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민칼럼니스트]
무엇을 만드는가 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만드는가 아닐까? 아무리 좋은 소재와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완성도가 좋지 못하다면 흔히 말하는 B급 오락영화보다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좋은 B급 오락영화는 웬만한 유의미한 주제를 다룬 영화보다 좋은 영화가 된다는 말이다. 10월 5일 개봉한 <맨 인 더 다크>가 딱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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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인더다크> 국내포스터 | ||
10대 빈집 털이범 록키와 알렉스, 머니는 마지막 한 탕을 위해 퇴역 군인인 장님 노인의 집을 털기로 한다. 노인이 잠든 밤에 침입해 돈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실의 자물쇠를 딴 순간 노인은 깨어나게 되고, 그를 위협하던 머니는 예상치 못한 노인의 전투력에 당하게 된다. 되려 위기에 처한 록키와 알렉스. 노인은 침입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집을 암전상황으로 만들고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과연 록키와 알렉스는 노인의 집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영화의 소재나 주제는 딱히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흔한 슬래셔 무비의 기본 틀에 상대방이 장님이라는 재미있는 설정 정도를 추가해놓았을 뿐이다. 스토리만 보면 기존 슬래셔 무비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알찬 연출은 이 영화를 끝내주는 오락영화로 만들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영화 속에 부여한 모든 요소들을 알차게 사용한다. 어느 설정 하나, 쇼트 하나 허투루 쓰인 것 없이 모든 요소들이 한바탕의 오락을 위해 충실히 봉사하며 영화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물들의 배경은 주요 사건이 타당성을 얻는 데 이용되거나 오락을 위한 원료로 사용될 뿐, 불필요한 감정선을 위해 영화의 리듬을 늘어뜨리는 일은 없다. 쇼트들도 마찬가지다. 오락 외의 다른 곳으로 곁눈질 하는 쇼트 하나 없고, 쇼트 자체의 구성이나 연결도 좋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줘야 하는지를 이 영화는 너무 잘 안다. 게다가 어떤 이미지들은 후반에 반드시 활용되며 상황을 암시하는 데 이용되기까지 하니 연출이 ‘알차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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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인더다크> 스틸컷 | ||
기본적으로 신선함보다는 완성도가 무기인 영화이지만, <맨 인 더 다크>에도 눈을 번쩍이게 할 참신한 장면이 존재한다. 특히 지하실에서의 추격전이 그렇다. 이 영화가 설정해놓은 장님 노인이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활용한 시퀀스이기도 하다. 암전된 상태에서 장님과의 추격 시퀀스는 신선한 공포감을 준다. 시각적 감각에서 우위에 있던 침입자들이 한순간에 그 우위를 잃는 순간 예상치 못한 동선으로 나아가는 추격전이 주는 공포감은 엄청나다. 특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물들이 상대방을 발견하거나 피하기 위해 정적으로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그 서스펜스는 이 영화 최고의 서스펜스라 할 수 있다.
장님 노인에게 쫓긴다는 설정은 단순히 신선한 추격전의 묘를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추격전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에게 오락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로도 이 설정은 영리하게 쓰인다. 장님이 주변을 못 보고 주인공들 앞에서 금고를 연다던지 현관문을 봉쇄해버린다던지 하는 장면이 그렇다. 오락을 위해선 그를 위한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데, 자칫하면 정보제공을 위해 영화의 리듬이 희생당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이렇게 긴장감을 유지하는게 중요한 영화는 이 점이 딜레마가 될 수밖에 없다. <맨 인 더 다크>는 장님 캐릭터의 설정을 잘 활용해서 이 난점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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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인더다크> 스틸컷 | ||
공간 소개법이 매우 인상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호러 영화는 공간과 사운드를 다루는 테크닉이 가장 중요하다. <맨 인 더 다크>는 영화의 주 배경인 집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이 장님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카메라는 유려한 움직임의 롱테이크로 인물들의 동선에 따라 집 안 공간 곳곳을 소개한다. 이 장면은 한 순간에 그 집 안의 분위기를 객석으로 내뿜는 것은 물론이고 독특한 카메라의 움직임 때문에 유령이 주인공들을 쳐다보는 느낌까지 준다. 무엇보다 록키가 창문을 깨는 순간 집이 꿈틀거리듯 화장실 밑바닥에서 창문으로 시점이 이동하는 쇼트는 잠자는 사자가 깨어난 듯한 인상을 주며 지옥문이 열렸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이 영화 보고나면 장님 노인의 얼굴과 함께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집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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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인더다크>(원제 : ) 해외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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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도 단점은 있다. 너무 기본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본다는 느낌이 크지는 않다. 그리고 어떤 설정은 너무 과해서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깔끔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정 설정은 너무 돌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맨 인 더 다크>가 훌륭한 오락이란 것은 변함이 없다. 비슷한 이야기로 지루하기 짝이 없거나 과시적인 호러만 만드는 다른 허다한 감독들을 생각하면 장르의 관습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이런 수작을 만들어낸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연출력은 신뢰를 준다. 좋은 영화감독이란 결국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만큼 그것을 다루기 위한 방법을 기본부터 성실히 단련하는 감독일 것이다. 페데 알바로즈 감독은 이 영화로 자신이 그런 사람이란 것을 증명했다. 쌀쌀해지는 가을, 때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지만 그래도 놓치지 마라. 쉽게 만나기 힘든 끝내주는 오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