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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국악그룹 ‘비빙’의 신작 <이종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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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아트센터

[디아티스트매거진=안경은] 창작국악그룹 ‘비빙’의 신작, <이종공간>을 관람하였다. 이종공간은 커다란 배를 타고 제물로 팔려가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소리, 조명, 몸짓으로 풀어내는 공연이다. 대개 공연이란 배우의 대사를 전해 받고 이야기를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공연은 연극도, 뮤지컬도 아니라서 막연하게 ‘어려운 공연이 될 것 같다.’는 겁을 먹었던 게 사실이다. 무대에는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기다란 물결 모양의 반투명 유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악기 연주자들의 자리가 무대를 감싸듯 배치되어 있다. 무대 왼편에는 배우들이 입장할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 이러한 무대에 조명을 비추면 자연스럽게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해금과 가야금, 피리, 그리고 각종 악기를 연주할 연주자들이 먼저 공연을 시작한다. 이윽고 3명의 출연진, 그러니까 3명의 ‘사람 악기’가 서로를 맴돌며 빙빙 도는 걸음으로 등장하는데 마치 휘몰아치는 바다 파도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몸짓은 반투명 유리와 어우러져 이곳의 배경이 바다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게 전달한다. 이후 펼쳐진 공연에서도 적잖이 놀랐던 게 바로 이런 전달 방식이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본능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한다. 대사가 없어 어려울 것만 같았던 공연은 언어를 몰라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연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것도 최소한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소통해본 적 없는 나는 가없는 예술의 한계에 소름이 돋았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면서 내 고정관념의 한 꺼풀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공연의 경이로움은 소리의 시각화에 있다. 소리는 얇고 굵다가, 밀어내고 당기다가, 흐르다가 끊기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미묘한 공기의 떨림을 이렇게까지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가령 소리가 얇게 흐르면 위로가 느껴지고, 굵었다가 끊겨버리면 슬픔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목소리는 인간의 한(恨)을 담아낼 수 있는 최상의 소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러 가는 걸 알면서 배에 오르는 소녀의 슬픔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단순하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는 이 소리의 세계에 몰입하자 내 감각은 매우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배우의 작은 몸짓도 눈에 들어오고, 미세한 소리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여배우가 자신의 손으로 다리를 잡은 채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자신의 의지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환희 맑게 치는 피 찢겨 용솟음치는 심장 비릿 물 퍼덕
바람 긁어 놓은 물 희게 흩어지나니 혀에 녹는 달큰 물
내 탓 아니려니와 모래바람에 옮듯 아인 죽어 철없이
가끔 어쩔 수 없는 후회
고개를 젓고 설움 술에 말아 꿀꺽
(이종공간 ‘725’ 곡 中)

황천길에 이르기까지를 공연의 전반부라고 본다면, 황천길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공연의 후반부가 진행된다. 이에 따라 황천길로 가는 길에서는 소녀의 심란한 마음을 달래주려는 소리가 있더니, 황천길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가성과 종소리를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넋을 위로하는 소리로 변해간다. 배우들도 전반부에는 소리와 몸짓을 같이 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후반부에는 목소리와 방울종을 연주하는 완전한 ‘사람 악기’로서만 무대 위에 존재하게 된다. 이제 서서 반투명 유리의 앞뒤를 오고 가다가 바닥에 뒹굴었던 배우들의 몸짓은 없다. 육신을 두고 혼이 날아오르듯, 몸짓은 사라지고 소리만이 피어오른다.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선들을 느리게 그려나간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꿈에서 깬다. 굽이굽이 흐르던 감정선 모두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꿈 말이다. 아마 꿈을 꾼 것 같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꿈 같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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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은
elva@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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