와서 마음대로 평가하기엔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기답게 나아가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 아아 오라나 마리(안녕하세요, 마리), 1891,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위의 그림은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고갱의 그림으로, ‘고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느낌의 그림 중하나이다. 고갱은 어린 시절 페루에서 살다가, 파리에서 부르주아의 삶을 누리다가, 다시 타이티에서의 낭만적인 삶을 꿈꾸며 떠났다. 잠시 동안은 이상적인 화가집단을 꿈 꾼 고흐와 함께 지내지만 결국 고흐와는 다른 삶을 선택하고, 고흐는 서로의 차이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여하튼 고갱은 다른 누구 못지 않게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 예술가로서의 삶 시작

고갱은 30대 초반까지는 파리에서 증권회사를 다니며 경제적으로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수집하는 등 예술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직업 예술가가 되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처음 그림을 시작한 나이는 35세이다. 처음에는 풍경화를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인상파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거나 살롱에 입선되기도 할 정도로 초기부터 그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

   

▲ 센 강의 이에나 다리, 1875,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 포플러 나무들이 있는 풍경, 1875,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2. 고갱만의 그림 양식과 그것을 형성해가는 과정

하지만 그는 도시의 화려한 삶이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 원시적인 무언가를 원했다. 또한 상징적이고 내면의 깊은 곳부터의 무언가를 표현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과감하고 단일한 색조의 배경, 보색의 대비 등의 효과를 이용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길 바랐다. 그렇게 파리를 떠나 새로운 장소로 옮긴다. 퐁 타벤 지방으로 옮기면서 베르나르의 굵은 윤곽선과 강렬한 색의 커다란 평면의 양식과 만나게 된다. 고갱은 베르나르의 영향을 받으며 다음과 같은 그림 등을 거쳐서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간다.

   

▲ 라발의 옆 모습이 보이는 정물화, 1886,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 설교 후의 환영(천사와 결투하는 야곱), 1888,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아래의 그림에서 보면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나무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인물의 크기로 다른 공간에 있거나 거리가 떨어져있음이 느껴지기는 하나, 3차원의 깊이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흰 모자를 쓴 여인들은 그 지방의 전형적인 여인들로, 설교를 들은 후 기도하며 신비감과 황홀함을 보여준다. 나무 너머에서는 씨름을 하는 듯한 천사와 야곱이 그려져 있다.

이 무렵 고갱이 친구 에밀 슈프네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의 위의 그림과 같은 양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드러난다.

 “한 가지 충고를 하자면 자연에 너무 매달리지 말게. 미술은 추상일세. 자연 앞에서 명상해 보고 자연에서부터 예술을 끌어내게. 그리고 그 결과로 생성된 창조에 대해 생각해 보게. 창조야 말로 우리의 전지전능하신 주가 한 것처럼 신에게 접근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일세.”

이렇듯 고갱은 점점 더 선과 색채의 추상성을 통한 신비스러운 내면 세계의 표현에 집중하게 된다. (서양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그리고, 이것은 훗날 ‘종합주의’라는 양식으로 나타난다. ‘종합주의’라는 용어는 1889년 고갱이 파리 만국 박람회에 대항해 진행한 전시의 명칭인 <인상주의와 종합주의> 에서 사용되며 등장한다. 종합주의는 상상과 실제의 경험이 종합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미가 회화로 표현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강렬한 색면과 굵은 선, 그리고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관적 의미와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양현대미술의 기원, 김영나)

또한 고갱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그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내는 상징에도 관심이 깊었다. 이러한 고갱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과 그의 삶은, 훗날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예술가들을 나비파라고 지칭할 정도로 미술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3. 도피의 삶; 파나마, 아를 그리고 브르타뉴

그리고 그는 원시적인 것에 대한 선망으로 도시를 떠나 원시적인 세계, 파나마로 떠난다. 파나마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자유로운 그 지역의 사람들의 그림을 그리고 고갱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다. 다음에 나온 그림은 고갱이 마르티니크에 잠깐 머물면서 그린 그림 중 하나로, 고갱만의 양식이 보인다.

   

▲ 열대에서의 대화, 1887,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파나마에서 병들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반 고흐 형제와 긴밀한 관계가 된다. 이후 고흐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고갱을 아를로 초대해서 고흐와 잠깐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고흐가 고갱과 다툰 이후 귓볼을 잘라내고, 자화상으로 그려서 그 기록을 남긴 사실은 대부분 들어보았을 것이다.

   

▲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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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상향과 생각이 서로 달랐기에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처음에는 편지를 통해 우정을 쌓고 기대감을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을 시작했다. 서로에게 자화상을 그려주기도 하는 등 우정을 표현했지만, 결국은 의견 차이로 인해 갈라진 이후 고흐는 더욱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고 서로는 더 이상 보지 않게 된다.

   

▲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 1888,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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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파리에 잠시 돌아와 친구 에밀 쉬프네케르와 함께 살다가 다시 브르타뉴, 퐁타방으로 떠난다. 그곳에서는 더욱 원시적이고 상징주의적인 느낌이 풍부해진다. 그 때의 그림 중 기독교적 주제를 지닌 작품들도 있었는데, 다음의 그림들이 대표적이다. 슬프고 괴로움이 담긴 예수의 얼굴은 화가 본인의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 브르타뉴 지방의 골고타(녹색 예수), 1889, 폴 고갱

Copyright © 2002-2016 www.paul-gauguin.net

   

▲ 황색 예수, 1889,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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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시적인 삶을 향한 열망, 타이티에서의 생활

그리고 점점 더 먼 나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타이티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타이티는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로 프랑스에서 온 세속적인 사람들이 점령해 순수한 원시적인 곳에서 유럽과 비슷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곧 타이티 사람들의 관습에 적응하고 함께 살아간다. 당시의 그림들이 다음과 같다.

   

▲ 아레아레아(즐거움), 1892,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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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정령이 지켜봄(마나오 투파파우), 1892,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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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고갱이 완전히 그들의 삶에 융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그림들 속에서 나타나는 서구적인 모티프, 남성 우월주의 등을 통해서 보면, 원시적인 삶은 잠시 복잡한 도시를 더나 여유를 누리고 싶은 공간이었고 자신이 지배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그의 그림을 팔려는 시도를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결국 성과를 얻지 못하고 다시 타이티로 돌아간다. 타이티에서의 삶도 다시 곤경을 겪게되자, 마르케사스로 떠나 그곳에서 결국 쓸쓸하게 삶을 마무리한다. 그 때 유럽에서는 고갱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도 그를 선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그것들을 누리지 못한 체 떠나게 된다.

   

▲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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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그 결과가 당시에는 모두 성공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면 예술사에서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선구에 서서 도전을 해갔던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주위 환경과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결국에는 이루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도전하지 못해서 후회가 남는 경우가 있다. 도전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을 때,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지금 이름이 남겨진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당시에는 비난 받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어내고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물론 경제적인 것도 주위의 시선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그것을 마음 속에서 놓지 않고 끝까지 최선에 다해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자신의 꿈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예술가가 되고, 원시적인 것을 동경해 파리를 떠나 타이티로 떠났던 고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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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기자
alsdk527@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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