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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엔딩노트>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 = 임다정]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것 만큼 명쾌하게 ‘참’인 명제가 또 있을까? 일찍이 예술가들은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모습으로부터, 인간을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로 내던져진 존재로써 인식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에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간 삶의 유한함은 곧 인간 존재에 대한 허무와 퇴폐를 낳을 뿐이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태어면서부터 ‘죽어가는’ 존재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그 어느 공포기제보다 압도적인 것이며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 <엔딩노트>는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오히려 ‘삶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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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엔딩노트> 스틸컷 | ||
은퇴 후 제 2의 삶을 준비하던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을 통해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하루아침에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에 직면하게 된 그는 실의나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한 ‘엔딩노트’를 작성하면서 ‘일생일대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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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엔딩노트> 스틸컷 | ||
엔딩노트의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아내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 해보기’ 등 일상생활에 존재했던 소소하고 유머러스한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스나다 도모아키와 그 가족들은 편안하고 즐겁게 죽음이라는 존재를 맞이하고 받아들인다. 도모아키가 누워있는 병실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웃으며 “이렇게 다들 웃고 있으니까 여기가 천국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가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이미지와 전혀 상반된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떠올리며 절망한다. 당장 내일의 일 조차 불투명한 우리에게, 더 먼 미래는 막막함 그 자체일 것이다. 심지어 그 미래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엔딩노트>는 그런 우리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미래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현재가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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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엔딩노트> 스틸컷 | ||
마닐리우스는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고, 그 끝은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우리의 존재가 무(無)가 된다는 점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당연히 두려운 것이고 낯선 존재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떤 질병이나 저주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감독인 스나다 마미는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의 친딸이다. 실제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과정이 분명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즐겁게 볼 보편적인 이야기”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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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엔딩노트> 스틸컷 | ||
죽음은 분명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죽음과 미래에 대해 막막하거나 두려움이 떠오른다면, <엔딩노트>를 꺼내보자. 죽음이 주는 현재라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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