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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림] 작가를 닮은 그림, 그림을 닮은 작가

   
▲ 왔다감 2015 종이에 볼펜 22x18cm

“내가 느낌을 표현하는 기법은 표정, 말(글), 패턴이다. 이러한 것들은 조각, 평면, 설치의 형태로 나타나며 문학에서의 자동기술법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원열의 작품은 이율배반적 상황을 시니컬한 방법으로 표현해 관람객에게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조각, 드로잉, 설치 등의 작업에 투영된 상황들은 모두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의 응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섹슈얼한 욕망을, 때로는 희열과 비애의 동일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것들 모두 일상과 비일상을 구분 짓지 않으므로 ‘일상’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태연하고 뻔뻔한 일기 같은 작품은 작가와 닮아있다. 그는 일상의 다양한 감정을 재료에 투사시켜 순수 미술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 무제 2015 종이에 볼펜 22x18cm

‘정육점 불나다’ ‘불타는 꽃집’과 같은 문장이 대략 2포인트 정도의 명조체(?)로 쓰여진 작품 앞에 서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게 글을 그려 넣은 그림인지 아니면 작가의 언어유희에 넘어간 것인지. 실제로 정육점에 불이 나면 불을 꺼야 하는지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앉아 바베큐 파티를 해야 하는지. 이처럼 최원열의 작품에는 재치 있는 문장과 볼펜으로 수놓듯 그려진 밀도 높은 드로잉, 오징어, 지점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조형 작업이 공존한다. 

   
▲ 무제 1999 마른오징어
   
▲ soliloquy#R 2014 종이에 볼펜 22x22cm
   
▲ soliloquy#B 2014 종이에 볼펜 22x22cm
   
▲ soliloquy#G 2014 종이에 볼펜 22x22cm

그가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학생 시절 그는 자유 주제였던 교내 포스터 공모전에서 오른손 손바닥에 이목구비를 그려 넣어 ‘바른손 민주당’이라는 신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그 포스터는 작품당선의 명목으로 선생님이 가져갔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늘 선생님 몰래 그림을 그렸고 열쇠로 분필을 깎아 남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 같은 은밀한 행위가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을 즐기다 보니 그림의 양이 많아지며 더욱 대담해졌고 급기야 바로 앞자리에서 담임의 초상화를 그리다 들켜 생의 모든 그림이 들어있는 스크랩북을 빼앗겼다. 분필 성기는 교내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한다는 녀석이 가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빼앗김이 주는 상실의 이면에는 남이 탐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이 존재했고 이러한 감정이 지금까지의 작업을 탄생시킨다. 

그의 볼펜 드로잉 작업은 빛의 삼원색인 적, 녹, 청 세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그는 빨강, 초록, 파랑의 흔히 촌스럽다고 말하는 색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그가 사용하는 브랜드의 볼펜은 다양한 색으로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원열의 평면 작업에는 볼펜이나 연필이 사용된다. 그에게 색의 폭이 넓지 않아 표현에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재료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글을 쓴다는 것은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과의 한 부분이며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림이 얹어진다고 답했다. 그에게 펜과 연필은 일상을 함께하는 재료일 뿐이다. 

   
▲ minima 2008 종이에 도장 25x60cm

그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관찰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여긴다. 때문에 그의 작품 구상 또한 의도적인 관찰과 해석이 아닌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들에서 비롯된다. 일상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 모두 일상의 ‘나’라는 존재가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는 그의 작업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도록 해준다. 

미의 상징인 밀로의 비너스를 가상으로 복원해 설치한 이번 작업 또한 그러한 발상의 일환이다. 그가 유실된 밀로의 비너스의 팔을 발굴하러 가는 탐사대의 대원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이번 작업은 6년전부터 구상하고 제작했으니 6년 간의 탐사 결과라 할 수 있다. 미의 상징으로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는 발견 후 루이 18세의 명으로 고증을 거쳐 복원되었지만 팔이 없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루이의 판단에 의해 지금까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고 있는 그의 비너스는 복원의 개념이라기 보다 발굴 후 원본을 복구했다고 볼 수 있다.

   
▲ 무제 2015 지점토 직조 100x35x45cm
   
 무제 2015 지점토 직조 100x35x45cm

“일상은 물론 매체, 커머셜에서도 사랑을 표현할 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하트는 지구 상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는 사랑의 징표이며 사랑은 시대를 건너도 언제나 고결하다.” 

최원열의 작업은 시니컬한 언어유희를 통해서도 보여지는데 감상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옆집누나의 사생활.avi’ 처럼 은밀하게 즐기고 싶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앞에 언급했듯 학창시절 거의 모든 그림들을 빼앗겨 몹시 허탈하고 분했지만 그것을 대중이 본인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어떤 장점과 단점은 서로 뒤바뀔 수 있고 비애와 희열 또한 동시에 느껴질 수 있으며 작업을 하는 것은 그런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하나로 엮어 따듯한 평정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정신적 행위라 말한다. 

그는 그간 그려온 책 사이즈의 드로잉을 모은 ‘숨은 그림’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현재는 사이즈를 키워 연필 소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노톤은 한계가 있다. 빛을 완전히 흡수할 수 있는 검정을 칠 할 수도 빛을 완전히 거부하는 종이를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수많은 톤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늘 그 사이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다음 전시의 타이틀은 ‘중간 톤’이 될 것이라 말한다. 출판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만화책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그는 만화 속 인물들의 대사를 가두는 ‘말 풍선’안에 말을 빼버린 작업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만화책의 다음권을 기다리듯 그의 행보 또한 기대된다. 

   
▲ 2015 ‘숨은그림’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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