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이륙 전 02 – 배낭 하나 싸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고민이
백은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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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IST 매거진=백은영] 늘 고치고 싶은 스스로의 단점이 하나 있는데, 뭘 하든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당장 그 날에 향후 몇 년 간의 계획을 세우고 상상해 보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필요한 물건까지 냉큼 사버린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설레발을 떨어 두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계획이 엎어지기라도 하면 창피함과 시간 낭비, 돈 낭비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 여행을 다짐하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리어처럼 끌 수도 있고 배낭처럼 멜 수도 있다는 가방을 보고 남미여행에 적합하겠다 싶어 덥석 구매해 1년이 넘도록 방 한 켠에 고이 모셔뒀다. 그리고 얼마 전, 조금씩 여행 짐가방을 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다시 꺼내 보았다. 나름대로 짐을 차곡차곡 챙겨 넣은 뒤 든 첫 번째 생각은 ‘가방을 바꿔야 하나?’였다. 어이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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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행히도 만족스러운 두 번째 배낭에 짐을 싸고 있다. 때문에 거실 한 쪽은 내 배낭과 물건들 차지. | ||
처음 샀던 가방은 캐리어와 배낭 겸용이라는 게 장점이지만 아웃도어에 활용하기엔 기능이 제한적이다. 가방끈의 위치가 조절이 안돼서 체구가 작은 내게는 어깨가 붕 뜨는 것도 문제였다. 배낭을 멘 내 모습을 보는데 어쩜 이렇게 어리숙해 보이는지. 남미여행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모두들 등산용 대용량 배낭을 들었지 나처럼 둔한 모양의 가방을 가져간 이는 없었다. ‘성급함이 또 초를 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아웃도어에 적합할 대용량 등산배낭을 검색하고 중고로 올라온 매물을 알아보는데 지켜보던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내일 직접 둘러보러 가자고. 성급하게 산 가방에 후회하고 또 성급하게 다른 가방을 사려던 딸을 말리는 엄마의 지혜로움이 고마웠다. 엄마와 함께 구경해 보고 새로 산 가방은 여러모로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가방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추락했던 자신감이 다시 상승세에 올랐다. 6개월 동안 짐을 잘 챙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역시 자신감의 추이도 성급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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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린다고 추렸는데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의류팩. 뭘 더 포기해야 하지… | ||
새 배낭을 사고 며칠째 거실 한 쪽은 내 배낭과 물건들 차지. 짐을 쌌다가 풀기를 수십 번 반복 중이다. 옷, 전자기기, 세면도구, 상비약 등등 여행을 위한 필수품들 옆에 여행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물건들도 보인다. 바로 선물이다. 가서 만나고 어울릴 친구들을 위한 선물이 한 팩, 이건 배낭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볼리비아에 살고 있는 내 결연후원 아동 빅토르 안토니오 빌라누에바와 그의 친구들을 위한 선물이 한 박스, 이건 집에 두고 갔다가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머물 때에 국제 택배로 받을 예정이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단지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뿐인데도 고민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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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가 된 외국인들에게 줄 선물. 내 눈에도 예쁘고 한국적인 특색도 있어 좋다. | ||
친구들에게 줄 선물은 한국적인 특색을 띄면서 내 눈에도 예뻐 보이는 물건들로 사고 싶었다. 인사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채, 버선, 고추, 장구 모양의 기념품들은 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때문에 꽤 많은 사이트를 전전하다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쇼핑몰에서 준비를 마쳤다. 신진 작가들이 한글과 한국적인 소재를 이용해 예쁘고 재미있는 상품을 많이 만들어주니, 외국인들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는 여행자에게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연후원 아동에게 줄 선물을 위해서는 후원단체에 먼저 문의부터 했다. 혹시 아이가 갖고 싶은 물건이 뭔지 물어봐주면 준비해 가겠다고. 상담원은 만류했다. 그렇게 물으면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에 컴퓨터, 자동차, 집과 같이 감당 못할 기대를 하고 만다는 것이다. 순간 멈칫했다. 아이가 만약 조금 비싼 것을 말하더라도 흔쾌히 사가겠다던 처음의 생각은 오만이었던 것이다.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가진 자의 오만과 위선을 보인 내 모습이 웃겼다. 아이에게 줄 선물을 위해 조금 더 신중하기로 했다. 가격이나 양보다는 의미와 가치를 담기로.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아이의 친구 몇 명을 위한 선물도 함께 준비하기로. 방향성이 잡히자 실행하기는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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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연후원아동과 그의 친구들에겐 필기도구와 전통놀이셋트를 선물로 준비했다. | ||
필기도구과 색종이, 그리고 전통놀이 세트를 준비했다. 공기놀이, 제기차기, 구슬치기, 실뜨기를 위한 도구가 주머니에 함께 담겨있다. 옆에서 구경하던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제기차기는 어떻게 가르쳐 줄 생각이냐고 일갈한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제기만 차면 헛발질을 하는 당신의 둘째딸을 제대로 찌른 말이다. ‘나는 못해도 애들은 잘 찰 수 있겠지!’하고 받아쳤지만 사실 조금 불안하다. 아이들이 내 시범을 보고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는 놀이라고 착각하면 어떡하지?
빅토르 안토니오 빌라누에바를 위한 한복 한 벌까지 더하면 볼리비아의 아이들에게 줄 선물 박스가 꽉 찬다. ‘연필을 사주면서 연필깎이는 사주지 않는 건 무책임한 일일까? 연필을 넣을 필통은? 필통을 넣을 가방은? 가방과 함께할 신발은?’ 박스를 앞에 두고 이상하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얼른 쳐낸다. 그래, 오만하게 이것 저것을 가져다 주기보다 가서 못하는 제기차기라도 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오자.
이번 여행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신중하게, 온전히 책임을 다 지면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짐을 싸기도 전부터, 내 성급함 덕분에 멀쩡한 가방 하나가 중고 구매자를 기다리며 창고 신세를 지게 됐다.
6개월 동안, 욕심으로 잔뜩 챙긴 옷과 선글라스에 대해 책임을 다 질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며 ‘좋은 사람이 된 기분’에만 취하지 않고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여행만을 생각하며 1년 반동안 준비한 나에게, 취업도 않고 긴 여행을 간다는 딸을 감내한 부모님에게, 걱정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부지런한 여행자가 과연 될 수 있을까? 출발을 일주일 앞두고 고민하기에는 너무 우울한 주제인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풀어헤친 배낭을 다시 싸고 어깨에 멘다. 허리에 실리는 육중한 무게감, 딱 이만큼의 책임을 다하는 반 년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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