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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보러 극장에 안 갔던 이유

   
<동주> 포스터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최정원] 솔직히 말하면, 요즘 영화관에 잘 가지 않았다. 영화 칼럼을 쓴다는 사람이 영화관에 안 가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예매 창을 켰더니 도무지 영화를 보러 갈 맛이 나지 않았다. 온통 한 영화로 영화 시간표가 도배되어 있는 상황을 보자니 이게 버스 시간표인지 영화 시간표인지 분간이 안 갔다. 게다가 보고 싶었던 영화들은 아예 시간표에도 없거나 아주 난감한 시간대로 잡혀 있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스크린 독과점은 특정 영화의 탓이 아닌, 수익을 둘러싼 극장 및 배급사를 둘러싼 영화계 구조 자체의 문제이니 말이다. 더구나 이러한 문제는 고작 하루 이틀 논란이 된 것도 아니다.

 물론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고 수익을 내는 곳이지 자원봉사를 하는 곳이 아니다. 흥행하는 영화를 걸어 이윤을 내고 싶은 그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은 도가 너무 지나치다. 관객을 봉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현재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관객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 이상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기가 많을수록 그만큼 많은 스크린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특정 영화를 많은 관객이 보기를 원한다면, 극장 측에서도 어느 정도는 이에 부응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까지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녕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소수라고 해서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해도 좋은가?

 독과점을 하려는 측에서 흥행성이라는 요인은 문제의 본질을 덮기에 아주 좋은 핑계다. 관객이 원하는데, 우리라고 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다수의 볼 권리를 보호하는 척하면서 소수의 볼 권리를 무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작은 영화가 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으니 묻힐 수밖에.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처럼 둔갑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과점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이들이 바라는 상황이다.

   
<귀향> 포스터 ©네이버 영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논란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비로소 해당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생긴다. 극장에 걸린 영화의 다양성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잡음이 반갑다. 아직 문제를 바꾸기에는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독과점이 불합리하다는 여론 형성은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합쳐져 더 이상 소수의 의견이 소수의 것이 아니게 될 때 큰 힘을 발휘하는 법.

 이전에 만약 작은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된다면 극장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가 궁금했었다. 때문에 최근 극장가의 흐름은 꽤 흥미롭다. 톱스타가 없고 거대 자본이 들지 않았어도 좋은 작품이라고 입소문이 난 <동주>, <귀향>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자 극장들은 마지못해 극장 문을 더 열었다. 오로지 수익만을 외치며 작은 영화의 상영을 밀어주지 않았던 극장들이 사람들의 요구에 결국 굴복한 셈이다. 현재 <동주>와 <귀향>의 예상치 못한 흥행세를 보니, 위에서 언급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꽤 빨리 도래한 것 같다. 부디 이러한 흐름이 극장가의 새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더 이상 극장에서 취향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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