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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산아트센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안경은] 사회 속 개인의 예외적 모습과 문제에 대해 다룬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 연극에서 다룬 ‘예외’란, 남들보다 유난히 마음이 약한 사람, ‘히키코모리’이다.
초반 몇 분, 예상치 못하게 머리가 혼란스럽고 마음이 불편하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인의 작품이라서 그런 걸까. 그동안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서양인의 작품을 볼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생소한 느낌일까. 폐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언행의 반복에 답답해지고, 몇 년이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등장인물을 보면서 은둔형 외톨이 캐릭터 설정 강도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닌가 싶다. 공연과 내가 겉돌기 시작한다. 마치 한국인 입맛에 맞추지 않은 강한 향의 인도 카레를 맛본 듯, 일본인의 정서를 그대로 담은 연극에 살짝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공연 초반까지 ‘이번 연극은 내 취향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연극에는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3명의 히키코모리가 등장한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등장한 히키코모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8년째 집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스무 살 청년 ‘스즈키 타로’. 밥 먹을 때 빼고는 방에서 나온 적 없어 부모조차 그의 얼굴을 본 지 3년이 되어간다고 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들어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 판단되는데, 차려진 밥상을 먹으러 나왔다가 부모와 마주치자 화를 내며 난동부리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재빨리 몸을 피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미안해.”라고 연거푸 사과하는 어머니와 “그만해.”라며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타로는 답이 없어 보인다. 똑똑한 머리와 직설적인 대화법은 높이 평가하나, 전형적으로 버릇없이 큰 아이이다.
그다음으로는 한 번 취직한 후에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쓰레기더미를 몸에 휘감은 채 20년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40대 중년 ‘사이토 카즈오’. 히키코모리 출장상담원의 3년간의 노력 끝에 쓰레기더미에서 나와 말끔한 모습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우선 그는 첫인상과 달리 상당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며 완벽주의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몇 번의 대화만으로 간파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흠조차 그의 눈에 다 보이기 때문에 자꾸만 남에게 지적 아닌 지적을 한다. “그렇게 느슨한 정신 상태로”, “그런 추태 부리면서까지 밖으로 나가고 싶진 않네요.”, “재밌어요? 그딴 식으로 사는 게” 등 안타깝게도 그에겐 상대방의 장점만 정제하여 이야기하는 말재주가 없다. 툭 내뱉는 말들 모두 까칠하지만, 타로와 달리 도무지 밉지 않은 건 왜일까. 그는 항상 자기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과 전쟁 중인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그를 보고 있자니 속살은 부드럽지만, 겉에는 가시를 치켜세운 한 마리 고슴도치가 연상된다.
마지막으로 이 두 히키코모리의 집에 방문하여 그들을 기숙사로 데리고 나오는 40대 중년 ‘모리타 토미오’. 그는 현재 직장동료인 ‘쿠로키’와 함께 히키코모리 출장상담원 일을 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지난 10년간 히키코모리였던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히키코모리를 잘 이해하며 진심으로 대한다. 그런데 이 캐릭터, 상당히 귀엽다. 쭈뼛쭈뼛 대면서도 할 말 다하고, 자신의 취미활동인 프로레슬링을 할 때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순수한 열정을 뿜어낸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온 그 날 하필 지하철에서 폭행을 당했어도, 타로를 만나자마자 한 대 얻어맞았어도, 꿋꿋하게 극복해나가는 걸 보면 여린 겉모습과 달리 나름 듬직한 내면의 소유자이다. ‘외강내유’인 카즈오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셈이다.
이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연극은 웬만한 코미디쇼보다 재밌어진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끼리 어울리는 호흡과 부딪히는 합은 예측 불가이다. 가령 카즈오와 토미오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 타이밍을 못 맞춰서 악수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웃긴 장면이 있다. 카즈오가 손 내밀면 토미오는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고, 토미오가 뒤늦게 카즈오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카즈오는 뻘쭘했던 손을 거둬들이는 식이다. 까슬까슬한 카즈오와 둥글둥글한 토미오의 만남. 수없는 시뮬레이션과 공부를 마친 후에 밖으로 나가려던 카즈오 앞에, 어느 날 불쑥 집 밖으로 나갔었던 토미오는 연구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카즈오는 “난 멀쩡하게 밖으로 나가려고 이렇게 수없이 준비를 해왔는데, 모리타씨를 보고 있으면 이게 모두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토미오에게 마음을 연다. 반면에 타로에겐 그런 토미오가 무시하기 딱 좋은 만만한 상대이다. 심지어 ‘밖으로 나오기엔 좀 빠른 얼굴’이라는 희한한 표현을 써가며 토미오의 생김새까지 걸고넘어진다. 그런 타로에게 동경의 대상은 다름 아닌 카즈오. 고작 10년 동안 히키코모리였던 토미오, 생긴 것도 어리바리한 토미오와 달리 20년 동안 히키코모리였던 카즈오는 타로에겐 ‘대선배님’이다. 그는 그런 ‘대단한’ 카즈오에게 마음을 연다. 타로의 업신여김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 좋기만 한 토미오는 타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그를 따스히 품는다. 출장상담원 쿠로키는 제멋대로인 타로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생활비만 남겨두고 그의 부모를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된다. 타로는 부모에게 돌아와 달라는 애절한 문자도 보내보았다가 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문자도 보내면서 배고픔에 몸부림친다. 이때 굶고 있는 아들이 불쌍해 속이 타들어 가는 타로의 부모를 토닥여주고, 보다 못해 먹을 걸 들고선 타로의 집에 찾아가는 사람이 바로 토미오이다. 3명의 히키코모리는 이렇게 서로의 꼬리를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며 관객들을 연극 속에 푹 빠지게 한다.
재밌게 버무린 연극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사회적 문제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이 연극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슈를 거론하고 있다.
첫째, 모든 걸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이다. 출장상담소 기숙생은 등장인물들 곁을 맴돌면서 계속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젊은 층이 이렇게 많은 50대, 60대, 70대, 윗세대들을 책임져야 한다면 어떻게 되지? 이 많은 어른을 떠받치고 제대로 설 수나 있겠어요? 리스크, 리스크.” 집 밖으로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는 행위가 히키코모리들에게 엄청난 공포로 다가오는 까닭은 모든 결과가 고스란히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폭행, 따돌림, 실직, 실패로 인한 상처는 절대로 그 사회의 구조적 탓이 아닌 ‘내가 못난 탓’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글 같은 사회가 아닌 가장 안전한 장소인 집에 머무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더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립을 자처하는 히키코모리는 이로 인해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욕구를 TV 시청, 인터넷 검색 등으로 해소하는 방식을 터득해나간다.
둘째,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사회이다. 타로의 어머니가 쿠로키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8년이면 긴 편인 건가요?”였다. 쿠로키 옆에 있던 토미오의 경우 무려 10년이나 히키코모리로 산 적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니 타로의 아버지까지 표정이 밝아진다. 부모들에겐 히키코모리인 자식을 감싸 안는 본능적인 부성애와 모성애가 있는 한편, 남들과는 다른 자식이라서 부끄러워하는 마음 또한 존재한다. 비교는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 할지라도 계속된다. 히키코모리들 사이에서도 자신과 비교했을 때 더 나은 히키코모리를 동경하고, 자신보다 못난 히키코모리를 무시한다. 연극은 우리가 문제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익숙해진 이 비교하는 습관을 생각 많은 카즈오의 입을 빌려 관객들에게 환기한다. “근데, 막 나와 돌아다녀도 되는 얼굴이 따로 있나?”, “과연 정상은 무엇인가? 과연 멀쩡한 것은, 그 멀쩡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쿠로키와 토미오는 마침내 히키코모리들을 모두 재활 기숙사에 합숙시키는 데 성공한다. 히키코모리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해나간다. 카즈오는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고 제법 칼럼도 쓴다. 타로는 컴퓨터를 잘 다루고 프로그래밍 용어를 많이 알고 있어 바로 취직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로는 입사지원서를 낸 회사로부터 합격통보서를 받는다. “이상하지 않아요 여기? 미친놈 너무 많은 것 아니에요?”라며 히키코모리들로 넘쳐나는 기숙사를 벗어나고 싶어 하던 타로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타로는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인 카즈오에게 같이 기숙사를 나가자고 설득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던 연극은 타로와 같이 밖으로 나간 카즈오가 타로와 헤어진 후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쿠로키의 통화 이야기로 갑자기 가라앉는다. 카즈오의 장례식장에서 쿠로키와 토미오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쿠로키: 왜 사람이 집에서 밖으로 나가야 되는지 알아?
토미오: 알아요. 밖에 나가는 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잖아요. 불행해질 가능성도 같이 높아질지도 모르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쿠로키: 응, 근데 아무런 보증이 없잖아… 보증이 없는데,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는 게 반드시 더 좋은 거라고, 말 못 하잖아?
토미오: 그래도, 전 밖에 나가서 좋았어요.
지금까지 히키코모리를 상대하면서 모든 해법을 알고 있던 쿠로키였다. 타로 어머니에게 무조건 자식에게 사과하지 말라고 다그쳤고,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그녀였다.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던 그녀에게 나는 내심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 결말에서는 답을 갖고 있지 않음을 고백한다. 당황스럽다. 히키코모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까지가 출장상담원의 임무라며 선을 긋는다.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라는 연극 제목처럼, 그들이 딱 밖으로 나온 것까지만이다. 나머지는 관객들이 생각해야 할 몫으로 비워두었다. “히키코모리를 세상으로 끌어냈지만, 경쟁과 획일이 판치는 밖의 삶이 꼭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관객에게 그 문제를 던지고 싶었다.”는 이와이 히데토 작가의 말이 뒤늦게 내 머리를 어지럽힌다.
아, 공연 초반에 왜 기분이 언짢았는지 머릿속에 하나의 이유가 더 스친다.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일본인들을 보고 있었다. 대개 공연은 배우들의 연기가 매끄럽지 않아 공연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만 튕겨 나가는가 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매끄러워서 공연 몰입보다 배우에게 박수쳐주고 싶은 생각에 빠지는 경우로 나뉜다. 그러나 나는 그냥 있는 듯한 연기를 보았다. 배우가 소화하는 캐릭터가 지금 여기에 실제로 있다. 상담원이 그랬고, 히키코모리들의 부모가 그랬고, 히키코모리들이 그랬다. 그래서 배우가 폭력을 쓰면 욕하고 싶고, 배우가 울면 안간힘을 다해 참아도 눈물이 났다.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보여준 것뿐이라는 착각에 ‘연기력 최고였어요.’가 아니라 ‘잘 봤어요.’라고 되뇌었다. 그런 배우들을 믿어서였을까. 박근형 연출가는 이렇다 할 공연 시작의 경계 없이 미끄러지듯 시작되는 연극을 연출했나 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짙은 여운을 남기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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