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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타이(具体) 미술의 태동

   
▲ Murakami Saburo, Passing Through, 1956

[디아티스트매거진=옥세경] 위대한 발견은 종종 실수에서 비롯된다.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은 화학실험 중 우연히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당시 반창고로 널리 쓰이던 용액과 화약의 연료를 섞여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할 수 있었고, 찰스 굳이어(Charles Goodyear, 1800-1860)는 고무에 황을 넣는 실험을 진행하다 실수로 고무를 난로에 떨어뜨리는 덕분에 현대의 산업고무를 발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일화들은 예술계에서도 종종 발견되는데 일본의 구타이 미술의 태동이 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Shozo Shimamoto, 1956

구타이 미술의 창시는 20세기 중반의 일본화가인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독특하게 재해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두고 미술사학자 이브-알랭 보아(Yves-Alain Bois, 1952-)는 요시하라가 폴록을 창조적으로 오해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요시하라의 지적 창의성을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사상의 기원이 폴록에 있음을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 Kazuo Shiraga, Work II, 1958

요시하라는 폴록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에 깊이 감명을 받게 되는데, 실존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폴록에게 액션 페인팅은 화가의 순간적인 존재성을 움직임으로써 나타낸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는 행위였다. 다시 말해, 폴록에게는 ‘무엇을 그리느냐’ 보다는 ‘내가 행동하고 있다(고로 나는 존재하고 있다)’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시하라는 이러한 액션 페인팅 사상을 약간 오해-혹은 다르게 이해-했는데, 자연물에 신성을 부여하는 일본식 애니미즘과 신토(神道) 문화에 익숙한 요시하라에게 액션 페인팅은 ‘물감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요시하라는 폴록이 특정 형상을 그리겠다는 합목적적인 생각을 버리고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행위를 하는 이유가 물감이 캔버스 위에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직접 나타내게끔 해방시켜주는 일종의 존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위 그림은 구타이 운동의 일원이었던 시라가 카즈오(白髪一雄, 1924-2008)의 <작품 2>인데, 카즈오는 발에 물감을 묻히고 그가 그리는 형상에 대한 의식 없이 캔버스 위를 걸어 다님으로서 본인의 주관성이 물감의 의지를 압도하지 않는 회화를 만들고자 했다. 이는 캔버스 위를 걸어 다니는 그의 의식적인 행위와 물감이 무작위로 퍼지는 예상할 수 없는 현상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로써, 카즈오는 물감의 의지를 존중하였으며 물감과 ‘협업’하였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 Fujiko Shiraga, White Board, 1955

물론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대한 재해석이 구타이 미술의 전부는 아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피폐해진 일본 국민들의 삶의 정서, 창의적인 동-서양 표현 문화의 융합 그리고 범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독특한 전시구성 등 구타이 미술이 일본을 너머 전세계의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하나의 이론으로 요약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이렇게 미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복합적인 체계를 가진 사조를 창시하여 전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구타이 미술가들의 가장 큰 힘은 아마 공개적인 지적 담론문화가 아니었을까? 구타이 미술가들은 서양의 저명한 미술 이론가들과 담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구타이 미술이라는 공통된 기반이 세워진 뒤에도 새로운 하위양식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195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의 미술양식 중의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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