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임현아]
새로운 것이나 예술 작품 따위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늘 소재의 갈증을 겪는다. ‘소재의 갈증=감정의 갈증’이기도 하다. 소재가 떨어지는 동시에 감정마저 메마르게 결핍되는 기분. 창작활동의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런 갈증의 시간은 창작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찾아온다. 그들이 소재의 갈증을 겪는다면 우리는 일상의 갈증을 겪고 있다.
매일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상을 꾸역꾸역 삼켜내듯 버티기 작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버틸 것인가 벗어날 것인가의 사이에서 늘 아등바등 줄다리기하며 소극적인 태도로 꿈만 꾸는 사람들.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기에 제 자리 걸음일 수 밖에 없는 그 발걸음들.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그 발걸음 안에 담긴 사정들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무언가를 만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지속될 수 없는 순간의 행복일지라도 오랫동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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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상에서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영화 제목처럼 무더운 한여름 우리에게 찾아와준 선선한 바람의 판타지아같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은 마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듯 아쉬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손에 쥐고 있던 영화 티켓은 비행기 티켓이 되어 다시 영화 속이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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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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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건, 감독이 직접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그때 느꼈던 영감으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의 시선으로 보면, 이 영화는 새로운 것이나 예술 작품 따위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소재를 어떻게 찾고 그 모여진 소재들로 어떻게 본인만의 창작물로 정착시키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감독이 만난 새로운 세계가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탄생하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첫번째 에피소드, ‘첫사랑 요시코’에서는 그러한 영화적 소재를 찾는 감독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스토리가 담긴 영화로 완성되기 전의 이 흑백 여정은 다음 두번째 에피소드로 가기 위한 감독의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첫번째 에피소드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은 과정보다는 완성된 결과물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이니까. 나 역시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에 비견되는 로맨스, 한국 현대영화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수많은 수식어들로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참 아름답게, 설레이게 하는 문장들로 입소문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풍부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졌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부담스럽게 포장된 시선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이 이 영화가 갖는 순수한 매력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들게 했다.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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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 ||
유스케 : 오래 살고 싶어요?
혜정 : 적당히….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본 첫번째 에피소드가 끝나고 시작된 두번째 이야기, ‘벚꽃우물’. 흑백 영상이었던 화면은 색깔이 입혀져 있었고 이제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느낌. 우리가 기다렸던 동양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처럼 여행길에서 만난 두 남녀의 로맨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안녕, 낯선 사람…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로맨스의 조건이 되어 준다. 유스케와 혜정을 보면 이 세상에 너와 나, 오로지 두 사람만 남아 지금의 이 시간을 함께 써야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곧 사라질 한여름의 짧은 시간뿐이니까. 그 시간을 향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거짓없이 솔직하게 말해주는 수 밖에 없다. 서로를 향해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고 집중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뻐해주고. 매일 지속되는 일상 안의 관계에서는 참 하기 힘든 그런 시도들, 감정들, 대화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에게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뭔가를 계속 찾으려는 혜정에게 유스케가 해준 한마디가 계속 기억에 맴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러워요. 예쁘니까요.” . 새로운 것을 찾았다 해도 그 안에 머물면 그것이 현재가 되고 현재가 되면 우린 또 늘 불만스러울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래, 지금의 나, 지금의 너, 지금의 현실을 예뻐해줘야 겠다. 유스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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