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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존재의 보이지 않는 흔적

[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Song Dong, Breathing, 1996 color photograph of his performance

  

   1996년 섣달그믐날, 유난히도 추운 베이징의 겨울밤이었다. 한 예술가가 천안문(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엎드려 찬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연신 축축하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댔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입김을 불기 시작한 지 40분이 흘렀다. 이윽고 바닥에 얇은 살얼음이 끼었다. 그러자 예술가는 아무 말도 없이 홀연히 그 자리를 떴다. 현대 중국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 쑹둥(宋冬)의 행위예술 <Breathing(哈氣)> 이다.
 
쑹둥의 행위예술이 이루어진 이곳 천안문 광장은 1919년 5·4 운동 시기부터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중국 시민들의 저항적·혁명적 시대정신이 깃든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이다.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및 시민들이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모여 평화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이를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하고는 중국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하고, 인민 해방군이 시민들에게 총포를 난사하는 등 무차별폭격을 가했다. 한국의 광주사태와 비견할 수 있는 이 참담한 사건을 두고 “반중인사들은 중국의 피의 일요일 혹은 베이징 대학살(Beijing Massacre)이라고 부른다. 보다 중립적인 학자들은 –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나 1989년 톈안먼 광장 저항(Tiananmen Square Protest of 1989)이라고 한다.”(나무위키)

   
천안문사태의 단상, 출처: 구글이미지
   
 
   
 

천안문 사태는 남녀노소할 것 없는 일반 시민들, 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 심지어 의식있는 경찰들까지 자발적으로 모여 합심으로 이루고자 하였으나 좌절된 중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호로 역사에 남았다. 
   

    다시 쑹둥의 <Breathing(哈氣)>으로 돌아와서, 쑹둥이 인내를 갖고 호호– 입김을 불어 만든 살얼음은 다음날 해가 밝자 ‘당연히’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수고가 참으로 허망하게 되었다.  쑹둥의 다른 작품 <Writing the time with water> 또한 ‘남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이다.

   
Song Don writing time with water, venice
   
Writing Diary with Water,1995
 

 <Writing the time with water>은 물 위에 도장을 찍고, 붓에 물을 적셔 석판위에다가 일기를 써내려가는 행위미술이다. 고체가 아닌 액체위에 도장이 찍혀질리 만무하며 먹이 아닌 물로 쓴 글씨이니 마르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의 저자 우정아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이 행위의 흔적은 물리적인 유형화를 거부하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체 그 행위를 지속해왔던 작가 개인만이 몸의 느낌과 심리적인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쑹둥은 왜 이렇게 미련하고도 ‘헛된 행위’를 지속적으로 한 것일까? 나는 생각건대 그가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아무리 보잘것 없는 힘일지라도 그것이 사회에 어떠한 작은 변화를 불러오기도 하고 설사 그 변화의 정도가 아주 미비할 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록 하루도 못 넘기고 사장되어버린 나약하고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내 의지와 노력과 정신이 관철되었던 순간이 분명 존재하였다. 존재의 흔적은 오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지만, 존재가 몸과 정신으로 새긴 보이지 않는 행위는 우리의 기억 속에 질기게 남을 어떤 숭고한 것이었다.

묻고 싶다. 나는, 또 당신은 오늘 어떤 미련한 행위를 하였는가? 그것은 문자 그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 질 이었는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는 무엇 이었는가?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남긴 ‘보이지 않는 흔적’. 그 찰나의 경이로움을 나는 더 자주, 더 많이, 더 곳곳에서 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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