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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이 말하는 “미”의 조건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 Comtesse d´Haussonville

 

[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우리는 흔히 꽃이, 어떤 그림이, 어떤 곡이, 어떤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또는 한 목소리로 합창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피겨스케이팅을 타는 김연아 선수의 모습이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 이렇듯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과 서로 다른 사물, 현상에 아름답다는 말을 적용시킨다. 그러나 그것들 속에서 어떤 공통적인 객관적 사실이나 속성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김연아 선수

‘아름답다’라는 말은 그것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의 어떤 개관적인 사실이나 속성을 지칭하거나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화자에게 있어서 무엇인가를 만족시켜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아름답다’ 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곧 내가 그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적 가치는 어떤 대상에 대한 화자의 기호와 경험과 관련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미적 가치판단을 내릴 때 판단자가 자신의 주관에 의존한다 해도 그 판단이 반드시 완전히 주관적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고, 단순히 근거 없는 감정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인과적인 관계를 갖고 판단하지 않을까 라는 물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 물음은 예술 철학에 있어서 특히 칸트 이후, 미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밝혀내는 데에 이어갔다.

   
라파엘로, 아테네학당, 1510-11

형식론자인 벨의 이론에 따르면 한 예술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형식은(significant form) 예술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대상을 이루는 어떤 질서,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간의 관계성이 감상자의 미적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는 미적 본질을 형식이라는 보편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르네상스시대의 미의 관념인 완벽한 인체의 비례 미, 원근법에 의거한 적절한 배치와 구도 이러한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질서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것은 이미지나 텍스트가 내포하는 내용이나 의미와는 철저히 상관이 없어야 한다.“그러나 형식만으로 미적 가치를 설명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가령 빨간 장미꽃을 보고 우리가 아름답다 라고 느낀다면 똑같은 형태의 검정 장미꽃을 보고도 같은 종류의 미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운율과 율격이 엄격한 시조나 한시에서는 미적 감동을 얻으나 형식을 파괴한 산문시에서는 그와 같은 만족과 감동을 느낄 수 없어야 한다.” (오병남, <미학강의)> 이처럼 대상의 보편적 특징만으로 미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억지스럽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선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현대미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거장이자 레디메이드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의 ‘샘‘은 오늘날 너무나 유명한 걸작의 하나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이 대상 자체만을 보고 실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화두에서 예술적 가치와 미적 가치는 따로 떼어놓고 논하고자 한다) 분명 이것을 보고 보편적인 미의 속성을 찾기란 어렵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저 남성 소변기에 불과한 이것을 오늘날 화단에서는 오브제미술 혹은 아상블라주 미술로써 기존의 미술의 틀을 깬 혁명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 명명하고 이것의 미적,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이는 대상 자체가 품고 있는 보편적 감동이 아니라 예술가에 의한 생산물이기에, 미적 평가를 내리는 평론가들이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답다 라고 내린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수긍 되어진 것이다.

   
드라마 황진이 

몇 년전 배우 하지원씨가 주연으로 한 드라마 ‘황진이’는 기생 혹은 예인이라 불림 받는 이들의 끊임없는 재예의 수련과,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을 풀어놓았다. 여기에 미적 가치의 본질을 놓고 대립하는 대목이 있다. 여각의 행수자리를 놓고 춤 대결을 벌이는 황진이와 부용은 최고의 춤사위로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과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 앉는다. 부용은 최고의 춤사위는 전통과 무보에 입각한 틀림없는 춤사위에서 즉 대상의 관념적, 완벽한 형식미에서 미적 감동을 받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감동은 비루한 자들은 느낄 수 없고 오직 예술, 문화 향수 계층인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미적 가치판단은 그것을 인지 할 수 있는 특수한 지적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전통과 무보를 무시하고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의 소재를 찾아 그것을 춤사위에 녹아들게 해 보는 이로 하여금 춤사위를 통해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 때문에 자신과 춤을 동화시켜 신명을 느끼게 하였다. 이는 아름다움이 생활세계와 깊게 연유하는 것이고 어떤 순수한 분리적 속성이라는 것에는 거부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본질과 그 판단기준에 대한 물음에 꼭 한가지의 확고한 답을 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예술 작품들 속에서 영원불변한 형식이나 원초적인 만족감을 유발시키는 이미지가 발견되어 미적 감동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가정해도,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같이 그런 형식이나 이미지로서 감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대상의 순수한 속성에 따라 미적 판단을 결정짓는 일은 절대적인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된다.  

*참고문헌; 오병남,<미학강의>,서울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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