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2016년 지금 영화를 비롯한 영상예술계에는 다양한 표현기법이 존재하고 그 기법을 이용하여 광활한 표현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더 넓고 더 다양한 표현을 강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예술진보의 당연한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쯤 이 당연한 흐름에 반(反)해보는 것도 또 다름 새로움일 것이요 역설적인 의미에서의 예술진보가 아닐까? 2016년 2월 17일 개봉한 이준직 감독의 ‘동주’는 과감히 근대적 영상예술기법인 흑백영상 기법으로 영화를 만들어내 대중들에게 잊혔던 흑백영상미를 선사해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흑백이었기에 아니면 흑백영상을 잘 이용했기에 영화사에 수작으로 남은 영화들이 있었다. 2016년 3월에 접어든 이 시점에 영화관 곳곳에 당당히 흑백영화가 걸려있는 이 시점에서 영화역사를 빛낸 흑백영화들을 다시 감상해보는 것도 영화예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 흑백영화들을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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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독재자’ 스틸컷 | ||
위대한 독재자
‘위대한 독재자’를 감상할 때 두 가지는 인식해야한다. 하나, 흑백영화필름은 1950년대에 서서히 사라졌다는 것, 즉 ‘위대한 독재자’는 어쩔 수 없이 흑백영화로 만들어졌지 흑백영화냐 유색영화냐에 갈림길에 서본 적 없는 ‘위대한 독재자’라는 것. 둘, ‘위대한 독재자’ 탄생한 시기는 1940년은 세계 2차대전이 진행 중이었다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한 풀이를 내놓으면서 우리는 ‘위대한 독재자’를 감상해야한다. 흑백영화냐 유색영화냐 이 두 갈림길에 서있지 않은 영화를 가지고 흑백영화만의 매력을 가졌다고 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결과론적인 답일지 몰라도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를 그렇다면 그냥 감상해보라. 그리고 자신에게 되물어보라. 과연 ‘위대한 독재자’라는 작품이 유색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세기를 대표하는 찰리 채플린의 명작으로 남았을는지. 흑백이었기에 찰리 채플린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날 수 있었고 찰리 채플린이 영화 내내 움직이는 웃음을 위한 몸부림 그리고 마지막에 터지고야 마는 ‘위대한 독재자’가 말하는 최종적 주제의식이 말끔히 살아난다. 그리고 두 번 째 인식점인 세계 2차 대전 당시 탄생한 ‘위대한 독재자’라는 점. 흑백이었기에 당시의 영화기술력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찰리 채플린이 풍자하고자 하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인상도 유색보다 더 강하게 전달받는 것이다. 물론 ‘위대한 독재자’가 유색영화로 제작됐으면 하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독재자’가 흑백영화기에 이토록 영화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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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의 휴일’ 스틸컷 | ||
로마의 휴일
‘로마의 휴일’은 과도기에 있던 작품이다. 서서히 유색영화가 등장하면서 흑백상업영화의 말미를 장식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로마의 휴일’이 유색영화로 제작되기를 바라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대중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이미 ‘로마의 휴일’은 흑백으로써 영화의 완성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기의 미녀 오드리 햅번은 흑백이란 단순한 색채감 속에서도 미모는 뛰어났고 여전히 그녀의 기억은 흑백이더라도 지금껏 대중들 가슴 속에 남아있다. 또 한 ‘로마의 휴일’은 제목답게 앤 공주가 조 브래들리는 우연하게 만나 교감하면서 거니는 도시가 바로 로마였다. 검은색과 하얀색 이 두 가지 색채뿐임에도 앤과 브래들리가 거닌 로마 곳곳의 명소는 여실히 맑게 표현됐다. 137개의 계단, 진실의 입, 콜로세움 등 로마 곳곳의 명소는 흑백의 색채를 타고서 더욱 명확히 영화에 담겨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흑백이란 다른 색깔을 허용치 않은 단순색채덕분에 앤과 브래들리의 교감에 우리는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로마의 휴일’을 오드리 햅번의 영화로만 표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 바로 뒤에 따라붙어야 할 수식문구는 ‘흑백의 미를 잘 살린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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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쉰들러 리스트’ 스틸컷 | ||
쉰들러 리스트
1950년대 코닥의 유색필름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현대에는 거의 흑백영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흑백영화는 희소가치를 탄생과 동시에 얻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색영화 속에서 흑백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색채감 이외의 면에서 자신감을 비춘다는 뜻이고 그 자신감이 외면을 받아버리면 바로 졸작으로 멸시받는 건 자명한 수순이다. 그렇기에 현대적 의미에서의 흑백영화 선택은 좋은 영화라는 결과물이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좋은 결과물을 내놓아 시대의 명작으로 남았으며 결과적으로 흑백영화의 미를 다시 한 번 살린 현대 영화사 명작, 바로 ‘쉰들러 리스트’다. ‘죠스’, ‘E.T.’,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등 이미 셀 수 없는 명작들을 내놓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1994년 흑백영화 제작을 감행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자신의 경제적 힘을 이용해 구하려 애썼던 그렇게 1,100명의 유대인들을 구했던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쉰들러 리스트’다. ‘위대한 독재자’를 감상할 때와 같이 스티븐 스필버그는 당시 시대적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또한 ‘쉰들러 리스트’의 핵심 소재였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보다 첨예하기 그려내기 위해 색채가 아닌 흑백명암조절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했다. 결과는 감독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도 예상 못 한 대성공이었다. 단순 흥행 수치를 넘어서 시대가 기억하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도 남게 됐고 유색영화도 이루지 못 한 또 하나 20세기 명작으로 ‘쉰들러 리스트’가 됐다. 제 66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1998년 미국 영화연구소 100대 영화 9위 선정, 2007년 미국 영화 연구소 100대 영화 8위 선정 등의 평가들이 과연 ‘쉰들러 리스트’가 유색영화로 만들어졌다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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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수정’ 스틸컷 | ||
오! 수정
우리나라에도 흑백영화만의 매력을 잘 살려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다. 홍상수 감독, 故이은주, 정보석, 문성근 등 참여했던 영화인들의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오! 수정’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 중에 홍상수 감독의 예술성이 흑백영화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흑백영화는 본질적으로 색채감을 제외한다. 그렇기에 색채 이외에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인 배우들의 감정선, 서사전개 등에 관람객들은 집중하게 된다. 홍상수 감독은 그리 표현주의적인 감독이 아니다. 색채감 없이도 자신의 예술성을 여실히 표현할 수 있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렇기에 홍상수 감독에게 흑백영화는 무리 없는 표현기업인 셈이다. 그렇게 ‘오! 수정’은 홍상수 감독 지휘 아래 주연배우들은 더욱이 세밀한 감정을 심층적으로 연기해냈다. 재훈은 수정을 원하고 수정은 재훈에게 이끌리는 듯 하지만 재훈이 원하는 섹스는 두렵고 그와 동시에 영수는 자신의 시선 안에 있을 만큼 가깝고 또 그와 동시 재훈과 영수는 미묘한 경계를 유지하고. 정말 얇고 얇은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세 남녀의 감정이 흑백이라는 담백한 영상미 속에서 증폭된 것이다. 단언컨대 ‘오! 수정’이 유색영화로 만들어졌다면 홍상수 감독 특유의 세밀하고 현실주의적인 예술성, 홍상수 감독의 예술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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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씬 시티’ 스틸컷 | ||
씬 시티
그렇다고 해서 흑백영화에게 색채감을 반드시 무시하라고만 하는 것은 예술의 정체 아닐까? 흑백영화에게 색채감을 살려보라고 주문하는 건 태양이 두 개이길 바라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문이자 상상일까? 이 물음에 ‘씬 시티’는 해답을 내놓으려 노력했다. 여러 이야기가 자유로운 영상 길이로 만들어져 한 데 모아진 영화가 ‘씬 시티’다. ‘씬 시티’는 영화영상 대부분이 무채색 흑백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 속에 핵심이 돼야만 하는 소재들은 흑백처리가 아닌 아주 강하디 강한 유색으로 처리돼있다. ‘노란 녀석’의 노란 녀석은 정말 개나리보다 더 노란 색으로 표현돼있고 마브의 마음을 빼앗은 골디는 금발에 빨간 드레스까지 완연히 유색처리 돼있다. 이렇듯 이야기 속 필수적인 존재들에게는 유색으로 처리돼있다. 즉 ‘씬 시티’는 수차례 흑백명작들이 입증해온 흑백영화의 감성을 이어받으면서 영화 속에서 대중들에게 강한 인식으로 전달하고픈 소재들에겐 짙은 유색으로 처리하고 강조미를 남겼다. 흑백의 미, 유색의 미 전부 거머쥐어버린 ‘씬 시티’의 영리한 표현법이다.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감히 ‘씬 시티’란 영화에는 ‘흑백영화가 극복하고 싶었던 색채미의 한계’라는 평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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