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화 부산행 | ||
[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내 이익을 위해 개미들의 손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늘 그래왔듯이 그들의 손해를 눈 감았을 뿐인데 그 개미들이 역습을 해왔다. 그와 그의 회사가 이기심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된 수많은 개미들 말이다.
개미들 사정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석우의 생각은 그대로 되돌아와, 어린 딸을 데리고 있는 그의 사정은 전혀 봐주지 않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한다. 개미핥기가 좀비로 변한 개미들에게 역습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 피해는 석우에게만 간 것이 아니다. 이 지독한 이기주의자 덕분에 무고한 이들도 손해를 보게 되었다. 피해를 입은 개미는 또 다른 개미를 감염시키고, 그 개미는 또 다른 개미를, 이렇게 온 도시가 종말 직전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공격에 제일 먼저 당하는 사람들은 사건의 주범자들이 아니다. 언론에서 안전하다고 거짓 선언을 하는 사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 위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던 군인들이 당했고, 지켜준다는 말을 믿고 열차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간 정보력 없는 다수의 대중들이 당했다. 촌스럽고 어설픈 연출력과 부족한 연기력으로 표현하느라 힘들어 보였지만 그들만의 정보력으로 다수의 대중을 기만하는 방식은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
||
| 가장 큰 피해는 사건의 주범자들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받았다. | ||
특히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노련한 사업가 앞에서 앞길이 창창한 10대들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허무하기만 하다. 석우 역시 제 한 몸만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처럼 악몽 같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있었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의 딸은 이 열차 안에서 그 누구보다도 약자이다. 너무도 표적이 되기 쉬운 딸을 지키려니 본인도 개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무시하던 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열차의 더 안전한 칸을 미리 차지해 그보다 우위에 선 사람들의 이기심에 의해 그도 무기력한 약자가 되고 만다.
이건 개미들의 단물을 빨아먹던 석우에게 엄청난 악몽이다. 자신이 그들에게 위협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의 발밑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제 살길만 찾으면 된다고 믿은 그는 그제야 깨달았을 것이다. 내 발밑을 지탱하던 것들이 무너졌을 때 그 위협이 어디까지 오는지를.
![]() |
||
| 자신이 같은 처지가 될 거라고 석우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 ||
부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 위에서 징그럽게 매달려드는 좀비들을 발로 차 떨어트리며 석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지긋지긋하다? 혹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나비효과가 되어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도 아니면 딸과 함께 반드시 살아서 부산에 가겠다는 원초적인 삶의 욕구일까?
무슨 생각을 했든 상관없다. 결국 그는 개미떼와도 같은 좀비들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자신 외의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킨 그와 비슷한 좀비에게 당했으니까. 그렇다고 억울할 필요는 없다. 대전까지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다가 갑자기 자신의 딸을 구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껴 은인을 대신해 그의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지키려 노력하고, 뜬금없이 갓난아이를 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신파를 찍는다 해도 그가 그렇게 살아온 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얼른 집에 돌아가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천리마 고속 상무도 그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이다.
대전에서부터 착하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의 딸이 부산행 KTX에 타고 있지 않았다면 그 또한 좀비보다도 더 많은 욕을 먹는 이 영화 최고의 악역 아저씨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 |
||
| 이 판국에 누가 더 나쁜놈인지 밝힐 수야 있을까 | ||
왜 다른 좀비보다 혼자만 오랫동안 할 거 다하고 멋있게 변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석우는 비로소 그들과 같아졌을 때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딸은 살아날 거라는 희망 때문인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죽기 전에 조금은 사람답게 살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