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유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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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장 결혼 계약을 성사 중인 파비오와 로나 | ||
인간 실격
최근, 유명 시인들의 성추문 행위가 잇따라 고발되면서, 한국 문단 내에 깊게 박혀있던 썩은 뿌리가 드러나고 있다. 이는 이미 문단 내에서 ‘문학’, 어쩌면 ‘권위’라는 이름으로,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행위들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우리는 이러한 행위들을 그 집단과 사회의 분위기, 즉, 거시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이에 동조하는, 또는 제 행동을 합리화하는 개인의 문제는 차치해버릴 수 있는가?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개별적 주체성을 가지는 데에서 짐승들과 구별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 채, 그저 다른 개체들을 따라 내달린다면, 이는 진정 인간이라 할 수 없다. 위의 시인들은, 시를 짓는 인간이 아닌, 시를 짖는 짐승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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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나와 클로디의 교감 | ||
차갑게 불리는 이름, 로나
극 초반, 로나 역시 위장 결혼이라는 수단을 통해, 벨기에 사회에 유입된 난민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등, 부조리한 사회에 동조하는 듯 보인다. 그저 침묵하며, 파비오를 중심으로 발생되는 범죄 행위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로나와 위 시인들과의 차이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녀는 사태들에 대해 동참하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니며 내재적으로는 진실한 관계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차가움으로 지배되는 이미지 속에서 로나에게는 작디작은 따뜻함이 존재했다. 클로디는 이러한 조그마한 진실성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불리던 로나의 이름을 진심으로 부른다. ‘돈’ 이라는 물질적 가치의 필요에 의해 로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 로나 그 자체를 필요로 한다. 클로디는 마냥 내달리는 짐승들의 무리에서 진심으로써 로나를 끌어올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나와 클로디의 성관계 장면은 전혀 성적인 메타포를 지니지 않는다. 이는 진심이 결핍된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실된 교감이다.
차가움 속의 따뜻함 찾기
로나는 클로디와 그의 죽음을 기점으로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 점차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즉, 그녀가 지녔던 따뜻함을 인식하고 차가움으로부터의 탈피가 이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따뜻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는 상상임신, 또는 잉태된 아기는 부조리하게 반복되던 삶의 메커니즘을 깨는 수단이자, 발생된 자의식의 상징적 부산물이다. 그리고 이는 곧 파비오의 거래를 직접 무산시키고, 그의 부하를 돌로 내려찍고 그로부터 탈출하는 행위 등,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재탄생을 위한 일련의 행동들로 표출된다. 특히, 차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로나는 자신의 가방을 버린 채 차로부터 달아나는데, 이는 그녀가 물질적 세계에서 벗어나 독립적 존재로 발돋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자신의 따뜻함을 인지한 로나는 그 냉랭한 대열로부터 이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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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으로부터 탈출한 로나 | ||
인간으로의 부화
그녀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영화 내내, 침묵하던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탈출 후에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와 대화를 하거나 혼잣말로 이야기한다. 이익을 위해 올바르지 못함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침묵의 사회에 대해, 그녀는 침묵을 깨고 오두막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녀가 꼭꼭 걸어 잠근 오두막은 그녀와 그 사회의 분리이자, 그녀가 진정한 인간으로의 부화를 행하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모두가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인간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생 직후에서부터, 우리는 인간성이 결여된 거대한 알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알이라는 틀이 잘못됨을 자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 알의 존재를 망각하고 이를 수용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구조를 즐기기도 한다. 그 알을 깨부수고 나올 누군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로나의 부화는 물리적 출생이 아닌, 알을 깨고 나오는 인간성의 실현을 의미한다. 오두막에서, 그녀는 진실한 인간으로의 부화를 수행한다.
시를 읇는 호랑이
보통 어떠한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회적인 문제일 것이다, 또는 환경의 문제일 것이다, 등 외부적인 문제로 이를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의 인간성을 너무나도 굳게 믿은 나머지, 인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라는 일종의 합리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 사회가 부조리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구성원 개개인들이다. 개개인의 잘못을 용인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의 문제가 우선하여 발생하였으므로, 그로부터 개인의 잘못이 발생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결코, 사회와 개인의 잘못을 연결지을 수 없다. 적어도 개별적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야한다. 자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그저 시를 읇는 호랑이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