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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르난도 보테로전 전시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이태경]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1932~ )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숨쉬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미술의 역사를 보면 자신만의 화풍을 화폭에 옮겨내지 못한 예술가는 거장으로 기억되지 못했다. 하지만 페르난도 보테로는 명실상부 현대의 거장 중 한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이유를 이번 전시를 통해 간파할 수 있었다. 어느 사조로도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이 화가의 그림에서 유별나게 강조된 특징은 바로 양감이다. 꽃을 꽂은 꽃병은 동그스름하고 알차다. 페르난도의 초상화 속 여인들은 루벤스의 여신들처럼 통통하다. 호리호리하고 얇은 것을 추구하는 우리 세대의 눈엔 이질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솜이불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양감 때문에 어느새 관람자들은 2차원의 그림에서 삼차원의 공간을 구현하면서 빠져든다. 비록 환영이지만 그의 그림 속 사람이나 사물들은 입체적이다. 그의 그림은 시지각을 자극하는 상큼한 색채를 가졌기에 점토처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촉감 또한 가졌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무언가를 만지고자하는 본능을 자극한다. 촉각은 무언가를 접촉해서 느끼기를 원하는 욕구다. 그러나 그런 욕구는 성장할 수록 제약 될 수 밖에 없고 대신에 시각과 청각이 그것을 대리만족시켜준다. 배색과 보색은 역시 중심 모티프를 강조하면서도 그림 안으로 손을 뻗고 싶게 한다. 시장에서 과일을 고를 때처럼 정물화 속의 사과를 만져보고 싶다거나 인물이 입은 옷이 어떠한 질감인지. 또 얼마나 살이 올랐는지 초상화 속 인물의 배를 움켜잡아 보고 싶은 것처럼 단순히 촉감만을 알고 싶게 한다. 또 촉각은 또한 대상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의 욕구이기도 하다. 개인의 결핍을 촉각을 통해서 성취하고자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의 따스한 그림에 잠시나마 애정을 품어 그 공간 속으로 포용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보테로는 터치의 욕구를 한번 더 좌절 시킨다. 그러나 이런 달콤한 좌절은 그가 양감 표현의 귀재임을 일깨워준다.
미술 심리치료 분석가이기도 한 레트 클리프는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들은 내재된 인간의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영혼 없는 얼굴 표정을 짓고 있어 주제 표현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색채감의 조화 그리고 양감만으로도 선대의 거장들에 대한 존경, 인간 소외 풍자, 콜롬비아에 대한 애정, 남미의 정서까지 그림에 녹여 낸 라틴 미술계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도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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