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5월은 정치적인 달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조기대선 혹은 장미대선으로 불렸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선 두 가지 이유는 근래에 들어서 생긴 이유이다. 더 앞선 이유이자 대중들이 5월을 정치적인 달로 기억하는 이유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고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영화계는 우리의 쟁취였던 쟁취의 역사였던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감당해 영화의 소재로 삼았고 영화를 만들어내 대중들로 하여금 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게 하는 재교육 기능까지 해냈다. 5월을 맞이하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아 효과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대한민국 영화사 다섯 사례를 다시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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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잎’ 스틸컷 | ||
꽃잎
영화 ‘꽃잎’의 단편적인 이미지는 아마 가수이자 배우인 이정현의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정말 단편적인 이미지다. 더 속을 들여다보고 ‘꽃잎’을 감상해본다면 ‘꽃잎’이라는 영화가 가지는 섬뜩함, 무게감, 의미 등을 실감할 수 있다. 이정현은 미친 소녀 역을 영화 내내 여실히 연기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감당하기 힘든 연기를 보여줬다. 그 소녀가 미쳐버린 이유를 ‘꽃잎’은 상세히 영화에서 설명한다. 그렇다 소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꽃잎’에서 나타나는 소녀의 광기는 그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이 광기로 섬뜩하리 섬뜩한 광기로 영화는 채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그 광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다 보고난 뒤에야 ‘꽃잎’이 가지는 존재가치를 깨닫게 된다. 차마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기 전 ‘꽃잎’은 이미 앞서서 민주화운동을 먼저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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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하사탕’ 스틸컷 | ||
박하사탕
‘박하사탕’은 독특한 전개구조를 가지고 있다. 충격적이면서 대한민국 영화사 명장면으로 꼽히는, 철도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며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의 절규 장면이 영화의 시작부에 배치했다. 그러면서 대중들은 ‘박하사탕’을 지켜보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영호는 자살을 택하려 했을까?’ 그 끝에는 1980년 5월이었다. 긴급출동으로 광주에 주둔하게 된 군인 영호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광주에서 여고생을 죽이게 됐고 그 시점부터 영호는 영혼을 잃으며 살아가게 됐다. 영화에서 동기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 동기가 마지막에 밝혀지게 되며 그 동기가 결국 민주화운동의 일부를 인용하며 표현한 그 표현은 이창동 감독 특유의 예술법이 대중들에게 의외의 타격감으로 작용됐음을 보여줬다. 참 곱씹을수록 다시 보게 되는 영화 ‘박하사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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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휴가’ 스틸컷 | ||
화려한 휴가
어느 영역에서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다는 것은 예술에 있어 크나큰 영광이고 업적이다. 대한민국 영화사에 있어 민주화운동을 가장 정확히 담고 가장 많이 담고 가장 잘 담은 영화를 어떤 작품으로 고를 수 있을까? ‘화려한 휴가’가 그 후보군에 당당히 오를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영화 안에서 절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발발 주체나 그 비회에 대해서 캐내려하지 않는다. 그저 그 참혹한 학살 속에서 드라마를 녹였고 그 다라마도 어렵지 않은 드라마를 넣어 쉽게 대중들로 하여금 다가올 수 있게 했다. 어쩌면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 가장 쉬운 영화일 것이다. 그렇기에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에 가장 앞선 영화로 꼽힐 수 있다. 그 시절 있었을 법한 쉬운 이야기 그러나 그 쉬운 이야기도 비껴갈 수 없었던 이유,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였기에 결국 학살의 대상이 되고만 이 전개 및 결과를 해치지 않고 영화에 잘 담았다. 이 자체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의 의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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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영동1985’ 스틸컷 | ||
남영동1985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이미지를 가만히 떠올려보자. 최루탄이나 실사격에 온몸을 내던지며 거리의 피가 돼버린 그 형상들. 가장 먼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차자 보지 못 했던 실상이 있었다. 군부정권은 대표격 학생운동의 인물들을 무단으로 잡아 어둠의 장소로 끌고 간 뒤 무차별적인 고문을 가했다. 이 가려진 실상을 정지영 감독은 영화화했다. 그저 고문장면만을 영화로 담은 것이 아니다. 잔인한 고문장면을 연출하면서도 ‘남영동1985’의 주인공 김종태는 꺾이지 않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이 가느다랗지만 질긴 끈을 김종태의 말로써 행동으로써 정지영 감독은 표현했고 결국 또 하나의 극단적인 영화 ‘남영동1985’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민주국가를 꿈꾸던 한 열사의 의지 그리고 그 당시 행해졌던 잔인 고민의 실태를 영화로써 느끼고 싶다면 ‘남영동1985’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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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년’ 스틸컷 | ||
26년
사실 ‘26년’은 상당히 많이 아쉬운 영화다. 만화가 강풀의 대표작 ‘26년’을 영화화했지만 원작 웹툰의 완성도에 상당부분 충족하지 못 했다. 인물 하나하나가 1980년 5월의 광주에 연관대있는 그런 상세한 연출을 차마 담아내지도 못 했으며 원작 웹툰과는 괴리감 있는 정서를 보이고 말아 많은 대중들에게 외면과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영화 ‘26년’은 의미가 있다. 이유는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이라 예상되어지는 그 사람에 대한 단죄를 그나마 영화로써 해갈시켜줬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 사람이 사죄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을 암살하려는 계획도 성공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사람에 대한 단죄를 우리는 계속해서 요구해야하며 그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를 웹툰이 아닌 다른 예술매체로 말했다. 최소한의 주제,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한 존중은 담았던 영화 ‘26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