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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 ||
[디아티스트매거진=조재형] 박찬욱 감독의 2016년 복귀작 ‘아가씨’가 여전히 절찬 상영 중이다. ‘아가씨’를 보고 있자면 몇 가지 생각이 확실하게 든다. 박찬욱 감독만이 펼칠 수 있는 미장센(mise en scene : 연극과 영화 등에서 연출가가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는 작업.)의 활개가 여전하다는 것, 박찬욱 감독은 19금 연출을 영리하게 영화에 이용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박찬욱이란 이름에서 느껴지는 신뢰도는 여전했다는 것. 자신만의 예술색이 완벽하다는 것은 예술가로써 경기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박찬욱 감독이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영화계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감독으로 올라서지 않았다. 지난 날 박찬욱 감독의 위대한 발자취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박찬욱이 존재했다. 지금의 박찬욱을 있게 한 박찬욱 감독의 위대한 발자취를 다시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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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 ||
공동경비구역 JSA
한반도는 남과 북이 갈라진 휴전국가다. 이 비극적 상황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지금에도 남북분단은 예술계의 구미가 당기는 소재일 수밖에 없고 과거에도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소재였다. 박찬욱 감독도 이러한 한반도의 상황을 좋은 영화로 만들어내는 쾌거를 보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갈라진 남과 북의 현실을 넘어선 아픔, 갈라져있긴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한민족이라는 동질감 그럼에도 현실을 극복할 수 없는 작은 존재들의 애환을 여러 표현으로 그려냈다. 표면적으로 전개되는 사건의 전말보다 우리는 그 사건의 내면에서 감동과 아픔 등을 공유했다. 이 모든 판을 박찬욱이 설정하고 펼쳐냈다.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에 가장 완벽한 영화로 남을 것이며 박찬욱, 그의 위대한 첫 번 째 발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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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 ||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은 그렇게 ‘공동경비구역 JSA’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색을 펼치기 시작했다. 보통 어느 영화를 만든 후에 호평을 받고 흥행을 하면 다소 상업적이고 다소 경제적 이득을 따지는 경향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그 흐름에 역행했다. 비록 흥행이 덜 되더라도 비록 대중적이지 못 한 영화라도 결국 박찬욱 감독은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박찬욱 표 복수극 제 1편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어내 한국형 복수영화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음을 알렸다. 2016년 현재 박찬욱 감독하면 느껴지는 떠올려지는 미장센의 시작이 ‘복수는 나의 것’에서 탄생했다고 과언은 아니다. 적재적소의 19금 활용, 확실한 전개를 위한 거침없는 표현, 그 안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이야기 등은 박찬욱이란 이름을 서서히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복수는 나의 것’ 본격적인 박찬욱의 시작이라 봐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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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드보이’ 스틸컷 | ||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자신의 미장센을 시험해보던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미장센과 예술색을 서서히 완성시켜나갔다. 그렇게 ‘완성’이란 단어를 감히 붙일 수 있는 작품 ‘올드보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복수극 제 2편이었다. ‘복수는 나의 것’보다 말끔한 이야기 전개도 존재했고 그 말끔한 이야기 전개를 위한답시고 표현의 축소를 택하지도 않았다. 표현은 있는 대로 표현했고 누구나 이해할법한 이야기 전개도 살려냈다. 이 선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얼굴들이었던 윤진서와 강혜정을 재조명시켰다. 그리고 ‘올드보이’를 이루는 세 명의 주인공을 음악적으로 균형 있게 배치해 귀로도 관객들을 충족시켜줬다. 마지막, 반전이란 개념을 영화에 완벽히 투입시켜 영화의 완성도까지 확보했다. 가히 박찬욱 표 예술성에 정점이라 말하고 싶다. ‘올드보이’가 세상에 나온 후부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배우들보다 박찬욱이란 이름에 더 시선이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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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절한 금자씨’ 스틸컷 | ||
친절한 금자씨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이후 세 번 째 복수극, 복수극의 마침표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박찬욱 감독은 세상에 내놓았다. 섭외부터가 충격적이었다. ‘산소미녀’라 불리던 이영애를 과감히 섭외해 우선적으로 영화의 파격성부터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 파격성에 배우 이영애는 철저히 응답했다. 붉은색 눈화장으로 대표되는 주인공 이금자의 이미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섬뜩함을 전달해줬고 그 순간부터 박찬욱 표 미장센, 예술색은 시작됐다. 피가 뿌려지는 박찬욱의 19금 표현은 여전했다. 그 안에서도 숨 쉬고 있는 뚜렷한 이야기 전개 또한 여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드보이’ 때와 같은 충격적 반전은 없었다. 오히려 이 점이 ‘친절한 금자씨’가 ‘올드보이’의 아류작이 아님을 구분 지었다. 친절하면서도 냉혹한 이금자의 주도 아래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의 예술이 고스란히 이어졌고 다시 한 번 박찬욱 표 수작이 탄생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박찬욱은 자신이 말했던 복수극 3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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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쥐’ 스틸컷 | ||
박쥐
박찬욱 감독 자신이 말했던 복수극 3연작은 끝났다. 그렇다면 박찬욱은 과연 어떤 영화를 다시 만들어냈을까? 복수를 위해 뿌려졌던 피가 아닌 다른 피를 사용해 다시 박찬욱 감독은 돌아왔다. 한국영화계에서 다소 시도하게 주저됐고 시도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 했던 뱀파이어 영화를 택해 피를 사용했다. 이제는 박찬욱 표 미장센과 예술법을 영화 안에서 느끼면 반가움마저 든다. ‘박쥐’ 안에서 연신 이어지는 박찬욱 표 미장센과 예술법은 ‘박찬욱은 여전하구나.’를 느끼게 해줬고, 그 느낌을 받는 순간 박찬욱 감독도 성장했다는 사실을 뱀파이어를 연기하는 송강호와 김옥빈을 보고 다시 또 느끼게 된다. 피를 찾아 갈구하면서 살인에 대한 고뇌를 하다가 피를 찾는 뱀파이어를 사랑하다가, 결국 살인을 용인하게 되며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를 사랑하다가 그보다 더 광적인 뱀파이어가 돼버리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장르를 향한 성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자신의 예술로 어느 영화든 만들어버린는 박찬욱, 가히 명감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