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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정인태] 이번 공연은 작년 겨울 ‘이십할 페스티벌’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한국 근대 문학 극장> 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4개의 단편을 하는 터라 하나에 30분 정도 씩 2공연마다 10분의 인터미션이 있었다.
첫 번째 공연은 이상의 <날개> 이었다. 원작 자체가 난해한 내용이라 극으로 표현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다. 기둥서방인 남자는 생각이 많은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쓴 작품인데 이 남자의 의식은 늘 아내의 행동과 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내는 왜 외출을 하는가? 왜 나에게 돈을 주지? 왜 손님들은 아내에게 돈을 줄까? 이 돈은 어디다 써야 하지? 등등 늘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늘 도중에 멈춘다. 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으러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아내가 자신에게 주었던 약이 수면제란 것을 깨닫고 옥상으로 올라가 ‘다시 한 번 날아보자꾸나’ 라고 외친다.
왜 ‘다시’ 라고 말을 했을까? 그에게 날았던 적이 있었단 말인가? 아내에게 늘 기생하며 살았으니 결혼하기 전을 말하는 것일까? 흔히 해석하기로는 식민지 시대의 무기력한 지식인을 뜻하며 다시 일어설 것을 뜻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돈을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 돈을 벌수나 있을까? 현실감각조차 없어져 나약해진 인간이, 사고하는 것조차 스스로 제약하는 인간이 날개를 단 들 날 수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이상은 ‘날아보자꾸나’ 하는 것이 희망이라던가, 의지를 갖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희망을 갖자며 발버둥을 치는 지식인들을 비판한 것이 아닐까 싶다. 1910년, 이상이 태어난 지 이틀 뒤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되고 26세로 죽는 1937년까지 일본의 만행, 지식인들의 좌절과 무력감, 변질을 보아온 이상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설 속 이 남자처럼 고민이 실천을 이끌어내지 못하며 기생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있는 것이 너희 지식인들이 아니냐고 비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정작 헤쳐 나갈 힘도 없으면서 날개야 돋아라, 다시 한 번 날아보자꾸나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비판하는 게 아닐까?
두 번째 공연인 <나는 파리입니다>는 생소한 내용이었다. 파리를 통해 안 씨 집안의 갈등을 다루었는데 이 작품 또한 사고의 폭을 넓혀준 연극이 아니었나 싶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영웅’ 이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겐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고아도 아니며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안중근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들도 숨어 살고, 동생은 몇 개월, 몇 년을 도망쳐 다니고, 동생의 친구들조차 피하고 숨어 다녀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이야기를 돌리자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에 ‘화봉요원’ 이란 만화가 있다. 삼국지를 다루는데 거기서 조조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하고자 한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있다. “악한 일을 하는 데도 피를 흘려야 하고, 선한 일을 하는 데도 피를 흘려야 한다. 선악은 후대가 평가할 뿐이다.” 안중근은 이것을 제대로 실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중근의 동생이 어쨌든 먹고 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고, 안중근은 먼저 이들을 처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 둘 다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생각한 옳은 것은, 옳다는 확신이 있으면 실천해야 한다.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은 과연 옳지 않은 일인지 다른 일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인터미션 10분 뒤,
세 번째 공연은 <그리운 흘긴눈>. 정치적인 얘기를 떠나 남녀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보면서 영화 <인간중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올인 하는데 정작 여자는 늘 간격을 두고 남자의 사랑을 잰다. 같이 죽자는 남자에게 그러자고 하고선 몰래 뱉고, 남자 혼자 괴로워하다가 여자를 구해주려 손을 넣었는데 이미 뱉은 걸 보고 눈을 부라리며 죽은 걸, 여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기생이었던 여자는 애초에 사랑에 대해 의심이 많고 몸을 사리며 살아왔으니 목숨을 거는 남자를 멍청하다 여기며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남자 또한 자신과는 다른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며 죽어갔다. 결국 남자는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여자는 살아있으나 이해하지 못한다. 참 모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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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공연은 <봄봄- THEKOREAN TREMBLE> 이었다. 설명이 워낙 짧아서 내가 아는 그 김유정의 봄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화딱지 나고 어찌 살아야 하는지도 몰라 일단 춤을 추지요…’ 라니..내용은 원작과 다르지 않지만 인물들이 갈등을 겪을 때 춤을 춘다. 한국 전통의 아리랑 춤도 아니고 그냥 막춤이다. 이게 오히려 난해했다. 나와 봉필이라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늘 당하는 나(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도 늘 앞서가는 갑(봉필). 갑의 멱살을 잡고 때릴 찰나에 간섭하지 않던 장모가 나서 귀를 잡고, 늘 내편인 것 같았던 점순이도 나선다. 그 사이 봉필이 정신을 차려 나를 후줄근하게 패고서는 다시 달랜다. 늘 그랬듯, 진심인 듯 진심 아닌 진심 같은 말로.. 10번을 갈아치운 봉필에게 그만한 경험이 없었을 리가 없다. 10번이나 갈아치울 동안 점순이 또한 그저 순진하지는 않았으리라 싶다. 10명이나 봐왔는데 그저 착하기만 한 이 멍청한 사내를 좋아했으려나? 오히려 봉필은 병을 주고 점순은 약을 주며 다시 일하게끔 하는 이 순환에 빠지게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어쨌건, 멍청하면 답이 없다.. 끊임없이 일하고 틈틈이 공부를 해도 늘 멍청한 ‘을’이 되어버리는 삶인 것 같아 마음이 참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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