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이채]
[미학과 예술] 예술과 언어
예술에서 언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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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통해 사물을 지칭하고, 언어로 소통하며 언어는 또한 개념을 만든다. 세계는 언어로 만들어진 하나의 큰 그림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를 배운다. 하나의 낱말을 소리내어 읽으며 그 발음에 맞춰진 사물과 일치 시킴으로써 낱말의 사용법을 익혀나간다. 이렇게 우리는 언어로 건축되어진 세계에서 언어를 통해 참여한다. 그렇다면, 예술에서는 어떠할까? 우리는 빨간색이 정확히 어떤 색깔인지(실재하는 빨간색 으로써의 색깔과 단어로서 빨간색을 일치시키는 것)고를 수 있다. 결국 예술도 언어-낱말 들의 놀이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확실하다.
곰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의 저서 <예술과 환영Art&Illusion>에서 그림에 관한 도식의 설명이 나온다. 선행되어진 관습(일종의 예시로서의 도식)이 없으면,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그 대상을 그리지 못 한다. 이러한 상황을 잘 묘사해주는 그림으로, 사진이 출현하기 이전의 ‘코뿔소 삽화(도판 1)’를 예로 들고 있다. 코뿔소를 묘사한 뒤러의 목판화는 실제 동물을 보고 그린 것 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갑옷을 입은 괴상한 코뿔소를 그리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신체 해부를 표현한 그림(도판 2)에서 실제 장기와는 사뭇 다른 드로잉을 그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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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lbrecht Dürer, Le Rhinocéros, 21.4×29.8cm, xylographie, 1515, Musee du Louv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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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면서도 그리지 못 할까? 그 이유로 어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실제로 그 대상을 보고 있더라도- 먼저 선행되어진 예시가 필요하다고 곰브리치는 주장하고 있다. 선행되어진 무언가가 없다면 천재 조차도 보고도 그릴 수 없는 신기한 상황인 것이다. 이 주장을 언어에 대입해 보자. 언어는 일종의 선행되어진 도식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어 없이는 우리의 사고가 불가능 하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언어의 학습을 통해 생각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종합 하며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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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Leonardo da Vinci, Drawing Of A Womans Tor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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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개념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낱말)에,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움 이란 개념들이 축적되어지고 덧붙여서 지금의 ‘아름다움’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충격, 황홀함, 경외감 등 예술과 관련된 단어들 그리고 예술이라는 단어 조차 이러한 중첩된 의미로 만들어지고 변화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하나의 개별적 단어가 지칭하는 사물과 연관되고 무수히 많은 다른 대상 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복합적인 사태에 의해서 우린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언어를 파악함으로써 예술을 분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여기서 비롯되지 않을까.
예술의 범주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과정을 언어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예술 행위 혹은 작품들을 분류하고 통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의적인 또는 공통된 언어 도식을 가지고 있다. 이 언어 도식은 우리들에게 일종의 회로를 따라 사고를 하게 하는데, 개별적인 회로들은 자의적인 도식이며 개개인의 미적 취향을 만들고 공통되고 보편적인 회로는 당대의 사회적 미적 기준으로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언어 도식은 미의 기준과 예술의 당위성을 만든다.
언어의 역할과 언어를 통한 사고체계, 그리고 그 언어 도식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 대해서는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건 곰브리치가 그의 저서에서 예로 들고있는 코뿔소의 그림처럼 언어는 우리가 사고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도식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을 감상할 때 예술가가 어떻게 언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체제화하고 해석하는 인지적 개념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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