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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계절

김주현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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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주현]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만추’ 늦을 만(晩),가을 추(秋)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를 말한다.

나무들도 앙상해지고 날씨가 추워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왠지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계절 ‘가을’

충만이라는 단어보다는 결핍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계절이다.

영화 <만추>는 어딘가 결핍 된 서로가 충만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다보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 영화의 정서가 느껴질 때가 있다.

수묵화같은 영화의 톤과 앙상한 나무가지들 사이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애나(탕웨이)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 <만추>는 ‘결핍’ 그 자체였다.

남편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애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애틀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 버스에서 사연 있어보는 한 남자 훈(현빈)을 만나게 된다.

마치 그녀의 심정을 보여주는 듯한 황량한 시애틀의 배경을 바라보는 애나의 표정은 집으로 오랜만에 돌아가는 설레임보다는 복잡미묘하다.

그녀의 그런 마음을 알리 없는 훈은 밉살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그런 훈의 모습이 애나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아픈 추억을 굳이 꺼내 이야기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는 것보다 나의 배경을 모르는 이들과 의미 없는 농담을 나눌 때 위안이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시계를 애나에게 주고 그렇게 그들은 잠시 헤어진다.

오랜만에 돌아온 애나에게 집은 결핍된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는 곳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재산에 정신이 팔린 형제들, 한 때 사랑했던 남자는 의미 없는 변명을 한다.

그 누구도 애나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다.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밖에 나와 이쁜 옷을 입고 악세서리를 하는 애나의 모습은 ‘수감자’가 아닌 ‘여자’이고 싶은 애나의 심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감자의 위치를 묻는 전화로 잠시나마 망각할뻔한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애나에게 훈은 시간을 물어보며 다가온다. 그녀가 훈에게 입을 연 첫 마디는 “나랑 잘래요?” 였다.

가족도 채워 줄 수 없었고, 옷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마음의 결핍을 아무것도 모르는 의문의 한 남자에게 채우고자 할만큼 그녀는 외로웠다.

하지만 그들은 관계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 거리를 거닌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의미 없는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길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쇼핑몰을 정처 없이 뛰기도 하고,버려진 놀이 동산에서 놀이 기구를 타고 앉아서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쩌면 앤이 가장 원했던 것일지 모른다.

감옥에서 벗어난 곳까지 자신이 ‘죄수’라는 신분을 자각한 채 지내는 것이 아닌 그저 여자 ‘앤’으로써 온전히 자유를 만끽하는 것.

훈은 앤을 ‘여자’로 느끼게끔 해줬다. 영화의 맥락으로 짐작할 뿐이지만 돈 많은 여자들을 만나며 의미 없이 살아온 훈도 앤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준 것이다.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달콤하고 꿈같은 데이트를 끝낸 늦은 밤, 그들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상대란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일이면 돌아갈 곳이 있는 앤은 이 시간들이 그저 ‘사치’란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다시 놔두고 간 시계를 보며 침대에 앉아 있는 훈도 그것을 알았으리라.

훈은 그녀와의 인연을 놓치고 싶었지 않았을까, 그녀가 감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마중을 간다.

그녀와 쉽게 헤어지는 것이 싫었던 훈은 그녀가 탄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서성댄다. 결국 그녀와 함께 시애틀로 왔던 길을 같이 되돌아간다.

가는 길에 그들은 처음 만난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데 마치 사랑을 시작하기 전 남녀의 모습같다.

그들이 지금의 모습이 아니였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느 커플과 다를 바 없는 행복한 사랑을 했었을 것이다.

   
▲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마지막 그들의 격정적인 키스씬은 그들이 결핍을 완전히 채웠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애틀의 짙은 안개만큼이나 불투명한 미래가 있어서일까 그들의 키스가 행복하고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랑을 시작하는 동시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훈과 애나의 상황 때문일까 눈물 한 방울 없었지만 그들의 키스는 슬펐다. 

2년후 애나가 나오는 날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레임에 잡히지 않을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애나는 나지막히 혼잣말로 ‘안녕, 오랜만이에요’라고 한다.

그가 왔을 수도 있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것은 보는 이의 몫이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훈과 애나가 느꼈던 감정이 치기어린 사랑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기에 훈이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만추>는 설명적인 영화가 아니다. 애나가 정확히 어떤 일을 당했는지 훈이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아온 사람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사랑을 어디서 느꼈는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 영화가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함이니까, 상대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왔는지보다 나의 마음을 채워주고 나도 상대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는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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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yes2kim@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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