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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예술,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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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경홍] 역사적으로 디자인과 예술을 서로 다른것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은 아니다. 서양문명의 관점을 통해 논의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안타깝긴 하지만, 어쨌든 이를 무슨 라틴어 어원부터 찾아 볼 필요 없이 현상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근대적 의미의 ‘생산’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그리 된 것이다. 그 시절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웨지우드사의 공방에서 툭하니 출현했다기 보다는, 순수예술과 함께 분열을 통해 구분 지어진 것이라는게 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순수 예술도 비슷한 시기에 그 개념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그 전에는 예술과 디자인, 공예, 적지않은 경우의 엔지니어링까지 모두 한몸이었다.  이는 수학과 철학, 천체학과 신학 등이 마구 뒤섞여 있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것들을 갈라서 생각하게 하고 다른 관점과 가치를 부여하게된 계기는 테크놀로지였다. 수공예품을 똑같이 복제할수 있는 기술, 혹은 한달전에 만들었던 작품을 오늘 똑같이 다시 만들수 있는 기술, 하나의 원형을 10개, 100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은 인간의 창작품이 자본과 결합해 과거보다 객관적이고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 ‘생산’이라는 개념은 ‘가치’의 의미를 다소 진부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원본에 담긴, 다소 과장해 이야기 하자면, 인간정신의 산물을 주판 위에 올려 놓을 수 있게 한 것이다.

   
▲ 웨지우드사의 포트랜드 화병(1790년경, 출처:Wikipedia.org) 웨지우드사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작품들을 복제하고 모티브를 자사 디자인에 도입해 고전주의풍 도자기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가마온도 관리, 주물 디자인, 생산과정, 직공의 숙련도등의 혁신으로 품질과 생산성 모두 성취한 회사로 성장했다.

불가분하게 생산은 복제 횟수와 개개의 가치를 계산 가능한 방정식으로 묶어버렸고 그런 맥락에서 제품/작품의 ‘질’ 역시 숫자로 환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질’은 제품, 혹은 작품의 물성적 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하거나 감상할때 얻을 수 있는 여러종류의 경험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감동이나 만족감 같은 것이라고 전제해 본다. 물건 따위에 그런 인간의 감성적인 감흥을 가치로 부여하는 것이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바로 이순간에도 사람들은 쉴새 없이 그것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거나 누군가에게 추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어쨌든 ‘생산’된 창작품은 그 본연의 가치가 절하 되어 버리곤 한다. 단순히 다시 살수 있다, 혹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 라는 이유 때문이다. 

한편, 디자인과 한 배에서 태어난 순수예술에 대해서는 어떤가? 근대 이전의 예술 작품들은 귀족이나 정부, 교회의 주문에 의해 창조된 경우가 많다. 특히 어떤 정신세계의 정수를 탐구하는 미학적 수준이 높은 창작품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의뢰받아 만드는 디자인 제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이 좀더 내밀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것은 생산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디자인과 예술은 나름의 방향을 정했고 창작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으로 피조물의 가치가 정해지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작가 내면의 창조적 영감 외에 사회적 관점의 합의된 가치라는 것이 함께 작동하게 된것이다.  필자의 식견이 짧아 멋진 표현을 구사하기에 힘이 부치기에, 독자들에게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생산과 가치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 있을 만한 곳을 대신 추천하고 싶다. 미술관의 출구쪽에 마련된 기념품 가게다.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경배하는 위대한 예술작품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자본주의적 가치시스템에 따라 가격표를 달고 판매된다. 개인적으로는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들이 이러한 기념품 샵의 프로토타입이라는 생각까지 미친다. 다소 성급하게 이야기를 꺼내버렸지만, 디자인과 예술 모두 사회적 변혁을 거쳐오며 나름의 방향으로 성숙해 온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는 종종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인간 정신으로의 여정을 떠나게 되었고, 디자이너는 복잡한 세상과 사람들이 가진 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을 축적하고 있다. 

   
▲ www.art.com은 유명한 회화나 사진 작품의 복제 프린트를 판매하는 사이트. 방대한 작품수를 자랑하고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표구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 사이트에서 오리지널 작품의 가치는 가격에 큰 변수가 아니며 프린트의 크기, 인쇄방법, 표구옵션과 같은 작품 외 요소들이 가격을 결정한다.
   
▲ 존 듀이 John Dewey (출처: thenewschoolhistory.org)

철학자 존 듀이는 교육학과 미학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저서 ‘경험으로써의 예술’에서는 이러한 분화가 이루어 지기 이전의 미학적 주체로써의 인간에 대해 탐구한다. 이 글에서 그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 장인이 있다. 아니 꼭 장인일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은 필요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주문 때문에 물건을 만든다. 만약 주머니 칼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최초에는 그 재료가 가진 문제부터 해결을 할 것이다. 담금질이나 금속가공에 대해 고민을 할 것이고 주머니 칼로써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날을 세워야 한다. 휴대가 가능하도록 케이스를 만들어야 할 것이고 허리춤에 걸수 있는 고리 따위도 만들 것이다. 실제 그 도구의 쓰임새에 충실하도록 만들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주머니칼을 만들어야 할 때 그 사람은 첫번째 칼을 회상해 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조금은 새롭거나 더 적합할거라 판단되는 선택을 한다. 담금질의 빈도나 두들기는 횟수, 혹은 손잡이 재료를 좀 더 무른것으로 고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전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산성을 위한 논리적 선택일 수도 있고 가죽 칼집을 염색할때 처럼 미학적 취향에 따른 선택일수도 있다. 매우 작은 단위의 혁신의 프로세스이다. 처음 시도하고, 이를 회상하고, 조직화하고, 더 나은 결과에 대한 기대에 의해 새로운 모험을 감수하는 것, 마지막으로 단편적인 행동이 아닌 이러한 프로세스를 다시 평가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 내면의 동기를 부여하는 주체, 그리고 열정을 가속하는 주체는 창작자 자신이다. 미적 재능과 같은 편리한 단어는 이러한 연속적인 혁신의 과정이 바탕이 된 이후에 떠올릴 수 있다. 왜냐하면 창작자 내면에서 솟아오른 자기혁신의 강렬한 욕구 없이 스스로 납득할만한 수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듀이는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예술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주머니 칼을 만들때나 추상회화를 그릴때나 그 행위를 작동시키고 창조적 행위로 이르게 하는 바탕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장황했던 서두로 돌아가보자. 규격화된 시스템 하에서 복제된 제품들에서는 오직 그 설계의 흔적에서 이러한 예술의 정신을 흐릿하게 나마 느낄 수 있다. 얄궂은 경우라면 이른바 핸드메이드 명품이라는 제품에서 그러한 가치를 찾고자 할 때일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이런 생산품을 소비한다. 이는 우리시대에서 당연한 거래로 받아들여지고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은 시야를 확대해 볼 필요도 있다. 예술적 인간이라 함은 그저 미학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향유하는 주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창조 행위에 대한 동경, 미학적 호기심을 갖는것 뿐만 아니라 직접 창조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더 정확한 정의가 아닌가. 앞서 듀이가 주장한 예술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거창한 예술가의 삶을 프레임 너머로 엿보는 것보다 즐거운 무엇을 찾을 수도 있다. 

   
▲ 독립시계 제작자. 출처 : laurentferrier.ch기계식 시계를 설계부터 톱니 하나 까지 직접 깍아 만드는 독립시계 제작자들은 장인을 넘어서 예술가로 인정 받는다.

대량생산의 시대에도 쓸데 없이 목공기술을 취미로 배워 아내의 미움을 받아가며 가구를 만들거나 주말마다 가죽공방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재미 있어서’ 라고 싱겁게 변명하기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론 단지 어눌하고 빈약한 표현의 한계이다. 아니 솔직히 예술은 재미있는 것이 맞다. 다만 그 재미가 끊임없이 자신의 창작욕구를 자극하고 예술적 감흥을 일으키며, 성취의 기쁨 따위를 동반하는 것이다. 비단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듀이가 주장한 창조적 혁신의 과정을 경험하는 행위는 무엇이든 예술적 기쁨을 준다. 다운힐 라이더가 자신의 자전거를 정비하거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할 때에도, 마음에 드는 배기음을 찾기위해 오토바이를 튜닝할 때에도 같은 종류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미학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테크놀로지는 역설적으로 과거에 갈라버린 경계를 다시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서두에 언급했던 시대의 기술이 인간정신의 산물을 복제하는데 기여했다면, 현재의 기술은 창작의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영상 콘텐츠나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기술이 보편화 되고 접근성도 좋아지면서 수많은 인디 비디오 아티스트 혹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각광받는 3D 프린팅 기술 역시 대량생산 체제의 대체/보완 솔루션으로써의 가치 뿐만 아니라 조각가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발상과 표현기법을 구사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쌍방향 네트워크가 정착된 오늘날 개인의 창조적 체험에 대한 열망은 그 자체로 새로운 형태의 예술행위로 즉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면에서 어느때 보다 개방적인 환경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John Edmark의 Blooms는 3D 프린터로 만든 조각작품을 회전시키고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만든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출처: https://vimeo.com/116582567)

어떤 철학가는 그들이 질투하는 유일한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쩌면 철학적 사유로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고 격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인간임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것이 예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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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홍
morley@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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