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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손프로젝트 <폭스파인더> (사진제공_두산아트센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정인태] 이번 양손 프로젝트의 신작 <폭스파인더>는 제목 그대로 여우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한 번도 못 봤지만 여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우에 대한 설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마치 천년 묵은 구미호 같은 설정이었다. 영악하고 사람을 홀리기도 하는. 처음에는 정부 기관에서 온 폭스 파인더가 여우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정부에서 여우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게 마치 한국에서 종북 좌파, 빨갱이들을 지칭하는 표현과도 비슷했다), 폭스 파인더들을 지시하고 다루는 모습에서 사회 시스템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구나 했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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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주디스 부부에게 찾아온 폭스파인더 | ||
나는 이 연극에서 인간의 이성의 연약함을 느꼈다.
먼저 폭스파인더가 사무엘과 주디스 부부에게 찾아오는데 이 부부는 비로 인해 경작물을 제대로 관리 할 수 없어 어떻게든 감추려고 했지만 폭스 파인더의 빈틈없는 수사에 다 까발려졌다. 아무리 치밀한 계획이더라도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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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에 대해 논쟁하는 사무엘과 주디스 | ||
두 번째는 이 사무엘과 주디스 부부에겐 아들이 죽는 사고를 겪었는데 이건 확실히 이성으로서의 이해를 넘어서는 큰 비극이었다. 사무엘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되었는데 있지도 않은 여우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사무엘은 죽은 아이의 죄책감에 시달려 사고의 경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논리를 맞추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곁에 있는 주디스와의 행복에 대해 생각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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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을 앞두고 사라와 주디스의 포옹. | ||
세 번째는 주디스의 친구인 사라는 자신이 이성적으로 깨어있어 친구인 주디스에게 여우는 애초에 없다며 정부의 탓이라고 계몽시키려 했으면서 정작 자신과 가족이 위기에 빠지자 친구와 동료들을 배신하고 도망쳤다.
네 번째로 주디스는 늘 앞으로의 삶, 비극을 이겨내고 사무엘과의 진정한 행복, 새로 찾아올 행복을 꿈꾸며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약점을 잡혀 폭스 파인더에게 몸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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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파인더는 사라와의 거래를 통해 정보를 캐낸다. | ||
마지막 다섯 번째로 폭스파인더는 자신은 늘 관계에 선을 긋고, 냉정하여 맡은 임무만을 착실히 이행하려 했는데, 현실은 늘 변칙적이고, 갑작스럽고, 당혹스럽게 다가오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틀 안에서만 사고를 하려 했다는 점, 그 안에서만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그는 (특히) 사무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꽉 막힌 사람이었다. 여우가 있는 곳이 뻔한데 그곳에 먼저 가지 않고 일의 절차에만 집착하고, 주디스가 조사를 빨리 끝내고 돌아가길 바라며 했던 배려들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했다. 끝내는 스스로 여우는 없다며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과연 이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하는데 그렇다고 타인을 희생하고 나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정부에 대해 불만이 있어 행동으로 실천하면 가족이 고통 받는데 그러면 실천해야 옳은 걸까 실천하지 않고 도망치는 것이 옳은 걸까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은 걸까?
잠깐 시선을 돌려 이야기하자면 연극은 동시대성의 의미를 가진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연극에 담아 공연한다. 나는 왜 이런 극이 나왔을까, 왜 이런 연극을 올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연극 <폭스 파인더>를 보면 깨어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또한 이들이 사는 현실은 시궁창이다. 절망만 있고 희망은 단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감, 자책감, 또는 타인에게 전가하려 하는 무책임감, 절망감이 양손의 배우들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져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살면서 어떠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 철저하게 부서지는 경험을 하고, 삶의 희망이 깨어졌을 때, 아니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깨어 있는 사고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소소한 행복이야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야 있겠지만 우리가 바라야 할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추구해야 옳은 것일까? 세계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추도하고 안타까움이 점점 많아지고 sns를 통해 빨리 퍼지고 있다. 그런 안타까운 죽음들을 추도하는 것은 좋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이 나라, 내 가족, 나 자신이 더 큰 위기라고 느껴진다. 충격적인 일들은 항상 우리 주변에 내재되어 있다. 나에게 내재되어 있고, 타인에게도 있으며,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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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파인더를 죽이고 다시 찾아올 폭스파인더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고 있는 사무엘 주디스 부부. | ||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좀 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저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한 스스로 갇혀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을 닫는 것만이 스스로 갇혀있다는 게 아니라 자신 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 또한 스스로 갇혀있는 것이다. 스스로 아무리 행복을 추구해도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면 돌고 돌아 어느 순간 자신의 불행으로 닥쳐온다. 혼자 깨달아서야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 난 우리 다 같이 노력해서 자기 주변부터 바꿔 나가려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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