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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기 아저씨의 내적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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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포스터1

[디아티스트매거진=손정호][기사 내 모든 사진의 출처는 NAVER 영화입니다]

<그녀(Her)>(2013,스파이크 존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다. <인타임>에선 빈익빈 부익부가 극대화 되고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과의 전쟁으로 지구는 황폐화 된다. <이퀄리브리엄>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해 미래는 삭막하고 차갑기만 하다. <Her>은 다르다. 인류는 발달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감성을 잘 표현했다. <Her> 속 미래는 한없이 여리고 따뜻하다.

영화는 사랑에 상처받은 대필 작가 시어도어(호아킨 피닉스)와 지공지능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2014 아카데미 각본상, 2014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포함해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43회 수상했으며, 58회 노미네이트 됐다. 해외 언론과 평단들의 끊임없는 찬사를 받으며 아트버스터(Artbuster)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실재하지 않는 상대와의 멜로 영화는 많았고 성공적이었다. <사랑과 영혼>이 그렇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그렇다. 같은 맥락이지만 이들 영화와 <Her>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대가 인공지능 OS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OS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한 현대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감성은 교감에 목말라 있다.

   
▲ 인공지능 사만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기 마련이다. 나란 존재를 오롯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객체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OS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비단 시어도어만의 일이 아님을 영화에서도 보여준다. 이는 곧 그 시대의 사람들 또한 소통과 이해에 굶주려 있다는 방증이다. 인류는 태초부터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갈등을 만들었고 수많은 싸움을 했다. 우린 여전히 싸우지만 소통이 줄면서 치유 없이 상처만 늘었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인공지능에게 위로받는 사람이 느는 것은 예견된 일이다. 이로 인해 소통은 더욱 뜸해지고 사람 간의 관계는 단절될 것이다. 만약 영화 속 세상이 멸망한다면, 그건 인공지능의 대중화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어도어가 부럽기만 하다. 요즘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공감하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은 실로 어렵기만 하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할 곳도 공유할 사람도 없다. 단지 SNS에 가십거리를 올려 그 갈증을 약간 달랠 뿐이다. 즉, ‘정신적 변비’에 걸린 사람이 많다. 내 감정이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내도 온전히 ─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 나를 이해해줄 상대를 꿈꾼다. 우린 모두 ‘정신적 배설’이 필요하다. 영화는 이러한 부분에서 부러움과 많은 공감을 얻었기에 큰 사랑을 받았다.

   
▲ Her 포스터 2

영화 포스터에 남자 주인공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들어가 있다. 그의 목젖에 ‘Her’이란 제목이 자리하고 있다. 콧수염이 풍성한 남자 얼굴에 제목이 ‘Her’이라니. 도대체 왜 ‘Her’일까? 시어도어에게 영향을 미친 여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납득이 될 것이다. Her이란 제목의 지분을 따지자면 누구나 제일 먼저 사만다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에서 사만다가 시어도어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사만다는 정체기 속 빛 한줄기,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발판, 새로운 사랑의 대상, 사랑에 대한 고찰의 계기, 나아가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시어도어라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음은 시어도어 내면의 여성성이다. 직장 동료는 시어도어가 쓴 감성적인 편지를 읽고 네 안에 여자가, 여성의 감성이 있다는 말을 한다. 그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여린 여성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여성성으로 인해 누구보다 사랑에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결국 사랑의 본질에 눈을 뜨는 근원이 됐다. 그가 입은 분홍색 셔츠는 그의 여성성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전부인은 그에게 사랑인 동시에 아픔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만 할 수는 없는 존재로 미련에 해당한다. 시어도어는 줄곧 타인의 마음을 대신 전하다가 전 부인에게 진실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이는 지난 사랑과 미련을 뛰어넘는 내면의 성숙을 의미한다. 전부인은 곧 그에게 하나의 문이 된 것이다. 과거에 정체되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그 문을 열었다.

절친한 이성친구나 직장 동료의 여자친구 또한 한몫 했다. 직장 동료가 실재하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시어도어는 불만이 생긴다. 실재하지 않는 사만다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고조되며 사랑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를 갖는다. 이를 극복하는 데 이성친구의 역할이 컸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친구의 충고는 결국 자신과 사랑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존재의 여부가 아니라 사랑의 여부가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옷핀으로 사만다를 고정한 시어도어

영화 속에서 다양하고 복고적인 요소와 감성들이 눈에 띈다. 영화는 분홍색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따뜻한 톤의 색감을 사용했다. 미래라는 삭막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한 장치다. 연애편지 대필, 복고풍 옷과 수영복, 헤어스타일, 그리고 옷핀. 이러한 복고 요소들이 과거의 인간의 여린 감성이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발달하고 변해도 인간의 본연은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어도어의 직업이 연애편지 대필인 것은 색달랐다. 현시대에도 찾기 힘든 사라진 직업. 여리고 순수한 감성을 지닌 시어도어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다. 영화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옷핀은 귀한 존재답게 상징성이 매우 크다. 사소하고 작은 배려 하나가 사만다에 대한 큰 사랑을 보여준다. 영화 속 옷핀은 결코 작지도 낡은 것도 아니다. 옷핀이라는 과거와 인공지능 OS라는 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조화로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처럼 미래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의 3대 욕구인 성욕, 식욕, 수면욕도 드러난다. 폰팅이나 몰래 나체 사진을 보는 모습, 게임 중간에 샌드위치를 먹거나 사만다가 위로를 하던 중 분위기 쇄신을 위해 배고프냐고 묻는 장면, 사만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는 시어도어의 모습과 누군가가 자는 모습만을 촬영한 이성친구의 다큐멘터리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등장인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소개팅녀는 사랑에 상처받고 버림받은 적이 있는지 시어도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봐 불안해한다. 이성친구는 8년간 만난 애인과 헤어지고 가족들은 그녀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한다. 그녀의 애인은 말로 상처를 준 자신을 자책하듯 묵언수행이라는 가장 극단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상처를 치료한다. 전부인은 시어도어와 마찬가지로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아파했다. 미래에도 인간은 여전히 상처 받고 아파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자아를 찾아간다. 이는 여전히 어렵고 고되지만 유의미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린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말로 컴퓨터에 글을 쓰듯 음성이 손을 대신할 만큼 인류는 발전했다. 인간의 감성도 그에 따라 더욱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여리고 약하기만 하다. ‘별에서 온 그대’에 “인간이 철들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라는 대사가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늘 상처받고 실수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따뜻한 감성이, 지금의 우리가 있다. 다른 영화에서 보듯 미래가 삭막하더라고 우린 헤쳐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감성이 삭막해지는 순간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또 다른 시어도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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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호 기자
sonddaeng@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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