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티스트매거진=박현석] 미술이나 공연, 심지어는 책의 문체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의 평론을 보고 있자면 ‘남성적인~’이라든지 ‘여성스러운~’등등의 수식어를 쉽사리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적 디자인이나 여성적 디자인은 없을까? ‘소비자들의 필요를 반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이기에 대상의 차이에 따라서 남성적/여성적 디자인은 존재한다. 가령 예를 들어, 남성보다 여성들의 사용성이 더 높은 화장품의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의 취향에 더 주목해서 색감, 패키지 등을 구성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면도기와 같이 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이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여성보다는 남성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제품을 만든다. 물론, 남성용 화장품이나, 여성용 면도기가 존재하지만 주요 사용대상을 생각해보자면 화장품은 여성이, 면도기는 남성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크게 자각 없이 이렇게만 생각해왔다.
관점의 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 여대 공간디자인과 졸업전시회에 가고 나서였다. 별 긴장감 없이 갔던 그 곳에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는데, 속된 말로 ‘까먹어’ 버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여대 졸업전시회다보니깐 각각의 주제가 남자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힘들 법한 것들이 있었다. ‘미혼모를 위한~’, ‘산모를 위한~’, ‘자녀와 함께 온 엄마를 위한~’ 등 여성적인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기존에 여성적인 디자인이라고 하면은 형태적 측면에 여성성을 부가하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었던 것에 반해, 실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만약에 내가 공간을 디자인 했었더라면 디자인의 대상을 ‘미혼모’나 ‘산모’ 혹은 ‘엄마’에 중점을 둘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엌’이나 ‘드레스룸’ 등 여성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공간을 생각해본다면, ‘남성들과 여성들 중 누가 더 편의성이 높게 구성할까?’라는 질문의 답은 아무래도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적으로 멋스럽게 꾸미는 것은 누구든지 잘할 수 있는 것이지만 편의성까지 고려한다면 아무래도 사용 빈도수가 높은 여성이 더 잘할 것으로 예상해본다.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 ‘디자인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겠구나.’였다.
무성적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로 봤을 때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각자의 특수형질을 같기 이전 기본상태 혹은, 남성과 여성의 평균점 더 나아가서는 각 개개인에게 통용되는 보편성인 것이다.
남성 디자이너라고 여성복을 디자인 할 수 없지는 않는 것처럼, 여성 디자이너라고 남성복을 디자인 할 수 없지는 않다. 오히려 남성 디자이너가 만든 여성복이 여성 디자이너가 만든 여성복보다 나을 수도 있고, 여성 디자이너가 만든 남성복이 남성 디자이너가 만든 남성복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 종종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을 본다면 동성애자인 경우가 있다. 그들은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한 가지 특정적 성(性)이 아닌 또 다른 성인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게 된다면 남성 혹은 여성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성격, 성향, 행동 등은 특정적인 하나의 성(性)으로 정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정의를 해야 한다면 그들은 n의 성인 것이다. 흔히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종류의 성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생물학적인 증명에 의하면 개개인이 가지는 남성 호르몬 수치와 여성 호르몬 수치의 비율은 다르다고 한다. 남성 호르몬이 더 많다면 남자로 여성 호르몬이 더 많다면 여성으로 정의되는 것은 극단적인 정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성을 분류하는 기준에서 염색체가 XY냐 XX냐의 분류에 의한 단 두 개의 남성, 여성이 아닌 n개의 성으로 정의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개인의 다양성이 더 넓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개인의 다양성을 다 충족할 수는 있는 것인가? 가능은 하겠지만 그 다양성 모두를 충족하는데 들게 될 비용과 시간을 생각한다면 매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필요를 모두 맞춰주기 힘들기에 등장한 것이 보편성이다. 나는 보편성을 ‘누가 써도 편리한~’ ‘누가 봐도 멋있는~’등으로 대변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보편성이 어느 정도 수반 되어야 한다. 아무리 개개인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지만, 단 하나의 개인만을 위한 디자인은 그 개인에게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가치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편성은 필요한 것이다.
그 보편성을 위해 가장 처음으로 나뉘었던 남성, 여성적 시각을 통틀어 가진다거나 더 나아가 무성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보유한 디자이너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디자이너보다 좋은 평을 (수적으로) 더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중점으로 두는 하나의 성뿐만 아니라 다른 성까지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디자이너의 결과물을 공감하는 대상이 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무성적 시각을 위해 동성애자가 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이러한 시각을 가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디자이너들 또한 많다. 하지만 시각이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가능성의 범위 또한 늘어날 것이고, 기회 또한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성적 시각을 함양하는 것은 디자이너에 있어서 매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