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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말(Louis Malle)의 데미지(Damage,1992)

김지영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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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미지(Damage) 일본판 블루레이 커버 [출처: Google]

[디아티스트매거진=김지영]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얻으려는 욕망은 그것을 손에 넣은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처음에는 대상이 실재처럼 보였지만, 대상을 얻는 순간 허상이 되기 때문에 욕망은 남고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 자크 라캉(Jaques Lacan) 

  우리 중 대부분은,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대어 살아간다. 나의 행동이 의식적(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무조건적인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캉을 비롯한 20세기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 이성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하며, 무의식과 욕망이야말로 인간 삶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채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 되는 욕망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인간사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는 이러한 인간 삶의 ‘숙명성(fatality)’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욕망 중에서도 특별히 ‘금지된 욕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의 서사와도 맞닿아있다. 

  스티븐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 役)은 밖에서는 유능한 정부 관료이며 가정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완벽해 보이는 그의 삶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아들 마틴의 연인인 안나(줄리엣 비노쉬 役)를 만나고서부터다. 둘 사이에 작용하는 이 불가사의한 인력(引力)에 대해 영화는 친절한 설명이나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첫 만남의 장면에서, 두 사람은 오직 한두 마디의 간단한 인사를 나눌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물들의 눈빛과 몸짓을 통해 두 사람이 이미 서로를 욕망하기 시작했으며, 회피불가능한 치명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영화 데미지(Damage) 스틸컷 [출처: Google]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연인으로 삼은 안나의 동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안나가 15살 때, 안나의 친오빠는 여동생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안나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정상적인 관계로는 결코 충족할 수 없는 결핍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녀는 스티븐에게 말한다.

“Damaged people are Dangerous. They know they can survive.”

“상처 입은 사람들은 위험해요. 그들은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거든요.”

  이것은 다가올 불행에 대한 예언이자, 일종의 메타포다. 안나는 결국 자신의 상처를 스티븐에게 전염시키겠지만 그 상처의 부작용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을 것이다. 안나의 유일한 동기는 그녀 자신의 생존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은 안나에게 숙명적으로 이끌린다. 그는 심지어 안나를 위해서 아내와의 이혼까지 감행하려고 한다. 안나는 그런 스티븐을 단호하게 저지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라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안나는 스티븐만큼 절박하지 않다. 스티븐이 안나를 필요로 하는 마음과 안나가 스티븐을 필요로 하는 마음 사이에는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렇게 서로의 감정의 간극이 큰 관계가 파멸에 이르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과일 것이다.

   
▲ 영화 데미지(Damage) 스틸컷 [출처: Google]

  결국 이 비극은 스티븐과 안나의 밀회 장면을 목격한 마틴이 그 여파로 인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마틴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마치 안나의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기억의 데자뷰이다. 금지된 욕망의 댓가로 아들을 잃은 스티븐은 장관직을 사임하고, 가족을 떠나 평생 홀로 떠돌아다니며 살아간다. 반면 안나는 첫사랑이었던 피터에게로 돌아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언뜻, 안나는 남자의 삶을 파괴하는 팜므 파탈(fatal)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느와르 영화의 팜므 파탈과 달리 안나는 어딘가 동정할 수밖에 없는 처연한 빛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이 인물이 ‘죄인 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숙명(fatal)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이 팜므 파탈의 매력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스티븐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팜므 파탈에 사용되는 ‘fatal’이라는 단어는 ‘치명적인’, ‘죽음을 초래하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동시에 ‘숙명적인’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두 사람의 행위는 사회적 윤리 규범의 틀 안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누구라도 영화를 보는 중에는 무의식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정당화하거나, 심지어는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 두 사람에게 발생한 ‘사고’ ― 온 곳을 알 수 없는 욕망에서 비롯된 사랑의 사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며,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숙명이기도 한 까닭일 것이다.

  이 영화는 92년 개봉 당시,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수입 금지를 당한 전적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이 영화를 무삭제판 블루레이 DVD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롤리타’, ‘마담 버터플라이’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금단의 욕망에 이끌리는 중년의 심리를 더없이 섬세하게 연기한다. 여기에 줄리엣 비노쉬의 절제된 감정 표현과 루이 말의 연출, 음악 감독 즈비그니에프 프라이즈너의 음악이 어우러져 스크린 위에서 완벽한 비극의 서사를 구현하고 있다.

   
▲ 영화 데미지(Damage)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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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jykwldud207@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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