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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었고, 있을 뻔했고, 앞으로 있을 이야기. 영화 <터널>

   
▲ [터널] 포스터

[디아티스트 매거진=박동수]

중고자동차 딜러 이정수(하정우)는 어느 날처럼 일을 외근을 다녀온 뒤 하도 신도시의 회사로 돌아가던 길이다. 신도시로 들어가는 하도터널로 들어간 정수, 그가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이 붕괴된다. 터널 밑에 갇힌 그에게 남은 것은 생수 두 병과 딸에게 주려던 생일 케이크, 배터리가 78% 남은 핸드폰뿐이다. 그를 기다리는 아내 세현(배두나), 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조대장 대경 등 터널 밖의 인물들과 터널 속의 정수를 바쁘게 오가며 영화가 진행된다,

   
▲ [터널] 스틸컷

있음직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영화의 목표라면 <터널>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아니, 이미 있었던 이야기라고 해도 믿길만한 이야기다. 우리는 1995년에도, 2014년에도, <터널> 속 상황과 비슷한 것들을 봤다. 어느 날이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어느 날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터널>은 1995년에도, 2014년에도, 미래의 어느 날에도 존재하는 상황과 사람들로 가득 찬 영화다. 또한 1995년에는 있었고, 2014년엔 있을 뻔했고, 미래의 어느 날엔 있을지 알 수 없는 엔딩을 보여준다.

   
▲ [터널] 스틸컷

그래서일까, 영화는 관객들과 함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공유한다. 몇몇 장면들을 통해 이를 만들어낸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정수(하정우)가 터널에 갇힌 것을 마트 무빙워크에 달린 TV뉴스로 접한 세현(배두나)이 쇼핑카트를 내버려두고 뒷걸음질로 다시 TV화면을 보러 가는 장면. 멀리 가버리는 쇼핑카트와 함께 세현의 일상이 떠나버리는 모습을 한 장면으로 담아냈다. 재난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이곳의 사람들이 접했을 감정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상품백화점을 보면서, 성수대교를 보면서, 경주리조트붕괴를 보면서, 세월호를 보면서 겪었던 감정과 생각들이 <터널>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 [터널] 스틸컷

하정우는 역시 자신이 주연임을 확실히 하는 연기를 잘 한다. 본인이 직접 영화의 톤을 만들어내고 완급조절을 할 때 하정우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홀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더 테러 라이브>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캐릭터의 톤이 다르다는 점에서 놀랍다. 오달수와 배두나는 캐릭터의 전형성에 연기가 살짝 묻힌 느낌이지만, 언제나처럼 좋은 연기를 펼친다.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옳은 말(사실 이게 오글거리게 느껴져선 안 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옳은 말을 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느낌이 드는 시대이다)을 자연스럽게 쏟아내는 오달수의 연기가 일품이다. 윗 문단에서 언급한 장면 이후 역할 자체가 작아져 아쉬웠지만, 배두나의 얼굴은 지난 참사들 때 봤던 많은 표정들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잠시 등장한 김해숙은 너무나도 확실한 레퍼런스가 느껴졌지만 좋았다. 직급은 장관이지만 누구를 참고한 캐릭터인지는 등장부터 대사까지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다.

   
▲ [터널] 스틸컷

포스트 세월호 영화라고 불리지만, 그건 단지 가장 가까운 사건이 세월호이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경주리조트, 세월호…. 사건의 이름만 바뀌었지 상황과 원인과 사람들은 여전하다. <터널>은 그런 상황들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 앞에 세워둔 거울 같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사건들 직후 백화점에 들어가고,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기에 망설이게 됐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김성훈 감독의 영화는 한 가지에 집중한다. 여러 가지 사회비판적 요소를 담아 툭툭 건들이기만 하는 최근의 많은 영화들과는 달리, 특정 지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끝까지 간다>와 <터널>은 장르 속에서 끝까지 파고든 영화들이다. 동시에 장르 공식에 따라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기술자로써의 능력도 탁월하다. <끝까지 간다>는 테크니션으로써의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화라면, <터널>은 테크닉에 메시지를 녹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보전진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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