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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낙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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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d-Woodlouse-Fish>
, 1940년, 34×53.5cm ©Paul Klee / <마을>, 1956년, 24x33cm ©장욱진미술문화재단

[디아티스트매거진=황제웅]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이 있다. 기교가 너무 훌륭하면 도리어 거칠고 치졸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근현대 미술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파울 클레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나, 장욱진의 정겨운 그림이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다소 불경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보통사람의 눈에는 기교를 한껏 살린 잘 그린 그림이 훌륭한 그림으로 비춰지는 것도 사실이다.

   
▲ <鸟的草图>, 2003년, 180x100cm ©叶永青

  2010년 중국옥션에서 예용칭(叶永青)의 <새>라는 작품이 25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5000만원에 낙찰됐다. 과연 적절한 가격이냐를 두고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나도 돈 벌 수 있겠다’, ‘요즘 미술은 사기다’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림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런 캔버스 위에 새가 한 마리가 덩그러니 있다. 비뚤비뚤한 선으로 그려진 새는 두말할 것 없이 못생겼다. 이름표가 달려있지 않다면, 세밀한 묘사는커녕 배경도 색도 없는 이 그림을 대가의 작품으로 알아볼 수 있을까?

  장난삼아 쓱쓱 그린 듯한 그림이지만, 사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그려진 것이다. 조그만 노트에 간단히 드로잉 한 후, 그것을 빔 프로젝터로 캔버스에 투사하여 확대시킨다. 확대된 드로잉 위에 얇고 삐죽한 점을 여러 겹으로 겹쳐 윤곽선을 채워나간다. 좌우 1m가 넘는 작품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이는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유리조각처럼 부서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한 획 한 획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 어린아이 낙서처럼 보이다니, 복잡한 과정과 간단한 결과의 극명한 대비는 감상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작가는 1999년부터 새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닌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반성이자, 자신의 기질에 부합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일찍이 개념예술을 포용했던 그는 정신수양을 중시하는 중국 전통 문인화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온 새를 소재로 택했다. 수십 년간 철새처럼 타국을 떠돌아다니던 그가 새라는 소재에 끌렸음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졸한 새 그림으로 인지도를 쌓은 작가이지만, 정작 그는 새 시리즈에서 중요한건 새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밀한 필법으로 유치한 형상을 빚어내고, 몇 분이면 그릴법한 낙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 그림은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모순은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이를 통해 감상자로부터 질문을 이끌어 낸다. 무엇이 현대적인 것이고 무엇이 전통적인 것인가? 무엇이 숭고한 예술이고 무엇이 유치한 낙서인가?
 

  새 시리즈는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고자 한 것도 아니고, 전통에 대한 계승과 발전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표현형식에 대한 감상과 사유이다. 프레임 속의 새 이미지는 새 자체를 그린 것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형상에 가깝다. 새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림은 작가가 던지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현대미술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그리느냐가 중요하다. 현대미술은 작품이 아닌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용칭의 새 그림은 감상자 스스로가 낡은 사고를 전복시키고 예술에 도전하게끔 한다. 또한 새 그림이 야기한 논란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의 질문을 유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술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췄다. 이런 점에서 예용칭의 새 그림은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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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웅
hjw1070@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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