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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미술관 안에 전시된 그림들 | ||
“당신의 그림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내 그림이다 싶은 명화와의 운명적인 만남.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디아티스트매거진=이봄] <삶이 그림을 만날 때>라는 책 표지에 나와있는 말이다. 저자인 안경숙씨는 “그림은 감상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일상의 동반자이다” 라고 했다. 또한 “그림은 곧 삶이고 삶은 곧 미술이다” 라고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미술은 그저 사치스러운 그 무엇에 불과하며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림은 우리 일상생활에 근접한 것이며 단지 사고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 서술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미술 학도의 길을 걸어야만이 미술관련 서적을 낼 수 있다’ 라는 편견을 깨부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싶다.
나는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했으며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줄곧 듣고 자라났다. 그러나 미술의 길로 들어서고자 한 그때의 나는 나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나이였고, 진정으로
원하는 길인지 알 수가 없어 미술학도로 전진할 수 없었다. 미술에 대한 열정은 갖고있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미술 학도가 아닌 사람이 미술관련 서적을 출판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었으며 한편 저자 덕분에 그림감상을 여유있는 사람들의 고상한 취미로만 정의내렸던 나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장쑤미술관은 최초 중국 근현대 국가 미술관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 핵심 미술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관람한 전시회는 <시대의 발자취, 중국 백가진링 전시회(유화)> 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개최된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는 현실주의 정신을 드높이고 민족문화를 생동감있게 나타내어 중국 특색미술을 장려하자라는 취지이다.
전시회 주제는 ‘시대의 발자취’로 하며, 예술가들이 현실생활에 입각하여 예술의 형식으로 시대의
변모와 이 변화를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할 것을 권장하였다라고 장쑤 미술관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나와 있다.
전시되어 있는 50여 작품은 대략 소수민족, 풍경화, 현대인의 자화상, 노동자, 환경오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존재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중국에 오기전까지는 소수민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때문에 이해하기힘들기도 했으나 지금은 중국에서 생활하며 여러 방면으로 공부하다 알게 되었고
관심있게 보니 지금은 익숙해졌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에서 서서히 다민족국가로 변해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지금도 베트남, 중국, 중앙아시아. 미얀마, 캄보디아등지의 신부들이 국내로 유입되어 조금씩 변모해 가는 중인것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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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陆庆龙(작가), 望果节(작품 이름), 장쑤미술관(江苏美术馆) | ||
금상을 받은 작품 중 제일 첫번째 작품, 여러 명의 소수민족들이 望果节(= 과일의 날)을 지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그림의 분석이 달라진다.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게 느껴진다. 한가운데 가장 밝은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마치 누군가를 보는듯한 눈동자가 그렇다. 무엇인가를 응시하지만 그 눈동자에서 불안함과 불쾌함이 보인다. 중국에서 살지 않았다면 느끼지도 분석하지도 못했을 미세한 부분이다. 내가 말하는 불안함과 불쾌함은 한족의 지배 아래 통제받고 제한적인 생활을 하는 소수민족들의 마음을 깊이 보게 된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한족이 대다수이며 그 나머지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족은 소수민족을 하나의 중국으로 포함시키려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말에는 소수민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없는 이유는 ‘분리 독립’과 연관이 되어있기에 인도적인 방법만으로 대하지는 않기도 하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유화정책에 사용하며 55개 소수민족을 한족 에 포함시켜 반강제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외치려고 하는 중국의 모습이 살뜰하게 느껴지는 시간은 아니었다. 문득 아이리스 장이 쓴 책의 제목이 생각났다,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라는 말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번 전시회 대부분의 작품에서 어두운 계열의 물감을 사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우울함과 암울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내가 결론 내린 첫번째 이유는 중국 사회 자체가 어두운 면을 띄고 있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이것이 곧 중국을 나타내는 특수주의의 고유 색깔이라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와 엄연히 다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서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음의 효과가 드러난다
유화라고 해서 거친 표면을 드러내는 작품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는데 기법이 달라
조금은 실망도 했고 또 한편 이렇게 유화를 표현하는 기법도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는 유화 느낌은 모호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모호한 느낌이 화가의 그림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빌어 인터넷에 유화 기법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쪽으로 지식이 얕은 내가 모르는 유화의 기법들이 소개되어있었다.
한번에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두 작품 앞에서 20분정도 앞에 서서 화가의 의중을 꿰뚫고 싶어 분석을 했다. 그러나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린 그림인지 분석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한 작품은 밝고 알록달록한 무늬 옷을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거리에서 어딘가를 향해 맨발로 걸어가고 있는 작품이었고, 다른 작품은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는데 여러명이 하얀
연기 속에서 자전거 뒤를 쫒아가고 어떤 남자는 자전거 밑에서 철썩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는 듯한
매우 오묘한 작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며 다시 한번 그 두 작품에 생각해보았는데 작품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있는 그대로를 이해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가끔은 그림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그림이 가진 느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림 속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작품에게 자신의 어깨 한켠 내어주며 작품과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미술을 동떨어진 그 무엇이라 여기지 않고 인생의 동반자로 여겼으면 한다.
유명한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에서 찾는 것이 아닌 그냥 자신이 봤을 때 “이 그림이다”할 수 있으며, 남들 앞에서 그 그림에 대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인생 그림 하나 정도는 소유하길 바란다.
알고보면 그림은 모두 인간과 자연이 모티브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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