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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 ||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필명을 짓고 시인이자 노동운동가의 대변인의 길을 자처한 시인 박노해. 그는 대한민국의 시인, 사회주의혁명가이자 노동운동가, 평화운동가이다.
박노해는 1957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고흥군, 벌교읍에서 자랐다. 7세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의 운명은 격랑을 타게 된다. 형편이 어려워져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었고 일찍이 찾아온 불운과 고독이 그를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는 16세에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학비를 벌고 밤에는 선린상업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 했다. 섬유공장, 공사판, 마찌고바, 버스회사에서 일을 하며 노조결성과 지역노동자모임을 조직하는 등 본격적으로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 아래 야간통행금지가 실시되고 표현의 자유와 대통령 선출권, 노동 3권마저 유린되던 암흑의 시대였다. 그러던 중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당시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시집은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며 1980년대 우리 사회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노래했다. 그는 시 하나로 당시 ‘잊혀진 계급’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그는 군사 정부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7년여를 수배자로 쫓기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비밀리에 활동 하며 한국민주화운동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1991년 정보기관에 체포되며 처음 얼굴을 드러낸 그는 모진 고문 끝에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감옥 안에서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맞이한 그는 민주화 이후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묵묵히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카메라를 들고 세상으로 나갔다.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전 세계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두 발로 걸으며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으로 느낀 그 진실을 담아왔다.
다음은 종로구 부암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 지난 2014년 11월 21일부터 오는 3월 18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展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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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 ||
남미에서 유일하게 4천 년 넘는 고대 문명을 간직한 나라 페루. ‘태양의 후예’라는 뜻의 ‘잉카’ 제국의 심장을 품은 땅에서 오늘도 수천 년의 시간을 한 몸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척박한 자연 속에서도 태양 아래 살아 있음에 항상 감사하는 페루인들의 삶을 작가의 마음과 눈에 비친 페루의 풍경을 흑백사진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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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 ||
그들의 평화를 위해 길을 걷는 그이지만 그는 척박한 자연에서도 태양 아래 살아 있음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스페인 정복군에 의해 오랜 지혜와 전통의 대맥이 끊어져 나가고 식민 지배가 뿌려놓은 인종 차별과 가난이 짓눌러 오는 힘든 삶의 조건을 뚫고 자신을 지켜낸 페루인 들의 삶에 대한 자세에서 인간의 위엄을 느끼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유랑자의 길을 선택한 그이지만 박노해 그가 걷는 유랑의 길에는 그 ‘목적’이 뚜렷하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 즉 목적이 필요하다. 그의 삶은 거친 파도만큼이나 맹렬하고 불안정 해보이지만 박노해 그가 시를 쓰는 이유. 그가 걷고 있는 길의 목적 만큼에는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탄탄하다. 목표 없이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이 아닌 매순간을 정확한 목표를 마음에 새긴 채 카메라와 만년필을 들고 세상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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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 ||
박노해라는 작가를 통해 존경받는 이들의 공통점 한 가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 애정,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 그 길에 뜻이 있다면 그처럼 거친 파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길 두려워하지 않고 그 파도를 기꺼이 감내해 낼 것이다.
이는 지난 번 칼럼에서 다룬 인물 유방암 투병중에도 끝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한 린다 매카트니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박노해 시인은 성능 좋은 고가의 dslr 카메라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낡은 카메라와 줌 기능이 없는 흑백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한 적절한 세트장이나 멋진 자연경관이 펼쳐진 곳 대신 오로지 평화를 위해서, 전 세계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을 위해 지도에 없는 마을을 두 발로 걸으며 사진을 찍고 느끼는 그대로를 글로 써내려갔다. 그는 세상을 따라가기보다 세상이 그를 따라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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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해 페루 사진전<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시 박노해,’아니다’ | ||
대한민국의 노동가였던 그는 2015년 현재 평화를 위한 목적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주의혁명가, 노동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서의 매 순간의 목적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는 공통적이다. ‘행복’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법.’
실패한 혁명가로서 길을 잃었다는 시인. 우리에겐 미래가 아닌 희망이 필요하며 미래 준비가 아닌 지금 바로 우리 삶이 필요하다는. 온전한 지금의 나를 찾을 수 있도록 그는 시를 통해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철저하게 작품 뒤에 물러나 끊임없이 세상에 저항하는 그를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그 어떤 ‘목적’이지 않을까.
“산다는 건 살아 춤추며 가는 것. 어둠 속에서도 눈물 속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싸워가는 것.”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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