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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임현아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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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 매거진=임현아]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중에서

우리가 알던 도시는 곧 보이지 않는 도시를 뜻한다. ‘~알던’은 이미 지나간 과거형을 품고 있는 시제, 지금은 없는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알던 도시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내가 알고 있던 도시의 모습을 하나둘씩 떠올려 본다. 그땐 그랬지의 순간들을. 

가장 먼저, 손편지를 고이 적어 우체국에 가는 발걸음이 생각난다. 지금처럼 수신과 발신 확인이 즉각적으로 알 수 없던 그 때에는 애끓는 기다림의 미학이란 것이 있었다. 읽었을까, 잘 받아보았을까, 라는 궁금증과 기다림의 시간을 끝낼 수 있는 건 오로지 답장만을 기다리는 일. 그런 절실한 마음을 품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거리를 거닐때마다 있었던 빨간 우체통이 이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면 그랬던 시간들도 사라져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반가운 빨간색의 신호는 순수하게 나눴던 소통의 부재를 알리는 적신호가 되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꾸만 늘어가는 빨간 우체통의 빈자리만큼 그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것들도 자꾸만 늘어가겠지.

오래된 것들, 낡은 것들이 있어야 할 곳은 왜 늘 과거여야 할까. 지금의 시간 속에서 함께 공존할 수는 없을까.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들의 쓸쓸한 빈자리가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가 알던 도시, 강홍구 박진영 사진전>은 이런 씁쓸한 마음들과 꼭 맞닿아 있는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는 도시의 재개발과 재난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라짐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를 주제로 하는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도 이 전시는 재난과 재개발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다루는 사진들에 집중한다. 재난과 재개발은 전쟁을 제외하고 사라짐이라는 현상을 가장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로 실행시키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서 매일 조금씩, 혹은 하루 아침에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것들은 무엇이고, 그 자리에 남겨진 것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사라짐의 현상과 그 잔재를 사진 이미지로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끊임없는 풍경의 변화, 지속적인 상실의 경험 속에서 불안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침투하는가. 이 전시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전시는 이 두 작가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해, 그리고 도시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강홍구 작가의 우리가 알던 도시        

산동네의 집들은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계단과 난간과 지붕과 옥상과 이층 모두 다 솔직하다. 물론 살기는 불편할 것이다. 대신에 거기에는 일종의 자신감과 사람이 꼭 필요해서 지었다는 느낌이 있다. 절실함이 건물, 길, 골목, 계단 곳곳에 스며있다. 그렇다고 그 절실함이 공격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은 주거지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던 집과 마을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by. 강홍구 

 

   

 
 

강홍구는 재개발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현실과 허구, 비판과 유희,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넘나드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기록과 기억, 파편과 파노라마, 의도와 우연이라는 상반된 요소들 사이의 균형과 긴장 속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특유의 균형감각은 대상에 대한 거리 두기와 관련된다. 작가가 밝힌 바 있듯, “가까이 다가가면 부딪치고, 멀리가면 남의 일이 되고, 그래서 구경꾼이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인 것이다. 무력하지만 무심할 수 없는, 그래서 언제나 현장의 주변을 배회하게 되는 예술가의 복잡한 심경이 여기에 반영된다.

박진영 작가의 사라진 도시

우리는 만들고 부수고 버리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이것은 만들기엔 찝찝하고 부수기엔 위험하고 버리기엔 불가능한 것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촬영일지 중에서)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의 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박진영은 사건의 중심부로 뛰어들어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두고 그 주변부를 탐색하듯 사진을 촬영한다. 방사능이 유입되면서 공포와 불안의 상징이 된 바다, 오후 두 시의 텅 빈 거리, 화재로 불타버린 학교 교실에 남겨진 물건 등의 사진을 통해 작가는 이 복잡다단하며 현재도 진행 중인 재난의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기간: 2015.05.19 – 2015.10.11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 6전시실
♦관람료: 무료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전하고 싶다. 이 전시를 보는 순간부터 떠올랐던 시다.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통해 천양희 시인이 읊어 내려가는 우리가 알던 도시.      

사라진 것들의 목록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지고 고전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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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아 기자
undermind30@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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