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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경계, 청춘의 자화상. 영화 <동주>

   
▲ ⓒ네이버 영화 포토

[디아티스트 매거진=장영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며칠 전 관객 수 110만 명을 넘었다. 마블 히어로 영화인 <데드풀>과 같은 날 개봉, 저예산에 흑백 영화라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흥행을 이어나간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애통했던 민족의 삶과 독립운동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 친일파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그 시대에 고작 스물다섯 살이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가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 때 그들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다는 것은 과히 놀라운 일이다. 지금의 스물다섯은 취업준비와 진로고민 등 당장 앞에 놓여있는 벅찬 현실에 부딪치며 방황하는 그야말로 ‘아픈 청춘’이기 때문이다. 동주는 같은 나이에 나라를 잃었다. 그는 꿈을 접어야 하는 시대를 살았다. 청년 동주의 개인의 삶만 두고 보면 두 시대에서 비슷한 맥락을 발견 할 수 있다. 동주‘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것. 자신을 항상 부끄러워했다는 것.

그래서 영화는 윤동주 시인의 독립운동가적 성향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연약하고 조국의 말로 시를 짓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두려워 할 뿐이다. 그의 연약함은 사촌이자 친구로 등장한 몽규를 통해 더욱 부각된다. ‘동주를 보러 갔다가 몽규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영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몽규 캐릭터는 동주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는 강단 있는 성격에 행동가적 성향을 지닌 독립투사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서 움직인다. 동주는 그런 몽규 앞에서 작아진다. 몽규와 달리 꿈을 두고 고민하는 자신을 괴로워하기도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성격의 두 청년을 관찰하는 것도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또 이야기가 교차편집으로 진행되는데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사도>와 같은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극을 시간의 흐름으로 끌어 나가면 지루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주>의 교차편집은 늘 자책하고 부끄러워했던 동주가 자신에게 닥쳐온 사건 속에 어떤 선택을 하며 점점 변화해 나가는지를 포착한다. 윤동주 시인은 부끄러움의 정서를 담은 시를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생각과 정서는 동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곧바로 투영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말투’다.

   
▲ ⓒ네이버 영화 스틸컷

간도에서 자란 동주와 몽규는 사투리를 쓴다. 몽규는 끝까지 말투가 바뀌지 않는다. 억양이 강한 사투리는 독립운동을 지휘할 때도 결단력 높은 인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동주는 다르다. 그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표준어를 사용한다. 자신과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의 모습이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관객 수가 100만 명이 넘은 시점에서야 리뷰를 쓰는 것은 영화 동주가 과거를 산 타자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동주와 몽규가 겪었던 현실에 대한 처절한 고민이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해답이 되길, 그들이 다하지 못했던 청춘의 삶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 <동주>는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리는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야외상영작으로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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