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박민영] ‘사랑’은 언제나 대중음악의 핵심주제였다. 대부분의 대중음악들이 사랑에 대해, 이별에 대해,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왔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사랑이란 주제가 대중음악 내에서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이란 감정이 대중음악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자.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중음악은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 같은 ‘사랑’이라고 손쉽게 묶어버려도 괜찮을까? 물론 그 음악들을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으로 구분해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변화해온 것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사랑’이지만 다 같은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의 방식도, 사랑의 표현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고 대중음악은 그 변화를 충실히 수용했다.
그 변화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나누어보자면, 90년대를 축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음악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굳이 90년대를 기점으로 잡은 것은 그 시기 사랑을 다룬 대중음악이 과도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80년대의 감정 ‘묻어두기’와 2000년대 이후의 ‘꺼내놓기’가 90년대의 대중음악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경향성을 보이는 7,80년대와 200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을 통해 사랑의 표현이 어떤 변화를 거쳐 왔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7,80년대의 감성, ‘묻어두기’
70년대와 80년대를 아울러 사랑에 대한 대중음악을 지배했던 방식은 ‘감정 묻어두기’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마음에 품어두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극대화시키는 감성은 ‘그리움’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취하는 행동은 ‘기다림’이 된다. 7,80년대의 사랑을 노래한 대중음악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이고 감성적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랑(혹은 이별)의 방식이 그리움과 기다림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표현하는 대신 마음 한 구석에 쌓아놓은 사랑은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사랑의 대상에게 전달되지 못한 감정들은 넘칠 듯 찰랑거리다 다른 곳에 부어졌다. 그 중의 하나가 ‘대중음악’이었고, 대중음악을 듣는 이들은 쉽게 그 감성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들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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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헌 4집 <가을비우산속> 앨범 재킷 | ||
물론 7,80년대의 대중음악을 모두 이러한 틀에 맞춰 해석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지만, 당시에 큰 사랑을 받았던 음악들을 살펴보면 그 경향성을 어느 정도 확인해볼 수 있다. 78년에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과 ‘방송 가요대상 최고가수상’을 받기도 했던 최헌은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비 우산 속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 흐름 속에 나 혼자서 잊어야지.’ 그의 노래 <가을비 우산 속> 가사의 일부다. 이 가사의 내용에서 쉽게 ‘묻어두기’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노래는 ‘그리움’을 바탕에 두고 ‘나 혼자’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딘가에 꺼내놓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묻어’둔다는 것이다.
역시 ‘10대 가수상’을 받았던 이광조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저 스쳐 지나갈 바람이라면 모르는 타인들처럼 아무 말 말고 가세요. 잊으려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더욱 하겠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을 난 잊을 테요.’ 표현할 수 없기에 ‘당신’과 가까워지는 것이 어렵다. 그렇게 다가온 이별을 감당하는 방식은, 감정을 묻어두고 혼자 끌어안는 방식이다. 이 시기의 대중가요에서 ‘그리움’이란 단어는 거의 필수적이다. 그리움은 많은 것을 꺼내놓지 못한 잔여감정의 발화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꺼내놓기’
과도기인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오면 사랑의 방식이 변화한다. 더 이상 감정을 저 밑바닥에 묻어두지 않는다. 오랜 기간 묻어놓았으니, 이제는 꺼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사랑의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에 대중음악이 전하는 사랑의 표현도 변했다. 표현은 솔직해지고 직설적이 됐다.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숨겨놓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전에 유지되었던 대중음악 가사의 서정성이 상당부분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감정이 내면에 넘치기 전에 정확히 대상을 찾아 표현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굴려보고 느끼는 것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대상에게 확실히 ‘전달’할까 하는 문제다. 내(혹은 너)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너에게 말하고 싶은지 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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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데일리안 | ||
2007년에 데뷔해 여러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원더걸스’의 <So Hot>과 <Nobody>에서 ‘꺼내놓기’를 확인해볼 수 있다. <So Hot>의 가사는 간단하고 직설적이다. ‘왜 자꾸 쳐다보니 왜 내가 그렇게 예쁘니. (…) 난 너무 예뻐요. I’m so Fine. 난 너무 매력 있어.’ 확실한 자기 어필의 방식이다. 다른 노래 <Nobody>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난 다른 사람은 싫어. 니가 아니면 싫어.’ 자신을 밀어내며 이별을 말하는 남자친구에게 정확하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너만 있으면 돼. 더 바랄 게 없는데 누굴 만나서 행복하란 거야. 난 널 떠나서 행복할 수 없어.’ 확실한 방식의 변화가 보이는 지점이다. 혼자 감정을 삭이거나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직설적인 표현을 꺼내놓는다. 숨겨놓지 않고 드러내는 것. 이런 방식이 지금 세대가 표현하는 사랑의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사랑 방식은 꾸준히 변해왔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또 다시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대중음악이 노래하는 사랑과 이별 역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묻어놓기’든 ‘꺼내놓기’든, 혹은 그 중간의 어느 지점이든, 완전히 새로운 형태든 간에 그 어떤 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랑으로 관계 맺는 방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시대에 따라 사랑과 이별을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음악이 충실히 포착해서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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