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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것이 궁금한 소녀들에게, <미니의 19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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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최미소]  나는 또래들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고, 유독 내가 어울리던 내 친구들은 또 키가 큰 편이었다.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이 세상 단 하나의 목표였던 나는 키가 큰 게 어른 같아 보여서 좋았고, 그게 몹시 부러웠다. 어른이고 싶었다. 작은 내가, 어린 내가 싫었다. 사춘기를 맞는 청소년의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뉴스를 연일 접하던 해였고 몇 달에 한번 돌아오던 성교육 시간은 우리 얼굴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해 나는 내 사춘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를 만난다.

 나와 내 친구 무리 다섯 명은 말 그대로 종이가 닳도록 그 책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다. 사춘기를 이야기 한 책은 널리고 널렸지만 우리가 이 책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속에 섹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색적인 성관계 묘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몽글몽글 그려본 성(性)이란 것이 그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책의 10대 여주인공 조지아는 자신의 신체나 남녀의 차이, 사랑과 성에 대해 거의 하루 종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마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나와 내 친구들이 그 시절 고민하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는 그 책을 읽던 내 표정을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내 기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런 거 읽어도 되는 거 맞나? 이런 게 혹시 말로만 듣던 불온서적 아이가? 야한 걸 좋아하면 잘못된 성 인식이 심어져서 나쁜 어른이 된다 했는데? 아, 내 나쁜 어른 되는 거 아이가? 아 근데 재밌는데 어떡하지?’ 

나는 미칠듯한 걱정과 염려 속에 빠져있었다. 성에 관해서 이토록 솔직하게 말을 하는 책. 정확히 말해서 성에 관해 내가 궁금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이런 책을 만난 것이 거의 처음이어서 나는 꽤나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마리엘 헬러 감독이 연출한 <미니의 19금 일기 (The Diary of a Teenage Girl), 2015>의 주인공 미니 괴츠 역시 그런 새빨간 궁금증이 많은 소녀다. 10년이 지나도 이런 소재가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이야기 되는 것은 듣고 또 들어도 재밌는 소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밌는 소재 말고 괜찮은 영화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 <미니의 19금 일기(The Diary of a Teenage Girl), 2015>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세련되려면 과하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의 애인 먼로와 섹스를 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도 너무 음울하거나 찝찝하지도 않았고, 사춘기의 미니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그리면서 현실감 없이 너무 붕붕 뜨지도 않았다. 특히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미니를 둘러싼 많은 화면은 관객이 영화 속으로 폭 빠지기에 충분하다. 먼로와 엄마가 있는 거실에 들어선 미니가 TV를 보는 척 소파에 앉아있다 먼로가 사라지는 순간 미니의 몸이 푹 아래로 꺼지면서 표정을 우그러뜨리는 장면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한 소녀의 육체가 어떻게 긴장하는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또 미니의 방안 사방이 별로 반짝이는 씬을 포함한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 효과들은 사춘기 소녀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먼로와 미니를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화는 둘 사이의 거리를 재보려고 한다. 특히 센스가 돋보였던 것은 미니가 먼로에게 좋아하는 색깔을 묻는 장면이다. 좋아하는 색깔이라니! 어렸을 때 우리는 정말 그런 것에 집착했었다. 거의 한 친구를 사귀는 필수 관문 같은 거였다. 어쩌다 반에 어떤 남자아이가 나와 같은 색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라도 하면 그것만으로도 “사겨라! 사겨라!”가 성립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미니의 질문에 먼로는 무신경하게 대답한다.

“좋아하는 색? 몰라, 그게 왜 중요하지?”

   
▲ 사랑하는 남자 먼로의 차에 타고 있는 미니. ⓒ 네이버 영화.

 미니가 먼로를 사랑한 것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또 그게 한시적 감정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특히, 이 시기의 소녀들이 사랑과 섹스에 관해 갖는 판타지에 대해서 진실의 잣대로 옳다 그르다는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그 시절을 이미 겪었고 그 것을 다시 떠올릴 때 그 감정이나 그때의 내 행위가 옳거나 잘했다 싶어서 그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지나온 그 시절 그 공간 모두에 다만 향수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전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니 괴츠의 말처럼 때로는 어린 애들의 언어가 더 정확한 법이다. 때로는 너무도 정확한 시선으로 보고 정확하게 말 할 줄 알기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더 아프기도 하다. 내가 나쁜 어른으로 성장하였는지 아닌 지 아직 모르겠다. 성에 대해 말하는 게 어마어마한 잘못 같아 무서웠던 그때에 비해 20대 지금의 나는 섹스와 젠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은 친구들이 생겼고, 사랑이 너무도 궁금했던 그때의 나를 이제 돌아보며 어쩌면 그때에서 크게 많이 자라지 않은 내 키와 내 안의 여러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영화를 본 후에 내가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를 떠올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중전화 박스에 주저앉은 머리 위로 사랑이 ‘피처럼’ 쏟아지던 각자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쁜 어른이 될까봐 겁을 먹은 눈을 한 채로 두 주먹은 꽉 쥐고 시뻘건 사랑을 시리게 겪었던 모두의 미니 시절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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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소
kusmile3205@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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