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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를 관통하는 영화 Choice 5

조재형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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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조선왕조는 여러 의미에서 의미가 깊다. 그리 멀지 않은 기간을 둔 역사라는 점, 역사학계에서도 가장 연구가 활발히 되고 있는 한반도 통일 국가의 왕조라는 점 등. 결과적으로 이러한 의미들이 문화예술계에서도 가장 많은 한반도 역사 시대 문화 소재로 활용되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왕조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제작됐다. 현대에는 교과서만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 수많은 콘텐츠들로 현대인들은 우리 역사, 조선왕조를 공부한다. 그 중 매력적인 소재인 영화,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당시 조선왕조의 분위기와 기본적인 역사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영화, 조선왕조를 관통하는 다섯 편의 영화를 짚어보겠다.

   
▲ ‘순수의 시대’의 스틸컷

  순수의 시대

  조선은 앞선 국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이 건국된 국가였다. 새로이 건국된 나라가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이성계가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하긴 했지만 그 건국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의 중심에 훗날 자신의 힘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직접 왕위에 오른 이방원이 있었다.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그야말로 피바람 부는 날선 조선왕조의 공기였다. 겉으로는 왕자의 신분을 표면적으로 유지해야 했으나 결국 피바람을 일고 마는 이방원 중심의 냉혈적인 분위기를 영화 ‘순수의 시대’가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순수의 시대’의 주된 인물들은 대부분 가상 인물이다. 신하균이 연기한 김민재, 강한나가 연기한 가희, 강하늘이 연기한 진까지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 속 존재가 역사의 진중함에 힘으로 작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가상의 인물들이 결국 역사적 사실인 이방원의 왕자의 난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기능적으로 역할 했기 때문이다. 비록 ‘순수의 시대’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 하는 흥행실패를 기록한 영화다. 하지만 최소한 두 가지만큼은 성공했다. 앞서 말한 왕자의 난이라는 피의 역사가 치러질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영화 내내 담아냈다는 것, ‘순수의 시대’를 본 누구라도 당시 역사의 당위성, 시대적 체감만큼은 얻어갈 수 있었을 것, 이 점들을 ‘순수의 시대’는 이뤄냈다.

   
▲ ‘관상’의 스틸컷

  관상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지만 태종은 조선의 실질적인 기반을 닦은 왕이라는 역사적 호평을 받았다. 사병제도 폐지, 대마도 정벌, 육조직계지 시행, 인구조사 등 왕권강화는 물론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종은 자신이 직접 일으킨 피의 역사에 대한 결과적인 정당성을 어느 정도 얻었다. 이후 일어난 피의 역사가 바로 계유정난이다. 문종이 어린 단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아홉 살 밖에 안 된 단종이 조선의 왕이 된 것이다. 자아가 이제 성립되려는 아홉 살 어린 아이가 국사를 책임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무리였다. 이 기회를 너무나도 왕이 되고팠던 수양대군이 노려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쉽지만은 않았다. 단종을 보좌하는 당시 조선 제1의 충신 김종서와 정치적 대결을 펼쳐야 했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일촉즉발의 긴장감, 영화 ‘관상’을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국왕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 단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충신 김종서의 신경전이 ‘관상’의 또 다른 주된 이야기다. 비록 ‘관상’의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 관상가 김내경이지만 김내경의 시선은 곧 우리의 시선과 같았다.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김내경의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입장을 정치적으로도 밀착된 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관상’이 비록 사람의 얼굴을 역학으로 분석하는 관상을 중심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관상’을 보다보면 어느새 느낄 것이다. 금세 지나가버린 계유정난의 상황을 내가 직접 확인했다는 것을, 계유정난이 ‘관상’의 두 번 째 중심소재였다는 것을, 영화의 교육적 기능이 발휘된 순간이다.

   
▲ ‘왕의 남자’의 스틸컷

  왕의 남자

  역시 세조 또한 피를 뿌려가며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 역시 태종과 흡사하게 조선에 긍정적 업적을 남겼다. 세조가 경국대전, 국조보감 등을 편찬하여 조선의 국가적 내실은 한 층 높아졌다. 그래도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 되는 법. 계유정난 이후 피의 역사는 바로 연산군 때 벌어졌다. 연산군은 재위 초기, 선왕 태종과 같이 왕권 강화에 힘을 쓰는 듯 했지만 두 번의 사화 발생, 잦은 폭정 등으로 결국 연산군은 반정에 의해 폐위되는 조선왕조 역사 가장 부정적인 군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조금만 더 연산군을 들여다보면 연산군은 비록 왕이었지만 비참한 죽음을 맞은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너무나도 기렸던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비극의 역사에 당위성으로 작용될 순 없지만 간과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 연산군은 왕이 보여서는 안 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이점을 영화 ‘왕의 남자’가 아주 중점적으로 확대하고 집중해 표현했다. 이미 국사는 시야에서 치워버린 연산군에게 장생 패거리는 의외의 웃음을 선사한다. 장생 패거리가 연산군에게 재롱을 떠는 과정에서 당시 연산군의 심정, 당시 조선왕조의 위태로움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말초적 유희에 계속해서 기대는 국왕 연산군, 장생 패거리의 재롱 속에서 깊어져만 가는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연산군이 유희에 헤어 나오지 못 하자 반정이라는 거사가 준비 되가는 당시 조선왕조의 위태로움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라는 네 글자에 가장 동 떨어진 존재, 장생 패거리가 ‘왕의 남자’의 주인공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로 인해 연산군, 당시 조선의 정치, 당시 조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왕의 남자’도 연산군 시기 조선왕조를 예술적으로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잘 전달한 작품이다.

   
▲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스틸컷

  광해, 왕이 된 남자

  ‘순수의 시대’가 가상의 인물들이 주인공들이었다면, ‘관상’이 관상가 김내경이 주인공이었다면, ‘왕의 남자’가 장생 패거리들이 주인공들이었다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직접적으로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이 주인공이다. 물론 영화적으로 광해군이 쓰러진 사이 광해군과 똑같은 하선이 광해군을 대신했지만 그도 광해군이었기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주인공은 광해군이다. 앞선 세 편의 조선왕조 영화들과 달리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하선이 광해군 역할을 대신했다는 영화적 허구 말고는 대부분이 정공법과 같은 사실 구성으로 영화를 전개했다. ‘무엇을 통해 당시 조선왕조를 가늠한다.’는 식의 영화를 통한 조선왕조 파악이 아닌, 그야말로 주인공만 놓치지 않으면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집권 시기 조선의 상황, 광해군의 국영철학을 파악할 수 있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이 펼쳤던 비교적 당시엔 진보적이었던 정책을 영화 속에 녹여 표현하려 노력했다. 전부를 담는 데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광해군이 실제로 내내 고집했던 국영철학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1,2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이해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단순 광해군 시기의 조선을 이해시켰다는 선의 의의를 가지는 영화가 아니다. 1,200만 명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는 수치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 그리고 광해군이라는 조선의 군주, 광해군과 같은 리더가 현 시대에 얼마나 갈구 되고 있는 지를 천만관객 영화라는 수식어에서 우리는 알 수 있었다.

   
▲ ‘사도’의 스틸컷

  사도

  조선후기 가장 두드러진 업적과 역사를 보인 왕이 영조와 정조다. 영조는 조선의 왕들 중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을 재위했고 탕평책 실시로써 붕당정치 혁파에 효시를 마련하기도 했다. 영조의 손자 정조는 조선전기 세종의 업적과 비교될 만큼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쇠락해져가는 조선의 재건을 이루는데, 한반도가 근대국가로 진입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왕이다. 영조와 정조를 언급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할 인물이 바로 사도세자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였다. 두 왕의 중간혈통으로써 영·정조 시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먼저 집고 넘어가야할 인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도세자는 당시 노론세력의 정치적 압박에 희생당한 인물이다. 희생당하는 과정 또한 비극적이었다. 사도세자에게 형벌을 내리겠다고 마음먹은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고 결국 8일 만에 사도세자는 그 뒤주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그 8일 간의 기록, 그 8일 사이에 영조와 사도세자가 겪은 감정 등을 영화 ‘사도’는 첨예하게 표현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왕과 세자의 관계였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들은 부자지간이었다. 조선왕조의 안위가 달린 관계였던 동시 이들은 부지지간이라는 혈연관계였던 것이다. 정치적 의미 이상으로 무게감 있을 가족적인 의미에도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주목하여 표현했다. 즉 ‘사도’를 보는 것은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 간 가족적 의미에서의 비극을 확인하는 동시에 조선왕조 후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또한 접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사도세자의 죽음만을 접하는 것 또한 아니다. 후에 조선후기 발전을 이룩할 수밖에 없었던 정도의 정신적 원천을 정조마저 8일의 경과를 전부 바라봤던 그 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곧 ‘사도’는 영조, 사도세자, 정조까지 3대를 아우르는 조선왕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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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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