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자발적 거지들을 위하여

박초롱 조회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Google 검색에서 디아티스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 피아니스트의 전설 포스터

 “큰 그릇이 돼라.”고 배웠다. 세상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라고.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을 넓게 포용하라는 말이기도 했다. 살아보니 ‘큰 그릇’은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했거니와 실상 될 필요도 없는 것이기도 했다. 담을 것이 없는 환경에서 그릇만 크면 ‘헛바람 든 놈’ 소리를 들었고 무엇보다 ‘큰 그릇’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제 그릇’인 것이 중요했다.

 누구나 제 그릇, 제 세상 안에서 산다. 섬에서 태어나 배타는 아버지와 물질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물질하며 살아가고, 작부 손타고 크는 아이는 그 세상 가락을 익히며 늙어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가 세어가는 이들도 아이의 이름이 영준이나 민우냐, 혹은 주말에 가지고 노는 것이 카메라냐, 붓이냐, 책이냐 하는 것들이 다를 뿐 비슷한 그릇 안에서 산다. 그렇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제 그릇이면 그만이지.

   
▲ 피아니스트의 전설 스틸컷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배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에 대한 이야기다. 크루즈에 버려져 선원들에 의해 길러진 아이는 타고난 감각으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지만 평생동안 단 한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 왜 배에서 내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피아노를 봐. 시작하는 건반과 마지막 건반이 있지. 88개의 유한한 건반에서 자네는 무한한 음악을 만들 수 있어.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그건 내게 너무 큰 배야.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고, 끝나지 않을 여행이며, 너무 강한 향수고. 수천개의 거리를 봣어? 어떻게 그곳에서 단 하나의 길만을 선택할 수 있지? 끝이 어디인지 알수없는 세상은 자네를 짓누르고 있다구 그래서 난 배를 못내렸던 거야.” 라고 답한다.

   
 

 평생 배에서 생활한 나인틴 헌드레드에게 배 밖의 세상은 너무 광활했다. 감당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그의 재능은 재즈의 창시자라 불리는 제리 롤 모튼을 이길 만큼 뛰어났지만 그는 세상에 자신의 음악을 알리지 않고 죽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배 안에서, 자신의 세상 안에서. 자신이 선택한대로. 그러므로 영화 안에서 천재 피아니스트가 세계적 명성을 거머쥐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안타까워해야 할 대상은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하는 크루즈 안의 여행객들일지도 모른다.

 “왜, 왜, 왜, 왜 육지 사람들은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지 왜 여름이 가면 겨울이 오는지 겨울은 또 왜 그리 추운지…그래서 그렇게 여행들을 하나봐 궁금한 걸 알아보려구.”

   
▲ 피아니스트의 전설 스틸컷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스토리와 대사도 훌륭하지만 영상미와 음악이 기가 막힌다.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니만큼 훌륭한 피아노 연주도 듣기 좋지만, 감독은 천재 지휘자처럼 영화 적재적소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음악을 섞는다.

 트럼펫 연주자 맥스투니가 배멀미로 고생할 때 나인틴헌드레드가 피아노 고정쇠를 제거하고 움직이는 피아노 위에서 연주하는 장면, 제리 롤 모튼과의 피아노 대결,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를 보며 피아노 음반을 녹음하는 장면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배경과 음악이 섞여 씬 하나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천재를 다룬 일반적인 영화들과는 다르게 나인틴 헌드레드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지도, 슬럼프나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지도, 경쟁자의 함정에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배 안에서 평화롭게 살다 간다. 그의 친구 맥스투니가 안타까워하는만큼 관객도 그가 세계를 누비지 않는 것을 아까워하지만 그는 그 세계 안에서 행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실은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 살기를 선택한 좀 특이한 이력의 남자 이야기다.

 얼마 전 동네 작은 서점에 ‘자발적 거지 모임’이라는 소모임을 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경쟁에 도취된 사회에서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그 대열에서 나와 자신삶을 자신이 소비한다는 취지가 공감갔다.

 시대는 다르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도 어쩌면 이런 자발적 거지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나인틴헌드레드처럼 내 세계 안에서 행복하자. 단념할 것도 과욕부릴 것도 없다. 타인의 욕망을 내 것이라 착각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지도 말자. 미래를 이끌어갈 자발적 거지들에게 희망을!

관련 기사

author-img
박초롱
park_chorong@theartist.co.kr

댓글0

300

댓글0

[칼럼] 랭킹 뉴스

  • 당신의 관념을 인버전할 테넷
  • 세계로 나아간 한국영화 Choice 5
  • 2019년 한국영화계 키워드 Choice 5
  • 제40회 청룡영화상 주요 부분 수상 예상 Choice 5 (인물 부문)
  • 여성이 주도한 한국영화 Choice 5
  • 나는 사물이 되고 싶다

당신을 위한 인기글

  •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텔레그램 통해 벌이고 있는 섬뜩한 신종 범죄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텔레그램 통해 벌이고 있는 섬뜩한 신종 범죄
  • 현재 해외에서 한국인 피부를 갖고 논란이 된 이유
    현재 해외에서 한국인 피부를 갖고 논란이 된 이유
  • 한국에서는 평범한데…北 평양 고위층만 쓴다는 귀한 생필품의 실체
    한국에서는 평범한데…北 평양 고위층만 쓴다는 귀한 생필품의 실체
  • 방송일 하기전 SM으로 부터 소녀시대 제안 받은 기상 캐스터
    방송일 하기전 SM으로 부터 소녀시대 제안 받은 기상 캐스터
  • 아버지가 저지른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몰린 여자 아이돌
    아버지가 저지른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몰린 여자 아이돌
  • 100kg 넘던 여고생에서 현재는 화제의 몸짱 글래머 의사로 유명한 이분
    100kg 넘던 여고생에서 현재는 화제의 몸짱 글래머 의사로 유명한 이분
  • 사진 1장에 낚여 하와이에서 사기 결혼한 1,000명의 한국 여성들이 한 일
    사진 1장에 낚여 하와이에서 사기 결혼한 1,000명의 한국 여성들이 한 일
  • 심수봉 또 폭로 목격나와…이번에는 일반인에게 “비꼬며 훈계”
    심수봉 또 폭로 목격나와…이번에는 일반인에게 “비꼬며 훈계”

공유하기

[cosmosfarm_share_buttons url="https://theartist.co.kr" title="디아티스트" align="center"]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