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ambushed III, 2013 ©신건우 | ||
[디아티스트매거진=고대영]
한동안 글을 멀리 했다. 글쟁이에 대한 숙명을 놓아버린 건 아니지만 잠시 동안 먹고 살기위한 생존 활동을 하느라 그랬다. 사회에 들어가 일을 배우고, 다시 나와서 남들처럼 그럴싸한 명함을 박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얻은 것이라곤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궁금증뿐이었다. 요즘은 노력이란 단어가 생존, 버팀, 그리고 제거 등의 단어와 혼용되곤 한다. 노력의 이유와 그 주체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그저 달릴 뿐이다. 다행히 북서울미술관의 1층과 2층에서 진행 중인 전시는 적어도 이러한 인간과 사회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가진 모습이었다. 두 개의 전시를 다녀왔고 수십 개의 작품을 보고 왔지만 지친 우리를 달래줄 만한 작품 몇 가지만 얘기하려 한다. 일종의 이번 전시에 대한 나의 단상이다.
![]() |
||
| ▲ 동두천, 2005 ©송상희 | ||
동두천은 본인의 군 생활 범위에 속하는 곳이었다. 그러기에 사진 속 풍경이 낯설지만은 않다. 군인과 여성. 요즘은 기지 이전 등의 문제로 미군들의 행적이 뜸한 동두천이지만 한국 전쟁 이후 미군들과 유흥여성의 집결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작가는 여성의 눈과 입을 가림으로써 외압과 침묵 강요 등에 갈 길 잃은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사진 속 배경이다. ‘클라우드 나인’과 ‘파라다이스’ 문구가 여성과 매우 대치되는 모습이다. 여성의 샛노란 원피스 역시 마찬가지다. 갈 길 잃은 여성의 뒤엔 한 미군 병사가 하이에나 마냥 벽에 기대어 서있다. 그늘에 가려진 여유와 대비되는 따가운 햇볕 속 불안감이다.
이 작품을 보니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 생각났다. 얼마 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미군 위안부 여성 소식이 그것이다. 당시 유흥여성을 위안부라는 명명 하에 그들의 성병까지 집단관리에 나섰던 한국 정부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와 공소시효가 지났음을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 정부와 10억 엔에 합의하던 모습과 이질적이지 않았다.
과거의 과오로 희생된 미군 위안부의 아픔을 이렇게 평가절하 하는 정부에게 일본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그들은 언제나 어두운 세상의 약자였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강자로 존재해보지 못한 그들을 따사로운 한낮의 사진으로 대변하는 작가 송상희였다.
![]() |
||
| ▲ 레벨 테이블, 2012 ©한경우 | ||
장 보드리야르의 책 시뮬라시옹의 첫 페이지엔 이러한 문구가 나온다. “난 걸프전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TV와 신문으로만 접한 사실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과거 우리의 삶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뉴스리터러시라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 우리사회의 뉴스 문맹률은 꽤나 높은 편이다. 가짜뉴스가 그렇고 편향적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렇다.
작가는 일상적이지 않은, 휘어있는 테이블을 놓고 화면으로 비춘다. 다만 화면 앞에는 자석이 붙어있어 화면을 조작하고 있다. 마치 테이블을 멀쩡하게 보이도록 말이다. 화면 앞 우리들은 원래 그랬듯, 늘 생각했듯 멀쩡한 테이블을 보며 안도하고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어떠한가. 사진 속처럼 휘어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화면이 우리를 왜곡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고정된 사고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일지 모른다. 테이블은 평평해야 맞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눈에 익숙한 저 화면은 진짜라는 주장, 바로 우리의 사고에서 나온 발상인 것이다. 후에 저 화면이 사라지고 실재하는 대상을 마주했을 때 다가올 후폭풍은 어떨지 감이 오질 않는다. 우리의 사회가 저렇다.
![]() |
||
| ▲ SEOUL #113 ©백승우 | ||
작가는 대림상가 등 과거 산업화 시절 건설된 건물들의 모습을 통해 산업화의 시효가 다 되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전히 온기를 불어넣는 인간만의 역할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작품설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굳이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필자가 느끼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였다. 아마 평소에 충무로나 종로 3가 등을 거닐다 한번쯤은 느껴봤을 단상일 것이다. 이렇게 낡은 건물 안에 여전히 미싱이 돌아가는구나, 머릿속으로 떠올려봄직한 작품들이다. 단순한 추억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이를 산업화의 종결과 인간의 온기로 엮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좀 더 의지적인 메시지를 주기 충분해 보였다.
►
서로 다른 두 전시 속 작품들이지만, 어지러운 시국 속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펜을 잡아보았다. 이번 북서울미술관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어두움으로 결론짓지 않고 그 안에서 또 하나의 톱니바퀴를 건네주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다소 원론적인 멘트일지 몰라도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시는 3월까지 이어진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