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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담은 그림

양소현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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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 – 월하정인 18c 28.2 x 35.6cm 지본채색 ⓒ간송미술관

月沈沈夜三更 달은 기울어 밤깊은 삼경인데

​兩人心事兩人知 두사람의 마음은 두사람만 알겠지

​​[디아티스트 매거진=양소현]  차가운 새벽 안개가 고요히 드리울때, 담벼락 너머로 은근한 밀회가 엿보인다. 혹여 누구에게 들킬라 걸음걸음이 조심스럽다. 등잔을 든 사내는 앞서 걸으면서 여인의 얼굴을 살피고 있고, 두루마기 속으로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부끄러운 듯 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화가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은밀한 뒷골목을 기막히게 포착해낸 화인이다. 관습에만 얽매여있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직접 조선의 거리를 거닐며 애달픈 여인의 마음과 그 속에 담겨있는 연정을 자신의 유려한 선묘로 그려내었다. 최고의 풍속화가라 뽑히는 김홍도와 마찬가지로 조선 곳곳의 세시풍속을 그렸으나, 김홍도가 서민들의 건강한 생활상을 담는 것에 주력했다면, 신윤복은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그리는 것에 능했다.

​ 아무도 모르는 듯 두 사람은 둘만의 밀회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세상 어디를 가도 피할수 없는 두가지 눈이 있으니, 바로 까마득한 밤을 비추는 저 초승달과, 호랑이보다 무서운 화인의 눈이다. 혜원 신윤복은 어쩌면 하룻밤 나들이로 끝났을 법한 연인의 만남을 수 세기에 걸쳐 두고 두고 회자 되게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또다른 설렘을 선사해준다.​ 그림 속에 고요하게 드리운 밤 안개는 보는 이의 상상력에 아득함을 더한다.

   
▲ 신윤복 – 계변가화 18c 28.2 x 35.6 cm 지본채색 ⓒ간송미술관

  두번째 그림은 신윤복의 계변가화이다. 남녀유별한 조선시대에 여인들만 가득한 빨래터에 왠 남정네라니. 하지만 여인들은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가운데의 여인은 사내가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을 아는 것인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흘깃거리는 눈길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넓게 벌어진 어깨, 다부진 체격, 뭇 여인들의 마음을 쉽게 훔칠법한 사내가 자신의 눈 앞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를 만지는 여인 뿐만 아니라 나머지 여인들도 빨랫감을 보고 있지만 그 속은 모를 일이다. 늙은 노파 마저도 관심없는 듯 자신의 빨랫감을 털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여인의 모습을 시샘하는 듯 입을 삐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계변가화는 시냇물로 원근감을 조성하면서 한가운데로 남녀의 시선이 맞부닥치니 화면 안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렇듯 신윤복은 화가의 눈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동시에 화폭 속 인물들의 눈빛마저 놓치지 않고 있으니 가히 조선 제일의 풍속화가라 할만하다. 천마디 말보다 때로는 한번의 눈빛이 더 강렬하다는 말은 이럴때 쓰이는 것일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의 속 깊은 감정을 전달해 주는 그림의 힘 또한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림 속 계곡의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초여름의 맑고 투명한 설레임이 여기까지 전해오는 듯 하다.

   

▲ 작자미상-서생과처녀 19c 25.1*37.3cm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해 저문 가을밤,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내는 달빛을 벗삼아 서책을 읽고, 수려한 그의 모습을 한 처녀가 엿보고 있다. 이미 모두가 잠들었을 법한 시간인데, 웬 여인이 아닌 밤중에 짝사랑하는 상대의 문앞에 서성이며 어찌할 바 모른다. 혹여 문소리라도 날까 애써 다잡고 있는 손길이 애처롭다. 이 그림의 작가는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윤복이 풍속화가로 온 조선을 들썩이게 한 18c 무렵으로 추정된다. 화면 가득한 애틋함은 신윤복과 가히 견줄만 하고, 사랑하는 이에 대한 한 사람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그림이다.

 남녀가 끌어안고 서로를 미친듯이 갈구하는 모습도, 적나라한 애정표현이 들어간 것도 아니다. 단지 여인의 꿈틀거리는 눈썹과, 눈길과, 손길만으로도 설익지만 절절한 짝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귀뚜라미가 우는 청명한 가을밤, 한 여인의 마음은 시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에게 아련한 감정을 선사해준다. 누군가는 ‘그림은 그리움이다’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보이는것 이면의 절절한 그리움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히 명작이라 불리울 만한 그림일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국경도, 나이도, 신분도 초월하여 존재한다고 한다. 설렘이란 말이, 연애라는 말이 어쩌면 더할나위 없이 가벼워진 지금, 우리는 수 백년도 지난 옛 그림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애달픔을 발견하게 된다. 시대는 변하고, 생활 방식 또한 놀라우리만치 변해왔지만, 사람의 심연 속 본질적인 사랑이란 감정은 변하지 않았음 또한 느끼게 한다. 혹한으로 추웠던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는 요즘이다. 봄이 시작 될 무렵 당신에겐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설렘을 선사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아마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코 앞에 다가온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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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현 기자
thgus1231@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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