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이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국내 ‘서예교습소 및 서예학원’은 동네 태권도 도장만큼이나, 넘쳐났다. 현재, 동네에서 서예를 배울만한 장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예부터 서예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자, 기본기였다.
서예는 영어로 Chinese calligraphy 라고 불리는데, ‘중국 손글씨’ 정도로 해석 될 수 있겠다. 과거 중화권이라 불린, 한자문화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전한 조형예술이다. 특히, 한중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서예의 역사는, 중국 주나라의 갑골문을 기반으로 한 전서篆書를 시작으로 본다. 글자 형태가 예술, 즉 개인의 기교이자 능력이며, 미적으로 평가 받은 시기가, 아무리 늦게 잡아도, 기원전 시대인 것이다. 전서를 시작으로, 예隸, 해楷, 행行, 초草 로 구분되는 5체가 체계적으로 조형 미술로 자리 잡았다. 서예는 글쓴이의 성품과 인격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기도 했으며, 아름답게 쓰는 이는 당대 최고 명사名士 이자 학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글씨를 예쁘게, 잘 쓰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받으며, 문헌에 기록되고, 훌륭한 법첩法帖이 소장용 보물이 되기까지, 예부터 ‘글씨 자체’를 예술로 보는 지역은 한정적이었다.
두말 할 것 없이, ‘종주국’ 중국은 채옹蔡邕, 왕희지王羲之, 구양순歐陽詢 등 유명 서예가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가장 교류가 많았던, 한국도 걸출한 서예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삼국시대 김생金生 과 최치원崔致遠 등을 시작으로, 조선시대에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을 필두로, ‘떡 썰기 일화’로 유명한 석봉石峯 한호韓濩 와 고금을 통틀어 가장 한국적이며, 개성적인 서체를 완성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 큰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것은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비견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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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희지_쾌설시청첩_대만 국립고궁박물원> | ||
현대에 와서, 중국과 일본은 한문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번체와 간체자를 통해 근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서예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한글이라는 독자적인 문자를 통해, 발전하여, 한자어는 존재하나, 한문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완벽히 가능하다. 때문에, 한문을 배우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과 공력이 소비되기 때문에, 사장되고 있다. 한글 손글씨, 즉 캘리그라피의 성장 또한, 한 몫 할 것이다. 또한, 현대 서예는 기타 현대 예술작품에 비해, 수요와 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새롭게 배우려하지 않고 있다. 현역 작가의 연령대를 보아도, 매우 높기 때문에, 세련되지 못한 예술로 치부되기 쉽다. 발전은커녕, 거의 실전失傳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장되고 있다. 혹자는, 초서草書 라는, 서예를 깊지 않은 사람은 알아보기 힘든, 흘림체를 구사 할 수 있는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중국 서예가에 기대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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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사 김정희_추사체 예서_간송미술문화재단> | ||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한문의 구조와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예의 기교로 한글 캘리그라피를 구사 할 수 있기 때문에, 서예 교습소가 존속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장으로서 조합되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글 캘리그라피를 구사하는 사람은 서예를 구사 할 수 없다. 대중 역시,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서예보다는, 친숙한 캘리그라피가 접하기도 쉽다. 캘리그라피 교습소도 우후죽순지세로 일어나고 있으며, 즐기는 수요층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사실 캘리그라피와 서예는 같은 말이다. 한글과 한문으로 두가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캘리그라피는 현대 수많은 광고와 디자인에 사용되며,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서예는 고지식하고, 오래된 느낌을 준다. 게다가 배운다면, ‘아직도 그런 걸 배우냐’는 식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예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반도 역사와 함께한 만큼, 엄청난 노하우의 축적과,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또한, 기성서예가 역시, 걸출하고,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작가도 많다. 때문에, 실제로 배운다면 어렵지 않게 기교를 터득할 수 있다. 교육 시스템도 오래되었다는 평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후기지수後起之秀 가 부족하다. 작가 역시 전반적으로 너무 고령화 되어있기 때문에, 이제는 존립이 위험할 정도이다. 때문에 현대적인 발전도 더디다.
동양화에 서구기법을 융합해 동양화는 발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 미술계에서 동양화의 지분은 아직, 매우 낮다. 전통 수묵보다는 정통 유화가 더욱 강세이며, 서예보다는 캘리그라피가 더욱 대중적이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단순히 ‘애국심으로 우리 문화를 사랑하자’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서예나 수묵만으로 그려낸 그림이 개성적일 수 있을 정도로, 사장되고, 비대칭으로 발전되고 있다. 기성작가들이 고령화된 우리의 서예계, 역시, ‘현대서화’에는 매우 보수적인 반응이다. 각종 전람회와 서예대전에서도 전통을 고수하고자 한다. 서예는 역사 속에서 수백년, 몇천년간 새로운 서체書體 를 탄생시켰지만, ‘신체新體’ 를 수용하기에는 언제나 보수적이다. 작가와 협회, 대중 모두 새로운 시도와 개방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전통 미술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제한적으로 관람 할 수 있는 반면, 서양 작가의 미술은 아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다시금 돌아보아야 할 때는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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