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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과 절제의 아름다움, <브로크백 마운틴>

 

 
출처-네이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잊을 수 없는 엔딩 크레딧을 보여준 영화들 중 하나다. 보신 분은 아시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잭의 옷걸이가 말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에니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영화가 끝나고 나지막이 흐르는 두 곡이 누구의 심정을 대변하는지를.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은 필자가 지금껏 감명 깊게 본 멜로 영화 목록에서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컨트리풍의 잔잔한 기타 선율이 이토록 마음 아프게 다가온 영화는 아직까지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에는 왠지 모르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안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도 더욱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섬세하고도 절제된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풍경을 조용히 보여주는 장면도 좋아한다. 여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풍경과 기타로 연주한 컨트리 음악의 조화는 지금껏 본 영화 중 너무나 아름다워서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순간적으로 그 대상에 대한 판단을 잊게 만든다.

   
출처-네이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쉽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감정을 내보이는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의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은 하나하나가 명장면이다. 그들이 처음 만난 후 방목 일이 끝나고 둘의 행동을 보자.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불확실한 기약만 한 채 각자의 길을 간다. 잭이 떠난 후 멀쩡한 것 같던 에니스는 갑자기 구석에서 구역질을 하며 운다. 게다가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화풀이까지 한다. 아마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잭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리라.

 확실히 관객에게 다가오는 인물의 감정 표현은 에니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게 된 장면도 그렇고, 와이오밍 사람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패거리의 말을 듣고 잭을 생각하며 화를 내는 장면, 잭이 화를 내자 감정을 분출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에니스가 잭의 셔츠를 발견하고 변하지 않을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에니스 역의 히스 레저보다 잭을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에 대한 이야기가 덜 나오는 것 같다.

 연기를 평가할 때, 배우 자체가 아닌 그 캐릭터로만 보일 때가 배우가 가장 연기를 잘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때, 배우가 완벽히 그 캐릭터로 보이기 위해서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기가 필요하다. 과장된 연기를 하거나 모자란 연기를 하는 순간 극 몰입이 깨지기 때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제 몫을 멋지게 해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그러한데, 그에 비해서 히스 레저가 주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히스 레저의 연기가 찬사를 받는 데에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혼한 에니스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너무나도 먼 거리를 달려 왔지만 이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면서 잭이 소리 죽여 우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슬픈 장면 중 하나다.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지만, 관객은 잭이 얼마나 슬픈지를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잭이 에니스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이다. 잭이 멕시코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에니스가 불같이 화를 내며 잭을 협박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에니스를 바라보는 잭의 눈빛은 어떤 의미였을까? 미묘한 감정을 잘 살려준 제이크 질렌할 역시 찬사받아야 마땅하다.

 모든 이야기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시작되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과 에니스가 각자를 옭아매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잠시나마 생계를 위한 일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고, 아내와 장인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이 브로크백 마운틴이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그 곳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이자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서로에게 한편으로는 또다른 속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함께할 수 있었던 그들은 서서히 지쳐간다. 같이 있는 시간에 비해 그리움의 크기는 너무나도 컸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가 변하지 않았을까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서로를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잭의 “너와 끝내는 법 좀 알고 싶다”는 대사처럼. 차라리 관계를 끝내 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사가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아마 평생 서로를 놓지 못할 것이다. 먼저 가 버린 사람이든, 남겨진 사람이든. 에니스가 잭의 방에서 발견한 셔츠가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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