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강수환]
문득 바람이 불어
그 날의 향기를
그 날의 기억들을 하나 둘 부르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건
그 때 우리의 노래
밤새워 부르던 우리 그 날의 기억을
벌써 잊었나, 그 노래를
벌써 잊었나, 그 순간을
흐르고 흐르네
대답 없는 바람 소리만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잊어버릴 때마다
그 날의 바람이 내게 묻네
벌써 잊었나, 벌써 잊어버렸나
그 노래, 그 순간, 그 이름, 그 모두를
벌써 잊었나
– 이아립, <세번째 병풍 – 공기로 만든 노래>, ‘벌써 잊었나’ –
노래를 랜덤으로 재생하고 있자니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벌써 잊었나’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받았던 전율이 다시금 몸을 감싼다. 시간이 흘러도 이 순간을 잊지 말자던 그 때. 시간이 흐른 지금, 결국 나는 그 순간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신의 선물이라는 망각의 미명 하에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쉽게 손에서 놓아버릴 때가 있다. 누군가에겐 소중했던 인연과의 기억, 누군가에겐 함께 자라온 친구에 대한 추억, 혹은 뼈에 새길 정도로 숨 막혔던 고통의 순간. 벌써 잊었나. 그 노래, 그 순간, 그 이름, 그 모두를.
‘벌써 잊었나’는 피아노가 담담하게 반주를 이끌어가는 버전과, 통기타를 이용해 서정적으로 풀어낸 Acoustic 버전이 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상실감에 가슴이 시큰거릴 때. 이 멜로디는 당신의 시큰거리는 소리를 고요하게 모두 들어주고, 어두운 밤 모닥불 앞에 앉아 괜찮다고, 그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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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기로 만든 노래> 앨범 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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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옷 깃을 세워 걸으며 주머니를 찾아 손을 찔러 넣는다
두 눈에 비가 내린다
앞이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어 계속 걷는다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떨어져 내린다
잠시 잊어요,
수많은 밤이 우리를 기억할 때
차가운 벨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주머니에 있는 전화기를 찾는다
두 눈에 비가 내린다
앞이 흐려져서 누구인지 보이지 않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어 계속 가네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떨어져 내린다
잠시 잊어요,
수많은 밤이 우리를 기억할 때
다 잊어요,
수많은 날의 우리를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두 눈에 비가 떨어져 내린다
잠시 잊어요,
수많은 노래가 우릴 기억할 때
수많은 고백이 우릴 기억할 때
– 이아립,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두 눈에 비가 내린다’ –
두 눈에 비가 내린다. 가슴에 맺힌 슬픔을 너무나도 담담히 풀어낸 곡.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담담하고도 쓸쓸하게 서술한다. ‘바람이 불어온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멈출 수 없어 계속 걷는다. 두 눈에 비가 내린다. 잠시 잊어요. 수많은 밤이 우리를 기억할 때. 다 잊어요.’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화자를 찾아온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뿐. 그 눈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 그 수많은 감정의 교차 속에서 그저 잊자고, 혼자서 되뇌는 수밖에.
본인의 슬픔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싶을 때, 거리를 걸으며 이 노래를 틀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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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앨범 커버 | ||
두 뺨을 스치는 바람처럼
살며시 귓가에 속삭여줄게
당신이 지금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그 말을
악마가 세상을 삼킨대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가장 듣고 싶은 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 어떤 얘기라도그 어떤 얘기라도
그 어떤 말이라도 어떤 말이라도
그 귓가에 바람처럼 가볍게
그 귓가에 깃털처럼 속삭여줄게
…
…
…
당신의 귓가에 바람처럼, 바람처럼 가벼웁게
당신의 귓가에 깃털처럼 속삭여줄게
악마가 세상을 삼킨대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가장 듣고 싶은 말
이제껏 참았던 말을
– 이아립, <세번째 병풍 – 공기로 만든 노래>, ‘가장 듣고 싶은 말’ –
‘공기로 만든 노래’란 이런 것일까. 이아립의 목소리는 공기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다가온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직접적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알 수 없는 설렘을 자아낸다. 따듯한 햇살 아래 풀잎이 머금은 조그만 이슬처럼.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간 내가 짝사랑하던, 혹은 감정을 깊게 나눴던 그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것만 같다. 가볍게 나의 귀에 속삭여줄 것만 같다.
가사들도 잔잔하고 따스하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저녁 햇살 아래 공기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처럼 다가온다. 통기타의 선율에 맞춰, 따스한 바람에 맞춰, 노래의 리듬에 맞춰 홀씨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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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아립 | ||
이아립의 이름은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음악을 해온 아티스트이다. 인디음악계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 어느 날 공기로 만든 그녀의 노래들이 어느 날 당신의 귓가에 들어온다면. 어느 하나의 노래가 당신의 마음에 조그만 물결을 일으킨다면. 아마 이아립이라는 이름은 당신의 노래 재생 목록에서 지워지지 않을 글자가 될 것이다.
문득 어느 날, 자몽 주스가 매우 마시고 싶어서 당신은 기어코 자몽 주스를 찾아 이리 저리 헤매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한 모금을 마시고, 너무나도 맛있게 주스를 한 입에 다 마셔버린다. 이아립의 노래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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