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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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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고 싶다. 서울 집값 평균 4억 5,508만원. 30년으로 나누면 일 년에 1,516만원. 한달에 126만원. 집값이 30년 동안 10원도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한 달에 126만원씩 30년간 모으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다. 최저시급 6,030원을 고려했을 때 스무살부터 쉰살까지 편의점에서 아침 9시부터 밤7시까지 일주일에 5일을 일하고 단 십원도 쓰지 않는다면 서울에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 단, 집값이 십원도 오르지 않았을 경우에.
집값뿐인가.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라는데 해고는 점점 쉬워지고 물가는 오르는데 최저시급은 370원 올랐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때려쳐!”하고 돌아서야 정상이다. 제 몸 하나 건지기도 부담스러운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자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할 줄 모른다며 혀를 찬다. 새마을운동 때처럼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행복해진다고!? 여기, 행복해지고자 성실하게 일하는 앨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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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순남이는 상고에서 성실하게 14개 자격증을 따지만 결국 공장에 취업한다. “절대 아이를 나처럼 키울 수는 없어. 그러니까 일단 무조건 집을 사야해!”라는 남편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신문배달을 하고 찌라시를 돌리고 식당에서 부엌일을 하고 건물을 청소한다. 그렇게 9년을 일해 겨우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만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남편은 그 집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식물인간 남편의 병원비를 내려면 재개발을 성공시켜야 하는데 자꾸만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재개발 반대 주민들, 그녀를 뒤쫓는 경찰들. 순남이는 울며 사람들을 죽인다. “정말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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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
시스템의 부조리 속에서 순남이는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 더 열심히, 더 열심히를 외치며 일하는 순남이 눈은 충혈되고 손톱밑은 다 벗겨진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지만 돈에 미쳐서라거나 복수심에 불타서는 아니다. 다만 남편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런 순수성은 보는 이에게 그녀의 극단적인 살인을 공감하게 만든다. 불평하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게,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는데 그녀는 좀 더 행복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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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
영화 속에서 표면적으로 대립구도를 보이는 순남이와 재개발 반대 주민들은 이 세계에서 실상 모두 하위계급이다. 재개발 반대 주민은 순남이를 보며 으르렁대지만 진짜 가해자인 시스템은 그 뒤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칼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춘 강자를 등뒤에 두고 약자들은 서로를 물고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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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
이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뚱뚱하고 가슴이 큰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마돈나가 텔레마케터, 화장품 공장 직원, 창녀촌의 삐끼까지 어떻게 전락해가지는 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마돈나도 순남이처럼 늘 열심이다. “최선을 다 했어요, 언제나!”가 그녀의 입버릇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졌던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보다 경쾌하긴 하지만 둘 다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있으며 순수한 주인공들이 시스템에 의해 망가지는 모습을 주인공에 몰입하여 표현해냈다. 보다 옛날 영화로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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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돈나> 포스터 | ||
세 영화 다 보기 불편한 작품이다. <마돈나>에서 그녀를 해하는 인물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치졸해서 정말 이렇게까지 보여주어야 할까, 진짜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다시 묻게 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세탁소 아들이 순남이를 다리미로 고문하는 장면은 B급 호러물처럼 끔찍하고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독창적인 고문 방법 역시 그로테스크하다. 이런 강렬함은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에서는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현실이 이보다 덜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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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스틸컷 | ||
고개를 돌리고 싶을만큼 끔찍한 이야기들이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 한 번 없이 바다에서 죽고, 재개발 반대 철거민들이 불타서 죽고, 부당해고를 농성하다 죽는다. 3포세대로 시작한 청춘들은 ‘노오력’을 안해서인지 7포세대가 되어버렸다. 남편의 ‘존엄사’를 순남에게 설명하며 의사는 “존엄을 다른 말로하면 품위잖아요. 살다보면 가끔 품위가 중요할 때도 있으니까요.”라고 한다. 순남은 정말 존엄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품위있게 살 수 있을까. 의사의 설명 뒤로 바로 이어지는 국민의례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노력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정말이지 ‘성실한 나라’에 앨리스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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