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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계를 이끈 작곡가와 가수 콤비 Choice 5

조재형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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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영화 하나를 만드는데 갖가지 장비와 그 장비를 다루는 스탭들 그리고 영화 안에서 직접 연기하는 배우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감독 등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 중 영화를 가장 앞에서 만들어내는 역할인 배우와 감독의 몇몇 콤비는 한국영화사를 중추적으로 이끌어왔다. 한국대중음악계도 마찬가지다. 음악 하나를 만드는데 녹음 장비를 다루는 각종 엔지니어들, 가수가 노래를 하는 가사를 짓는 작사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 마지막으로 엔지니어, 작사가, 가수가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가 있다. 역시 한국대중음악계에도 한국대중음악계를 중추적으로 이끌어온 두 음악의 역할, 가수와 작곡가 콤비가 여럿 존재했다. 가수와 작곡가가 만나 탄생한 그 영혼의 조합 그리고 그 명곡들을 다시 들어보자.

   
▲ 윤일상
   
▲ 이은미

  윤일상과 이은미

  사실 윤일상은 전천후 작곡가였다. 9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 작곡가임은 물론이고 어느 가수에게 곡을 건네도 흥행을 시킬 만큼 명작곡가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윤일상은 특히나 이은미의 콤비가 두드러졌을까? 이은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은미는 가창력이 가히 대한민국 대표급임에도 대표곡이 그리 많지 않고 굵게 몇 곡 몇 곡 있는 편이다. 이은미 하면 떠오르는 명곡들은 대부분 ‘소리 위를 걷다’, ‘소리 위를 걷다 2’ 음반에 실려 있다. ‘녹턴 (Nocturn)’, ‘헤어지는 중입니다.’, ‘Time And Life’ 등. 이 음악들이 실려 있는 ‘소리 위를 걷다’, ‘소리 위를 걷다 2’ 두 음반의 주요 프로듀싱과 작곡을 윤일상이 맡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은미 불후의 명곡 ‘애인 있어요’까지 윤일상 작곡 작품이다. 이렇게 이은미의 대표곡을 주로 담당한 윤일상, 어찌 이 둘을 영혼의 콤비라 부르지 않을 수 있는가. 대한민국 대표 여가수 이은미 옆에는 윤일상이라는 전천후 작곡가가 존재했던 것이다.

   
▲ 김창환
   
▲ 김건모

  김창환과 김건모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은 많다. 주영훈, 윤일상 등. 이들만큼이나 빼놓으면 안 될 작곡가가 한 명 더 있는데 그가 바로 김창환이다. 김창환은 장르를 넘나들며 명곡을 무수히 많이 창작해왔다. 홍경민, 클론, 엄정화, 박미경 등 장르, 가수 등을 막론하고 김창환은 자신의 음악폭을 가수에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김창환의 영혼의 콤비가 있다면 단연 김건모일 것이다. 역시 김건모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 중에서도 90년대를 가장 잘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김건모가 황금기를 누리던 시절의 음악을 바로 김창환이 주로 작곡했다. 김건모는 시작부터 김창환과 성공을 누렸다. 1집에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음악 색을 제공했고, 뒤이어 2집에서 바로 ‘핑계’를 연이어 히트시켜 레게 열풍을 이끌었다. 그리고 3집, 김건모 90년대 음악 최고의 명곡이라 감히 칭할 수 있는 ‘잘못된 만남’까지. 김건모의 연이은 성공에는 김창환의 음악이 항상 따라다녔다. 비록 계속해서 함께한 김건모과 김창환은 아니지만 김창환하면 김건모를, 김건모하면 김창환을 떠올릴 수 있게끔 서로가 서로를 만들었고 마침내 90년대 대중음악을 떠올리면 김창환과 김건모가 떠올려지는 경지에 서로 만들어냈다.

   
▲ 이문세와 故이영훈

  故이영훈과 이문세

  90년대를 김창환과 김건모가 수놓았다면 80년대는 이들이 감성의 세계로 수놓았다. 바로 故이영훈과 이문세다. 감히 말하는데, 음악 안에서는 故이영훈과 이문세는 거의 같았다. 故이영훈이 이문세였고 이문세가 故이영훈이었다. 故이영훈은 이문세를 위해 주로 작곡했고 이문세는 그 故이영훈의 아름다운 음악에 누가 되지 않게 다시 아름답게 노래했다. 그렇게 서로를 음악한 故이영훈와 이문세의 음악은 80년대를 대한민국 음악에 또 다른 전성기로 올려놓았다. 故이영훈과 이문세가 대중들에게 그린 음악들은 수도 없이 많다. ‘옛사랑’,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사랑이 지나가면’, ‘붉은 노을’, ‘가을이 오면’, ‘빗속에서’,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 뿐’, ‘이별 이야기’, ‘휘파람’,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 나열 조차도 힘이 드는 故이영훈과 이문세의 명곡 향연이다. 우리는 80년대에만이 아니라 음악은 영원히 남듯이 여전히 이 둘이 만들어낸 음악에 젖어있다. 비록 이제는 다시 맛 볼 수 없는 콤비지만 이제는 그저 이들이 들려준 음악에 고맙다고만 표현하고 싶다.

   
▲ 유영진
   
▲ H.O.T.

  유영진과 H.O.T.

  다시 90년대로 돌아와 보자. 90년대는 전환의 시기였다. 김건모, 신승훈, 임창정 등의 남성 솔로 가수들의 시대에서 본격적으로 팬덤을 두텁게 가지는 아이돌 그룹의 시대로 전환됐다. 그 일선에 H.O.T.가 존재했다. H.O.T.의 팬덤 문화는 90년대 후반부 한국대중음악을 넘어 한국대중문화 자체의 패러다임과 산업구조를 단숨에 바꿔버렸다. 청소년들이 문화의 주류로 등장했고 청소년들이 곧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이 됐다. 팬덤문화, 아이돌문화를 본격적으로 이끈 H.O.T. 누가 뭐래도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음악이 있었다. H.O.T.의 음악은 이전 음악들과는 완전 다른 체계의 음악을 선사했고 눈에 보이는 악기들이 아닌 전자음이 기반이 된 댄스음악들을 H.O.T.가 먼저 이끌었다. H.O.T.가 춤을 추며 무대에서 노래했던 그 음악들은 주로 이수만이 아닌 SM 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상징 유영진이 대부분 작곡했다. ‘전사의 후예’, ‘아이야’, ‘열맞춰’, ‘우리들의 맹세’, ‘We are the Future’ 등 음악적 H.O.T.의 이미지를 유영진이 직접 만들었다. H.O.T.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지금을 있게끔 한 제 1등 공신의 아이돌 그룹이었다. 거꾸로 더 파고들어 H.O.T.의 음악을 있게끔 한 작곡가는 유영진이었다. H.O.T.와 유영진 콤비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성장, 한국대중문화의 변화, 새로운 음악 장르의 유행 등 수많은 의미를 낳았다.

   
▲ 조영수
   
▲ SG워너비

  조영수와 SG워너비

  2004년 새로운 삼인조 발라드 그룹이 데뷔하며 한국대중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SG워너비는 정규 1집부터 각종 음악시상식 신인상을 휩쓸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연이은 정규음반의 발매 그리고 이어지는 당연한 히트는 SG워너비를 가요계의 거물로 이제는 모두가 대하게끔 만들어놓았다. SG워너비가 데뷔한지 11년이 지난 지금에도 SG워너비의 활동은 항상 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이끈다. 왜? SG워너비의 좋은 음악이 여전히 계속될 거라는 대중들의 탄탄한 신임이 있기에. 그 신임을 이끄는 SG워너비의 음악, 주로 조영수가 작곡했다. 조영수 하면 SG워너비를 대부분 떠올릴만큼 조영수와 SG워너비는 이미 한국가요계를 대표하는 콤비다. ‘라라라’, ‘내사람’, ‘해바라기’, ‘광’, ‘사랑하길 정말 잘했어요’ 등의 음악은 아직도 노래방에서 자주 울린다. 이 사회적 현상만으로 우리는 직접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SG워너비와 조영수가 만들어낸 음악은 한국대중음악을 굳건히 지켰다는 것을. 그것에 우리가 동의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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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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