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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남원정]
선인장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도마 위에 뿌리째 뽑혀 있었다. 마치 수술대 위에 있는 시체 같기도, 실험대 위에 놓인 실험물 같기도 했다. 전시를 보다 마주한 이 선인장은 가만히 보고 있기 불편할 만큼 적나라했다.
이소요 작가의 전시 <관상용 선인장 디자인>은 갤러리 175에서 5월 1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었다. 전시는 컬러접목선인장을 중심으로 한 인간과 생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였다. 전시는 여러 기사와 논문을 통해 인간 중심의 생물 사용을 관객에게 고발하고 실제 컬러접목선인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보여주면서 글 속에서 고발한 내용을 관객의 눈앞에 생생히 펼쳐놓았다.
인간은 이익 창출을 위해 인공적으로 생물을 이용해 왔고,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 방법은 더욱 다양해졌다. 컬러접목선인장을 만들기 위해 톱같이 생긴 칼로 선인장을 절단하고 전혀 낯선 선인장과 억지로 묶어놓는 접목 과정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선인장은 하나의 생명체가 아닌 우리의 상품이자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접목 후 선인장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접목이 갖는 단점이라 지적한 글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기사에서는 “달러를 부르는” “수출효자”라며 접목선인장의 생산을 장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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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이 작품은 ‘홍파원(紅波園)’이라는 글자와 함께 빨간 파도가 물결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컬러접목선인장이 세계에 진출해 하나의 빨간 파도를 만들길 바라는 접목선인장 개발자의 뜻을 담은 작품이다. (우) 작품을 옆에서 가까이 본 모습으로, 큰 물결이 수백 개의 선인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선인장의 목이 매달려있는 듯한 표현이 강한 충격을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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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갖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탓을 돌리지 않는다. 이 문제는 단순히 접목선인장을 판매한 사람이나 접목선인장을 개발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근원은 어쩌면 이익 창출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만든 ‘사회 체제’라는 더 큰 구조에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역시 선인장이다. 체제 속에 갇혀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선인장이다. 전시 관람 초반에는 ‘사물로서의 선인장’이 불쌍했지만 갈수록 선인장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중첩되면서 ‘선인장으로서의 우리’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선인장이 언제부터 이렇게 약한 존재가 되었을까. 선인장에 부탁한다. 가시를 더 크고 날카롭게 만들어달라고. 험악한 세계에 맞서,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게, 가시로 자기 방어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사막에서 꿋꿋이 버텨냈던 것처럼 사회에서도 꿋꿋이 버티자고 말하고 싶다, 선인장인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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