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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서로의 여정, 영화 <가려진 시간>

   
▲ 영화 <가려진 시간> 포스터

 [THE ARTIST매거진=민소영]

 “믿고 싶은 대로만 믿지 마세요.” 죽은 아내의 딸 수린(신은수)이 진실을 말해도 본인은 믿지 못하면서, 이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오간다는 것을 들은 새아빠(김희원)가 이웃들 앞에서 내뱉은 말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아이의 말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돌린 어른이 할 수 있는 말이었던가. 몽환적인 판타지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장르적 범위 밖의 깊이 있는 주제를 끌어온다. 아이의 말을 믿었다가 파국을 치닫는 영화가 있었다면, 이번엔 타임슬립으로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믿지 못해 벌어지는 일종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비극이라기엔 아이들의 믿음과 우정,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말이다.

   
▲ 영화 <가려진 시간> 스틸컷

 엄마를 여의고 새아빠와 단둘이 남고서부터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고 싶다던 수린. 홀로 있는 그 아이 앞에 성민(이효제)이 나타나면서부터 무뚝뚝해 보이던 수린도 웃기 시작한다. “될 거라는 강한 믿음. 그게 제일 중요해.” 마냥 밝아만 보이던 성민도 ‘넌 어디에 내놓아도 잘 살수 있다’며 보육원 앞에서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던 아이였다. 수린과 성민이 서로 공유하는 아픔은 하나둘 아름다운 영상미로 치유된다. 특히나 수린과 그녀의 초상을 비누 조각으로 새기는 성민의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의 클로즈업은 보는 이도 순간 숨을 멈추게 한다.

   
▲ 영화 <가려진 시간> 스틸컷

 클로즈업 씬들과 예상치 못한 앵글의 장면들도 물론 사랑스럽지만, 아이들이 발견한 동굴 속 알이 깨진 이후 등장하는 ‘시간이 멈춘 세상’은 기대 이상의 영상미를 뽐낸다. 시간이 멈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바람이 불지 않는 조건에서 수차례 촬영을 진행하고, 엑스트라 한 명 한 명 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공들였다고 한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느껴지는 장면들만 있었다면 참 좋았겠건만, 멈춘 시간 속 구하지 못해 죽은 재욱(정우진)을 바닷가 앞에 묻는 장면은 필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숨을 거둔 재욱의 시간이 멈춘 관계로 그의 몸은 가볍게 들려지고, 본래 희망을 상징해야 할 풍선의 형태로 성민과 태식(김동현)에 의해 운반된다. 아이들의 손에 너무나도 가볍게 들려진 슬픔의 무게를 담대히 표현한 엄태화 감독의 연출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되는 순간이다.

   
▲ 영화 <가려진 시간> 스틸컷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질타를 받거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버린 수린과 성민을 통해 시사하는 것이 비단 고통을 공유하는 연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 속 어른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상처받고 홀로 견뎌온 아이들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분명 강동원의 잘생긴 얼굴로 설렘을 얻으리라 예상하고 들어간 영화관이었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들이 포진되어 혹자는 ‘판타지 드라마 장르에서 무언가 벗어난 느낌이다’ 라고 평하는 것을 들었다. 장르적 기준에서만 본다면 영화 <늑대소년>과 유사한 느낌을 기대하고 관람을 결정하는 관객들이 다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수린과 성민이 만들어가는 애정 이상의 메세지가 분위기를 조성해간다.

   
▲ 영화 <가려진 시간> 스틸컷

 특히나 홀로 시간을 거슬러 어른이 되어버린 성민은 수린 근처의 어른들의 단점을 더 부각시키며, 상대의 안녕을 위한다면 짊어져야 할 시간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의 고독을 이겨낼 만큼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물질적 표현만이 난무한 현실이 무색해진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을 꼭 짚어내는 감성들은 그 이전 봐왔던 영화들과는 새삼 다른 독특함으로 다가온다.

   
▲ 영화 <가려진 시간> 스틸컷

 영화 속 수린이 써 내려간 시의 내용은 두 차례 등장한다. 같은 제목의 같은 내용 같지만, 처음과 달라진 문구들을 보면서 또 한 번 눈물샘을 자극한다. 순식간에 홀로 어른이 된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수린 밖에 없던 성민과 진실을 말해 질타 받고, 거짓말로 자신을 방어해야만 했던 수린에게도 성민 밖에 없었음을 떠올린다면, 이것만큼 비극적인 드라마가 있을까. 함께했던 순간을 기록한 설렘의 시가 이제는 꿈에서만 그리는 순간이 되면서, 거짓으로 종용되던 어른들의 세계 속 상처받은 마음들이 떠올랐다. “어른이라는 건 언제 되는 걸까?” 어쩌면 가려진 것은 시간뿐만 아닌 어른이 되지 못한 모든 어른아이일 것이다. 믿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거짓말과 의심으로 깨어져 산산조각 난 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과연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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