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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포스터 | ||
[디아티스트 매거진=박동수]
*스포일러 있음
전라도 곡성,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나간다. 현장은 한 남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한 끔찍한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일련의 사건들이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온 뒤로 벌어진 사건임을 알아차린다. 그 와중에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다급해진 종구는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부른다.
<곡성>은 <추격자>로 한국 영화판을 스릴러의 천국으로 만들고, <황해>로 하드보일드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장르물의 천재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다. <황해>가 2010년에 개봉했으니 6년만의 컴백이다. 20세기 폭스가 제작을 맡아 제작비 80억으로 만들어진 <곡성>은 <추격자>, <황해>에 이어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을 작품이다. 156분, 2시간 36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동안 나홍진 감독이 얼마나 지독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기대감이 터질 듯한 상황에서도 <곡성>의 지독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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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곡성은 우선 장르가 불분명하다. 이게 대체 호러인지 스릴러인지 범죄인지 오컬트인지 명확하게 말하기 힘들다. 성경의 누가복음 37장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오프닝을 본 뒤 일광이 실컷 굿판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보면 <곡성>의 감상은 점점 더 기괴해지기 시작한다. 한바탕 굿판이 벌어지고 난 후엔, 노골적으로 성경을 인용하고 차용한 장면들을 집어넣는다. 심지어 가톨릭의 부제(<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의 직책)가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갑작스런 좀비(?)의 등장까지, 대체 이 영화 정체가 무엇일까.
<곡성>은 외부인에 대한 의심에 관한 이야기다. 묻지 마 살인, 인신매매 등 흉흉한 사건들이 여럿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무의식중에 낯선 외부인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범인이지 않을까 의심한다. <곡성>은 낯선 외지인의 존재를 통해 이러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에 성경과 무속신앙, 범죄 스릴러 등의 외피를 입혀 숨 막히는 장르 영화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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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15세 관람가를 받은 만큼, 직접적인 폭력 묘사는 전작에 비해 크게 줄었다. 물론 많이 줄였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이긴 하다. <곡성>은 폭력의 묘사를 줄인 대신 폭력의 결과를 꽤 세세히 전시한다. 물론 팔다리가 잘려있고 내장이 흩어져 있는 고어한 풍광을 보여주진 않지만, 이때껏 15세 관람가 영화에서 이렇게 피가 많이 나온 영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피가 많이 등장한다. 또한 영화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묘한 유머코드들은 전작 <황해>가 너무 잔혹했다는 평가의 반영인 듯하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의 지독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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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대표적인 장면으로 악마(?)의 첫 희생자가 죽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첫 희생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가족을 칼로 난도질해 죽이고 병원에 이송된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 있고, 살짝 썩어가는 듯 갈색으로 변해가는 피부색은 마치 좀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첫 희생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다. 마치 <엑소시스트> 속 악령에 쓰인 소녀처럼, 쇄골이 부셔져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로 온 몸을 비틀며 피를 토한다. 산 속에서 한참 외지인의 뒤를 쫓던 종구와 그의 동료 경찰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쓰러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불판에서 불고기가 구워지고 있다. 나홍진 감독은 지독하게도 침대에 널브러진 희생자의 시체와 불판 위의 불고기의 시각적 유사성을 이용해 관객들을 불쾌하게 만든다.(이와 비슷한 장면이 <살인의 추억>에서도 등장한다) 이 때부터 영화를 보던 내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의 원톱 주인공인 종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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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관객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처음엔 마을에 일어난 흉흉한 사건을 심드렁하게 지켜보다가,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누군지 어디서 온 건지 알지도 못하는 외지인을 의심하며, 악마의 마수가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자 분노하고 끝내 허무에 빠져버린다. 관객은 오롯이 종구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며 악마 혹은 귀신에 현혹되고, 그것이 뿌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종구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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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앞서 영화는 의심에 관한 이야기라 했다. <곡성>의 주인공 종구는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의심한다. ‘저놈이 내 딸을 아프게 한 범인이야’라며 외지인과 무명을 번갈아 의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종구는 결국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의 의심은 결국 어떠한 믿음으로 종결될 것인가? 그는 일광을 믿을 것인가, 무명을 믿을 것인가. 닭이 세 번 운다는 설정은 신약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배신한 것에서 노골적으로 따온 설정이다. 그렇다면 종구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어떤 결정을 내린 걸까? 종구가 무명의 말 대로 닭이 세 번 울기를 기다리고 귀신이 무명의 덫에 걸리길 기다렸다면 그의 가족은 살았을까?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이다. 허나 영화가 156분에 걸쳐 의심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종구가 자신의 의심에 대해 내린 결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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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성> 스틸컷 | ||
21세기, 2016년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테러에 가까운 참담한 사건들이 우리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우리, 우리도 종구처럼 의심이라는 귀신에 씌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부제가 외지인을 악마라고 믿은 이후부터 외지인이 악마의 형상으로 변했듯(특히 가톨릭 속 사탄의 모습처럼 등에 날개가 잘린 모습이 묘사된다) 우리가 의심하는 것, 우리가 믿는 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곡성>은 초현실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은 현대사회와 직결된 이야기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