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역사는 영화예술계에 영원한 소재 화수분이다. 그러나 단순 상업을 목적으로 영상예술이 제작된다면 상업적 목적을 이루지 못 한다. 이유는 역사는 곧 인류의 혼을 담고 있고 그 혼을 현재 우리는 지니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단순 상업목적 영화예술은 멸시 받음이 당연하다. 그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면 더욱이 민감하고 조심히 받아들일 것이다. 이는 영상예술 제작자든 대중들이든 예외가 없다. 민감하고 소중히 그리고 반드시 잘 만들어져야만 하는 시기의 역사가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다. 일제가 한반도에 침입해 우리 한민족을 말살시키려던 그 시기, 바로 일제강점기다. 비록 일제가 총체적인 면에서 우리 한민족으로 말살시키고 아시아를 정복하려했지만 우리 선조들의 끝없는 저항으로 우리 한민족은 독립을 일궈냈고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우리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은 반드시 교과서 속 역사교육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매체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 다양한 매체 중 가장 효과가 큰 것이 영화다. 부정할 수 없다. 영화로 잘 만들어져 우리 한민족 비극의 역사, 일제강점기를 잊지 않게끔 해주었던 작품들을 우리는 다시 감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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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군의 아들’ 스틸컷 | ||
장군의 아들
우리는 독립운동이라 하면 총칼을 들고 일본군에 맞서 싸운 무력투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반드시 무력투쟁만이 독립운동이라 말하고 싶진 않았다.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탄압받는 우리 한민족의 입장에서서 한민족을 보호한다면 그것도 독립운동의 일환이라 판단해야할 것이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인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은 자신의 주먹으로 자신의 힘으로 서울 종로 바닥에서 살아가는 한민족들을 보호했다.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의미의 독립운동을 하던 김두한을 영화로 재조명 시킨 영화가 바로 ‘장군의 아들’이다. 1990년대 특유의 아날로그 영상미 속에서 ‘장군의 아들’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배우 박상민을 종로의 독립운동가 김두한으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장군의 아들’이 영화로써 완성될 수 있게끔 김두한의 맞은 편에 섰던 하야시를 신현준은 연기했다. 완벽한 이미지의 구축이었다. 2016년 현재까지도 김두한의 박상민은 지워지지 않고 하야시의 신현준은 뚜렷하다. 그리고 이들이 갈등하던 ‘장군의 아들’ 속 일제강점기 시기 경성 거리가 아른하다. ‘장군의 아들’은 여러 의미를 낳는다. 본격적인 한국액션영화의 시작, 박상민과 신현준이라는 배우들의 성장, 임권택 감독의 또 다른 수작 생성 하지만 이 문구들 안에서 동일하게 명시돼야 할 문구는 ‘독립운동가 김두한을 재조명한 성공적인 일제강점기 영화 탄생’이다. 결정적으로 이 문구에 대중들이 지지했기에 아직까지도 ‘장군의 아들’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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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나키스트’ 스틸컷 | ||
아나키스트
일제강점기는 일제에 맞서던 우리 한민족 비극의 역사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마냥 일제에 항거하지 않았다. 항거 이후 일제가 사라졌을 시 한반도 땅에 어떤 국가를 세울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서 해왔었다. 모두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공산주의, 조선시대와 달리 모두가 시민이 되고 시민의 권리를 드높이는 민주주의 등등 여러 사상들을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항거하며 일제 패망 이후의 세상을 꿈꾸었다. 일제의 폭력과 탄압에 항거하여 한 일환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모든 체계와 정부 존재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 아나키스트들도 독립운동의 갈래로 등장했었다. 이 아나키스트들의 고뇌를 담고 이들의 활동 그리고 죽음까지 그린 영화가 바로 2000년 4월 29일에 개봉한 ‘아나키스트’다. 대중들은 ‘아나키스트’ 이 다섯 글자에 생소했을 것이다. 이를 알고 영화 ‘아나키스트’는 다섯 명의 남자들의 움직임으로써 ‘아나키스트’들이 어떤 사고를 지닌 사람들인지 설명한다. 사실 ‘아나키스트’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것도 이 영화의 중요하게 작용한 기능 중 하나겠지만 결국 영화 ‘아나키스트’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은 마지막에 드러난다. 결국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던 상구를 제외한 네 남자는 무력투쟁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네 남자에서 그리고 네 남자의 죽음을 바라보던 상구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영화 ‘아나키스트’의 주제의식을 절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상이 중요하랴, 결국 우리가 몸을 내던져 바라던 것은 독립이거늘’이라는 주제의식을 누구든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라는 방법을 가져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린 영화 ‘아나키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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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살’ 스틸컷 | ||
암살
영화와 상업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보다 넓은 예술폭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본이 필수적이고 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기업의 투자가 절실하다. 하지만 투자의 개입이 심해질수록 영화의 예술성은 좁아진다. 즉 그 정도를 잘 맞춰야한다. 이 정도를 적당히 지켜가면서 가장 적극적이고도 가장 짙게 독립운동가들을 그려낸 영화가 바로 ‘암살’이다. ‘암살’ 속 모든 내용이 진실이라 보긴 힘들다. 그럼에도 ‘암살’은 대중들의 지지를 확실히 받으며 천만관객 돌파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하여 높은 흥행을 그렸다면 대부분 그 역사를 지나치게 상업화한 채로 가져다 쓴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암살’은 아니었다. 비록 허구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더라도 ‘암살’이 전개하는 독립운동의 표현은 일제강점기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 현재 한민족 정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져 일본군 심장으로 침투하여 일본군 핵심인물을 암살하는 이 과정을 비록 허구라지만 역사학계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허구, 대중들이 충분히 이입할 수 있는 정도의 허구, 영화기에 표현 가능한 허구를 적절히 담아냈다. 앞으로도 아마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일제강점기 속 우리 한민족의 비극을 담을 영화가 분명 더 제작될 것이다. 그 영화들에게 고하고 싶다. 반드시 사실만을 기대어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영화는 영화다. 영화기에 허용되는 수준의 허구를 잘 살려 역사를 선택하길 바란다. ‘암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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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주’ 스틸컷 | ||
동주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의 희생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장군의 아들’, ‘아나키스트’, ‘암살’ 이 세 편만 봐도 독립투사들이 어떻게 독립을 열망했는지 어떻게 일제에 항거했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영화로써 간접체험 할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투사들만이 희생당한 것이 아니다. 무력투쟁이라는 방법 이외에서 우리 한민족의 혼을 살려나간 위인들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일제강점기 문학가 윤동주다. 우리는 윤동주라는 인물과 윤동주가 남긴 작품 몇몇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윤동주라는 인물 삶 속에서 느껴지는 독립에 대한 열망을 다소 무관심한 채 살아왔다. 윤동주는 기억하면서 윤동주의 유명한 작품 몇몇은 기억하면서 윤동주의 삶 속 독립의지를 모른다는 것은 독립을 맞이하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를 내놓았다. 영화라는 방법으로써 윤동주의 삶을 다시 그려보기 위해. 비록 영화 ‘동주’가 윤동주 삶 전체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윤동주의 삶이 어땠는지 느낄 수 있는 가장 잘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영화 ‘동주’임을 느낄 수 있다. 윤동주의 삶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윤동주의 단짝이자 청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송몽규의 삶, 송몽규의 독립의지 또한 느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문학예술가들의 의지적인 삶을 영화 ‘동주’는 흑백의 색채로써 여실히 살려내고 있다. ‘동주’로써 이것 하나만큼은 느끼길 바란다. 독립운동을 직접 이끈 무력투쟁 독립운동가들만큼이나 독립을 꿈꾸며 마지막 영혼을 일제에 팔지 않았던 문학예술가들에게도 시선이 머물러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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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향’ 스틸컷 | ||
귀향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투사들의 죽음도 비극이다. 총칼을 들 수 없어 뚜렷하게 독립을 부르짖지도 못 한 채 그저 영혼만을 유지해야 했던 문학가들의 삶도 비극이다. 하지만 감히 가장 비극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비극은 바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한 채 일본군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폭행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런 비극을 계속해서 당해야 했던 비극을 가장 큰 비극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현재 일본의 뚜렷한 사과도 없을뿐더러 우리 정부의 단호한 태도도 없다.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다가 2016년 2월 24일 영화 ‘귀향’이 시나리오 완성 14년 만에 개봉됐다. 참으로 개봉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우여곡절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었다. 14년 만에 개봉이 된다는 점, 국제적으로 민감한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 여러 우려들이 개봉 전에 나돌았다. 분명 영화 소재로써 가치가 있지만 결과물이 좋지 않을 시에는 이 민감한 소재를 영화로 괜히 삼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에 상처만 더했다는 거센 비판만 받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최소한 이 비판만큼은 들지 않을 것이다. 확신한다. 영화 ‘귀향’은 단순히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다. 그 아픔을 조명하면서도 영화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 내구성을 철저히 갖추었고 그 전개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표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에 영화 ‘귀향’은 영화로써 힘을 온전히 받는 것이다. 본질에도 충실했기에 그 소재의 선택 또한 정당성을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 일제를 향한 우리 선조들의 목숨을 내던진 독립운동도 분명히 우리는 정확히 명확히 기억해야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 정확히 명확히 기억해야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어떤 아픔과 비극을 겪었는지다. 감히 가장 비극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비극을 우리는 영화 ‘귀향’으로써 기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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